이름을 세 번 부르면 마법의 효과가 생긴다고 했던가?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한번 불러서는 효과가 없다.
누군가의 이름을 간절히 외치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세 번 생각하면
연락이 오기도 했다.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면 앨리스를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토끼 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걸까?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 여름 이후로 앨리스를 볼 수 없었다.
단체 카톡방에서도 나가버리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앨리스는 흰 토끼를 키운다고 했다.
그 토끼를 '모자 장수'라고 부른다고 했다.
공원 안쪽 깊숙한 곳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백 살은 더 넘었을 것 같은 나무,
그 가까이에 나무와 함께 세월을 머금은 듯한 낡은 벤치가 있었다.
붉게 물든 가을이 짙은 날,
나는 그 벤치 아래서 기대어 앉아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 앨리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마법의 주문을 읊조렸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내 눈앞에 일어났다.
가을 낙엽색 스웨터를 입고 같은 색의 모자를 쓴 토끼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모자를 쓰고 스웨터를 입은 토끼?
그런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앨리스와 함께 살고 있어.
나는 모장이라고 해.
그녀 대신 내가 너를 마중 나왔어. 자. 나를 따라와.
내가 너를 앨리스에게 데려다줄게."
그리고는 내게 오른쪽 앞발을 내민다.
"자 내 손을 잡아. 그리고 눈을 감고 숫자를 하나부터 셋까지 세봐.
그리고 눈을 뜨면 앨리스를 만날 수 있을 거야. "
나는 토끼 발을 잡고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하나, 둘, 셋, "하고 아까처럼 외쳤다.
그러자 잠시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도착했어. 이제 눈 떠봐."
눈을 떴을 때 모장은 앨리스의 품에 안겨있었다.
앨리스는 모장이 입었던 옷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가을 색의 모자도 쓰고 있었다.
"안녕? 잘 지냈니? 오랜만이야."
그러더니 벤치로 다가와 내 옆자리에 앉는다. 모장은 가만히 앨리스에게 안겨있다.
방금 봤던 옷과 모자는 사라지고 없다.
꿈이라도 꾼 건가?
"내 토끼 모자 장수랑 공원 산책하다가 네가 벤치에 앉아 있는 게 보여서 왔어. 거의 1년 만인가? "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전화번호도 바뀌어 연락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낯선 땅으로, 제법 긴 여행을 다녀왔다고도 했다.
어쩐지 예전에 봤을 때의 모습보다 더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너를 만난 건 정말 우연이네. 자 여긴 모자 장수! 전에 이야기했던 내가 키우는 토끼야."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모장은 내 눈에 시선을 맞추었다.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이
입을 우물거렸다.
"어? 모장?"
"어? 어떻게 알았어. 모자 장수를 가끔 모장이라 불렀던걸?"
그리고는 유쾌하게 웃는다. 그녀의 보조개가 짙어진다.
모장도 따라 웃는 것 같다.
"한번 쓰다듬어 볼래? " 그녀가 내게 토끼를 건넨다.
나는 조심스럽게 토끼를 안아 들고 쓰다듬어본다.
따뜻한 토끼털의 감촉이 느껴지고,
갑자기 나는 또 한 번의 아찔함을 느낀다.
눈을 한번 깜박였을 뿐인데...
옆에 있던 그녀가 사라지고 없다. 모장도 사라졌다.
내가 앉았던 벤치 옆자리에는 붉은색 가을 낙엽 몇 장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앨리스와 내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은 1년이 아니다.
더 길고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앨리스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떠나고 모자장수를 잠깐 맡아 키웠던 것도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한 번도 그를 '모자 장수'라고 부르지 않았다. '모장'이라고만 불렀다.
가을빛이 붉게 물든 가을날이면 나만큼이나 낡은 이 벤치에 앉아서
앨리스와 모장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이곳에 앉아 나를 만나러 올 앨리스와 모장을 기다린다.
이 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며 쓴 글입니다.
모자장수의 이름을 가진 흰 토끼 "mad hatter"
앨리스와 흰 토끼는 토끼굴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만 이 세계에 놔두고요.
한 여름밤의 꿈이 아닌, 가을이 물든 계절,
이상한 나라를 꿈꾸지 못하게 된 제게 때때로 손을 내밀며
낯선 세계로의 여행을 꿈꾸게 해 줍니다.
더 이상은 꿈꾸는 것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꿈을 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