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즐깁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자기다움이란 뭘까요."
"나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퍼스널 브랜딩과 자기다움이 유행처럼 들려오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나를 알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강연과 코칭을 하면서도 자주 들었던 반응입니다. 위와 같은 반응이 나올 때마다 저는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문장들을 떠올립니다.
나로 살아보려는 일은 본래 "그토록 어려운" 일 같아요. 우리는 평생에 걸쳐서 나를 알아가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매년 그 나이로 살아보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니까요. 유일무이한 인생을 단 한 번 밖에 살아볼 수 없는 우리는 신이 아니잖아요. 당장 내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하겠어요.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일만큼 어렵더라도 우리를 성장시키고 의미 있는 경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뿌리 챕터는 데미안 속 문장들과 연결되는 이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이 있나요?"
사이드와 알로하융 유튜브처럼 제가 만든 채널을 비롯해 무신사, 알프스 등 저와 협업하는 브랜드들의 인터뷰어로서 지금까지 약 50명 이상을 인터뷰했습니다. 브랜드 대표, 크리에이터, 뮤지션 등. 자기만의 길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위 질문은 제가 비장의 무기처럼 즐겨 묻는 질문입니다. 꼭 일로 하는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친구들에게도 던지기 좋아하는 질문이에요. 이 질문을 던지면 갑자기 화제 전환이 되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쑤욱하고 튀어나올 때가 많거든요. 알을 깬다는 표현의 해석에 따라 저마다의 답변이 다른 것도 매력적입니다.
저부터 이 질문에 답해볼 테니, 저의 답을 힌트 삼아 여러분도 이 질문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적어보세요. 어려워도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겁니다.
한 때의 저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이 한 번의 커다란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생을 변화시킬 정도의 커다란 전환점이요. 그러나 알을 깨는 경험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찾아오더군요. 저는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을 '스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내면의 뿌리를 단단하게 해 준 크고 작은 경험들'로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크게 네 가지 경우로 분류할 수 있어요.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어미 닭이 알 껍질을 바깥에서 함께 쪼아 병아리의 부화를 돕는다는 말인데요,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이란 사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갓난아기 때 엄마의 품 만하던 세계는 성장할수록 점점 더 확장됩니다. 집으로, 학교로, 회사로, 내가 속한 커뮤니티로. 내가 사는 세상이 커질수록 나를 둘러싼 구성원들도 계속 변화하고 나의 행동반경도 물리적으로도 넓어지지만, 의식이 확장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특히 사춘기 때 여러 번의 알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당연시 여겼던 생각들이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요.
책, 여행, 토론은 '줄탁동시'로 내 세계의 지평을 넓혀주는 대표적인 일들입니다. 나보다 커다란 세계관을 가진 누군가와 마주할 때 가장 빠르고 임팩트 있게 그 세계를 흡수하게 됩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일이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한 가장 훌륭한 공부라고도 생각해요. 매일의 일상 속에서도 여행과 토론의 순간이 가득한 좋은 사람과의 우정과 사랑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사람을 가장 성장시키는 건 사람입니다.
꾸준히 시간을 들여온 습관이 쌓여 알이 깨진 적도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의 취미는 침대에 누워 창밖의 하늘을 보며 음악을 듣는 거였어요. 음악을 틀어두고 창 밖을 보며 흘러가는 구름을 관찰하고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았어요. 단순히 그 시간이 좋아서 한 일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머리가 많이 자랐습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일종의 명상을 했던 것 같아요.
둥둥 떠오르던 생각들 중에 머릿속에 느낌표가 떠올랐던 때를 기억합니다. '아,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구나!' 하는 말이 실감이 났어요. 당연한 말 같은데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게 인생 처음으로 와닿았어요.
그 순간 이후로 나를 위한 작은 도전에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일'로 바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때 바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린제이 로한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프리키 프라이데이>를 보고 밴드에서 기타 치는 여자 멤버가 멋있어 보였거든요. 기타를 배우고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활동하게 되며 '모르는 건 배워서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무서웠지만 학교 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던 경험도, 혼자서 하는 배낭여행을 늘 동경해 오다가 실행으로 옮겼던 것도. 시작할 때는 늘 걱정도 고민도 많았지만, 미지의 영역에 있던 일도 막상 발을 들여 시도해 보면 겁먹었던 것만큼 힘들고 무서운 일은 아니었어요. 의외로 무대를 즐기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 보고, 작은 성공을 이뤄본 경험이 쌓이면 도전하는 관성이 생깁니다.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실패해도 도전해 봤다는 경험이 남습니다. 이 모든 시작점은 방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요. ‘내 인생 내 거구나!’하는 작은 깨달음이 조용하고도 강렬하게 제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하나의 막을 무너뜨렸습니다. ‘네가 뭔데 그걸 해, 너는 못할 거야'라고 스스로 단정 짓던 장벽을 허물었어요.
