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준 다능인의 발견
아직도 기억나는 유치원 수업시간이 있다. 종이 위에 그려진 나무 위에 원하는 열매를 그리고 색칠하는 시간이었어요. 친구들은 포도, 사과, 귤 등을 거침없이 그리고 색칠해 나갔지만, 나는 어떤 열매를 그리고 싶은지 마음을 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선택은 그리고 싶은 열매를 모두 그리는 것. 사과, 포도, 딸기... 한 그루의 나무 위에 온갖 열매를 그리고 색깔도 마음대로 칠했다. 수업 끝에 완성본을 벽에 붙였을 때, 여러 그루의 사과나무와 포도나무 사이에서 내 나무만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열매가 달려 튀고 이상하게 보였다. 모범 답안지들 사이에 혼자 오답을 낸 기분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게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다시 그리고 싶었다.
"무슨 일이 하고 싶어?"
나를 이만큼 괴롭힌 질문도 없을 것이다. 나무 위에 열매를 그려야 했을 때처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미대에 들어가 그림이 그리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우려를 이겨낼 정도의 확신은 없었다. 공부도 곧잘 하는 편이었지만, 사람들을 만나 노는 것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예체능을 좋아했고, 뭔가를 만드는 걸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고등학생 정혜윤은 예술가가 되는 사람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는 창작 욕구가 큰 사람이란 걸, 10년 동안 회사를 다니고 독립한 이후에야 더 알아가고 있다.
그래도 운 좋게 타협점을 찾았다. 고등학생 때 우연한 계기로 '마케팅'이란 걸 알게 됐다. 마케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예술과 경영의 중간쯤에 위치한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의 마케팅 이사로 일하고 있던 아빠 친구의 말도 한 몫했다. 그는 마케팅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케터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 모든 악기를 불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악기를 조율해 하모니를 만드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게 많아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괴로웠던 내게 이 정의는 어딘가 숨통을 트여주는 말이었다. 마케팅이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은 게 마이너스가 아닌 일처럼 보였다. 오히려 도움이 될만한 일 같았다. 그때는 그거면 됐다 싶었다.
그때부터 <마케팅 불변의 법칙>, <포지셔닝>, <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 등 클래식이라 불리는 마케팅 책을 찾아 읽으며 마케터의 꿈을 키웠다. 대학에 들어가 마케팅을 전공했고, 10년 넘게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으니 결론적으로는 적성과 진로를 빠르게 찾은 편이다.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내가 원하는 형태로 자유롭게 좋아하는 일을 하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조금 더 편안해진 것은 2020년에 '다능인'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면서부터다. TED 강연으로도 유명한 에밀리 와프닉의 <모든 것이 되는 법>에서 다능인을 "많은 관심사와 창의적인 활동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나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다능인이란 한 가지 분야에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회사를 자주 옮겨 다니게 되며 '왜 한 곳에서 꾸준히 하지 못할까'를 스스로 탓했던 내게 이 단어는 아예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다능인'은 한글로 능력이 많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영어로는 multipotentialite라고 쓴다. 다능인이란 개념의 기저에는 다재다능하다는 뜻 이전에 여러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며 실력을 쌓고, 하나의 일에 몰입해 꾸준히 잘하는 장인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호기심이 많아 여러 일에 기웃거리고 자꾸만 의도치 않게 딴 길로 새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내 고민의 원인에 '다능인'이라는 개념을 붙일 수 있게 되며, 내가 이상하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여러 정체성이 있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회사를 졸업하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모아 영감과 용기를 전달하고 싶어 시작한 뉴스레터 사이드 프로젝트(sideproject.co.kr)는 벌써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간다.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을 포함하면 구독자 수 2만 명 정도의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구독자인 '사이더'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피드백 중 하나가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아서 좋다는 말이다. 내가 사이더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고민에서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지난 경험을 토대로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본캐와 부캐가 공존하는 시대에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라고. 그러니 지금 '나는 왜 이럴까' 고민하고 있었다면, 자책하지 말고 "나는 다능인이었어!" 하고 스스로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 주자!
"융님은 혼종이에요."
내 유튜브 채널 '알로하융'의 편집자 희님이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내게 재밌는 사람들은 대게 어딘가 별나거나 괴짜 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한 광고 회사 덴츠에서 쓴 책 <당신의 B면은 무엇인가요>에는 덴츠 B팀의 이야기가 나온다. 덴츠 B팀은 구성원들이 본업 외에 좋아하는 것, 취미, 개인 프로젝트 등 그들의 ‘딴짓’을 B면으로 보고 이를 강점 삼아 일에 적용하고 활용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하게 다루며 공유와 협업을 통해 확장시킨다.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프로젝트를 만들고 수주한다. 이들의 진짜 강점이 바로 '덕질'이다. 좋아하는 마음에 기반해 재미있다는 이유로 다양한 분야를 파고든 사람들을 모아둬서 어떤 주제가 던져지든 검색으로도 찾기 힘든 정보에 순식간에 접근 가능하다. B면을 일로 연결시키는 방식부터 네트워크가 넓어지는 과정까지 매우 자연스럽다. A면이 아닌 B면으로 모였지만, 본업에서는 진행하지 못했던 프로젝트들까지 따오고 진행하게 된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은빛 달(Moon)이 예술가의 이상과 영혼의 영역을 상징하고, 은빛 동전 6 펜스가 인간으로서 묶여 있는 현실, 재화를 상징한다. 예술가와 사업가의 세계. 유목민과 직장인의 세계. 서로 대립되는 달과 6펜스의 경계 사이에서 나는 발을 한쪽씩 걸치고 여러 세계를 혼합하며 나만의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하나의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는 ‘혼종’이라는 표현이 내게는 칭찬으로 들렸다.
