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끝끝내 회장이 되었다.
큰아이의 초딩생활은 정말 우당탕탕 다사다난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 공공연하게 말한 일보다 말하지 않은 일이 더 많다. 이런 어려움이 끝나긴 할까 매일 의심하다가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우리는 그냥 꾸역꾸역 우리를 믿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잘 클 거야. 그 말을 믿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믿음 없이는 버틸 힘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의 성장이 눈에 보였다. 내면이 단단해지는 느낌. 스스로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느낌. 한 번씩 그런 느낌이 훅 끼쳐올 때마다 감격스러웠다. 멋지다. 내 아들. 고맙다. 내 아들. 가까운 이들은 큰아이의 성장을 바로 알아챘다. 대견했다.
그리고 어제. 큰아이는 끝끝내, 그토록 소원하던 학급회장이 되었다. 나름 압도적인 표를 받아 당선된 아이는 정말 기뻐했다. 그노무 회장선거 때문에 네가 흘린 눈물이 얼마더냐. 끝끝내 해내고야 마는 아이가 진짜로 대견했다. 다른 친구가 “너 근데 연설 진짜 잘하더라”라고 해준 인사를 몇 번이나 곱씹는 아들. 친구들이 벌써 자기를 회장이라고 부른다며 아이는 배움 노트에 아주 정성껏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작년에 부회장을 하게 되었을 때보다 아이는 더 들떠 있었다. 결국 원하는 것이 되어야만 충분히 행복하구나 생각했다.
비교적 수월하게 성장하는 작은아이는 부회장이 되었다. 이제 3학년이 되어 경험하는 첫 선거다. 아이는 혼자 연설문을 써서 내게 내밀었다. 생각보다 잘 썼다. 워낙 인싸 기질의 아이라서 2학기에 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나의 생각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출마한 작은아이는 회장에서 떨어지고 다시 부회장에 나가 많은 표로 뽑혔다고 했다.
회장이 된 형아를 부러워하자 형아가 말한다. 야 라떼는 말이야...ㅎㅎ 그리고 뒷말은 우리끼리만 나누고 여기에는 생략한다. 왜냐면 정말 지독했던 큰아이의 그때 그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암튼 어쩌다 감투를 좋아하는 형제들이 감투를 쓰게 됐다. 귀엽고 기특한 내 아들들. 끝끝내 해내고 마는 아들들.
꽤 어렵고 긴 성장통의 시간이었다. 큰아이가 2-3학년 때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작년 4학년 담임선생님이 그러셨다. 성장통을 겪었군요. 나는 사실 그 한마디로 마음이 녹아내렸다. 긴긴 터널같은 시간들이, 사실은 누구나 지나가는 성장하는 시간일 뿐이라고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성장통이 이토록 아름다운 말인지 그때 알았다.
그 시간들을 지나 결국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싶어 기록으로 남긴다. 누군가에겐 수월한 일상들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낀 시간이었다. 어느 정도의 안정 궤도로 진입하여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우리는 또 앞으로 다사다난한 일을 겪게 되겠지. 이에 비할 수 없는 일들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안다. 우리를 믿고 마음을 나누고 그저 듬뿍 사랑하면 기필코 다 통한다는 것을. 그 터널은 또 언제고 끝나리라는 것을. 이제는 진짜로 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