알을 깨고 나온 가장 명확한 순간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을 때입니다. 도전하는 관성이 쌓여 더 큰 도전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커졌을 때, 저의 의지로 잘 짜인 길에서 벗어나 방향을 확 틀어본 경험이 있어요. 그 첫 순간을 꼽자면, 2017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발적인 백수로 1년 동안 모험을 했던 해가 있습니다. 그때를 기점으로 보다 '정혜윤스러운 삶'으로 인생의 커다란 방향이 바뀐 것 같아요.
2017년에 갭이어를 가졌을 때처럼 마음먹고 내가 의지한 대로 도전을 하며 알을 깬 적도 있지만, 예기치 못한 삶의 변화로 가고자 했던 길이 막히며 경로를 틀어야 한 적도 있습니다. 2019년 말에 약 8년간의 장기 연애를 마무리 짓고, 2020년 1년 사이에 관계, 집, 회사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저는 종종 독립 3종 세트를 이뤘다고 표현하는데요, 이 시점으로부터 제가 사는 세계가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2017년과 2020년 모두 제 인생에 새로운 챕터를 열게 된 시기였어요. 하나는 저의 의지로 출발했고, 하나는 저의 의지는 아니었다는 게 다르지만, 두 시점 모두 내가 나 자신과 더욱 친해지고 나다움을 찾게 해 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시기는 <퇴사는 여행>과 <독립은 여행>이라는 책으로 쓰일 정도로 제게 많은 배움과 서사를 남겼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 인생이 좋아요. 그때의 저도 좋지만, 지금의 제가 더 좋습니다.
3번처럼 인생이 확 바뀌는 것 같은 변화가 있는 반면, 살짝 바뀌지만 내게 더 깊은 확신을 주는 변화가 있습니다. 지난 6월에 저는 한 달 동안 우붓에서 요가 지도자 자격증 수업을 듣고 왔어요. 요가 고전으로 불리는 B.K.S 아헹가의 <요가 디피카(Light on Yoga)>를 읽으며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몇 시간씩 토론하고, 명상과 요가로 채워진 한 달을 보내고 왔는데요. 제가 사는 방식과 방향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속의 뿌리가 한층 더 깊이 내려간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또 하나의 알이 깨졌지만, 옆으로 넓어지는 확장이 아닌 내면의 깊이를 획득하는 시간이었어요. 똑같은 일을 해도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연, 가족들과의 시간처럼 쉽게 놓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더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천히 살아가기를 배우고 왔습니다.
저는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우리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의식의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알을 깨는 경험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우리의 의식도 깊어지고 성숙해지기 때문이에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깨지는 경험을 반복하며 '과거의 나'는 '새로운 나'로 진화합니다. 나를 보호하던 안전한 울타리가 무너지는 경험은 무섭기도 했지만, 안전지대 밖으로 나와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껴요.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과정처럼요.
과거의 내가 죽고 현재의 내가 새롭게 태어나며 다채로운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하지만, 저는 여러 개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과거의 저와 지금의 저는 같은 사람이지만 한 편으로는 마치 평행 세계의 또 다른 나처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알은 나의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한정 짓고 있는 한계점입니다. 알 안에 있기로 결정한다면, 안전하고 편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알은 변화와 직결되어 있어요.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의식이 진화할수록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보여도, 점점 더 내 일상에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타인의 기준에 맞추며 엉뚱한 방향에 힘을 쏟지 않고, 내면의 기준에 맞게 나를 기쁘고 풍요롭게 하는 쪽으로 방향 설정을 할 수 있으니까요.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자기만의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이 들어요. 삶이라는 여정은 모두에게 다르고, 제각각의 개성으로 빛나는 진주를 품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알을 깨는 과정을 통해 그 보석을 세상 밖으로 꺼내 보이는 용기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왕이면 '이렇게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실수하고 실패해도 좋으니 상상했던 세계에 흠뻑 빠져보고 후회하더라도 새로운 걸 배우며 성장하는 다양한 저를 만나고 싶어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저의 모습들을 끌어안고, 삶이 제게 선사하는 놀라움에 열려있고 싶습니다. 저는 또 어떤 나를 만나게 될까요? 여러분은 또 어떤 버전의 나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다시 묻고 싶어져요.
여러분은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