어떤 일을 1만 시간 동안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100명 중 한 명'의 인재가 될 수 있다. 일본의 일론 머스크라 불리는 기업인 호리에 다카후미는 그의 책 <다동력>에서 이 1만 시간을 넘기면 중심축을 옮겨 다른 분야에서 또 1만 시간을 투자하자고 얘기한다.
두 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 "100명 중 한 명 x 100명 중 한 명 = 1만 명 중의 한 명"의 인재가 될 수 있다. 여기에 하나의 직함이 또 더해지면 "100만 명 중 한 명"의 인재가 된다.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는 방법인 것이다.
온갖 산업 장벽이 무너지고, 질문을 던지면 챗GPT가 1초 만에 글을 써주는 시대에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비생산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은 일, 잠깐 옆길로 새보는 '딴짓'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다. 기계가 가지고 있지 못한 이 비효율적인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탄생한다.
"마케터. 작가. 여행가. 강연자. 기획자. 유튜버. 리추얼 메이커. 커뮤니티 리더. 디제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직업적인 수식어는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음악. 그림. 식물. 독서. 빈티지. 춤. 칵테일. 요가. 독립출판."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키워드는 더 자유롭게 경계 없이 늘어나고 있다. 나의 일과 취향이 나라는 사람의 해상도를 높여주고 있다. 퍼스널 브랜딩을 의도하지 않았어도, 좋아서 해온 다양한 일들이 내게 따라 붙는 키워드들을 만들었다.
생산성을 바라지 않고 시간을 쓴 취향의 영역에서도 그만큼의 시간이 쌓이고 나면 '100명 중의 한 명'으로서의 전문가적 경험이 쌓인다. 나는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데 1만 시간은 가뿐히 쓴 사람이다. 그 덕분에 취향이 일로 연결되는 순간도 찾아왔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나 자격증이 없어도 ‘좋아해서 이렇게까지 해봤다’는 경험 자체가 자격을 만든다. 그러니 일과 관련이 있든 없든 좋아하는 마음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내 마음에 귀기울이고 알아채는 것부터가 멋진 여정의 시작이니까. 언젠가 내 취향에서 비롯한 수식어가 또 직업의 영역으로 옮겨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면적인 자아상을 갖는다는 것
나를 지탱하던 하나의 커다란 기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과 헤어지며 내가 누구인지가 헷갈렸다. 이게 내가 좋아해서 좋아한 건지, 그 사람이 좋아해서 좋아한 건지. 그 사람이 사라짐으로써 앞으로 나는 어떤 미래를 그리면 좋을지. 갑작스런 이별에서 비롯한 상실감은 과거에서 비롯한 슬픔과 공허함에 알 수 없는 내일을 맞닥뜨려야 하는 막막함과 당황스러움까지 동반했다.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모두 무너진 것 같아 삶 전체가 흔들렸던 시기에도 나를 천천히 다시 일으켜준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다. 누군가의 연인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작은 기둥을 하나씩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일까? 질문을 던지고 한줄씩 써내려갔다.
나는
엄마의 딸
지윤이의 언니
마케터이자 작가
음악을 좋아하는 나. 요가를 좋아하는 나. 식물을 좋아하는 나…
다면적인 자아상이 더 건강하고 단단한 것은, 설사 하나의 기둥이 무너지더라도 나를 받쳐줄 다른 기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B면이 많아서 또 무엇이 좋다고 묻는다면, 삶에서 단숨에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 배로 늘어난다고 답할 수 있다. 도심 속 꽃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냥 ‘꽃’으로 전부 퉁쳐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기쁨이 늘어가듯이, 좋아하는 것이 많으면 작은 순간도 더 특별해진다. 나라는 사람을 직업으로만 규정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나'로서 나를 보는 것을 권유하는 또 다른 이유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정체성이 나를 촘촘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하나의 커다란 기둥보다도 여러 개의 작은 기둥이 더 견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하고 싶어?"
더 이상 이 질문이 괴롭지 않은 것은 하나의 명사 안에 내 답변을 가두는 것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마케터. 작가. 엄마. 딸. 언니. 그 어떤 명사도 한 사람을 전부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열매를 그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선택이다. 오답을 쓴 것 같아 숨고 싶어 하던 유치원생 시절의 나에게 그 별나고 이상해보인 나무가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의 나무 위에는 어떤 열매든 열릴 수 있다. 그 열매는 저마다의 즐거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렇게 나무는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