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제주, 그때를 따라가보다 - 제주 4.3 사건
밖에서 총소리가 계속 들린다.
무서워서 집에만 숨어 있다가 밖을 나가보니
저 멀리에 총을 든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무더기로 쓰러져있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
다 죽었나 보다 싶었는데 작은 움직임이 있다.
피범벅이 되어 온 몸이 늘어져 있는 엄마의 젖을
한 아기가 빨고 있다. 비현실적이다.
다시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저 멀리서 총을 든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총 든 사람들이 다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길 건너 있는 철이 아저씨네 아들도 보인다.
'빨 뭐시기다!!'라고 외치며 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무서워서 뒤쪽 산으로 나도 뛰기 시작한다.
추격전은 얼마 가지 못한다.
등이 쿡 쑤시면서 뜨거워진다.
더 못 달리겠어서 앞으로 고꾸라진다.
뜨거운 것이 온몸으로 퍼진다.
기억이 흐릿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몸국 같은 데에...
빠진 건가... 싶다...
제주 4.3 사건을 살펴본 오늘.
광복 이후 남로당 무장대와 정부 토벌군의 이념 싸움에
당시 제주도 인구 30만 명 중
약 1/10인 3만 명의 민간인이
이유도 모른 채 무차별하게 죽어나간 집단학살(제노사이드) 사건.
대부분의 이웃과 가족이 죽어나갔음에도
이 사실을 감추고자 한 군, 경 당국 때문에
사랑하는 고인들에게 묵념 하나 하지 못하고
사건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그렇게 덮어둔 채로
꽤 최근까지 살아와야 했던 제주도민들.
조천 북촌 마을의
총살이 일어난 곳곳과
무자비한 방화와 학살이 자행된 자리,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했던 어린아이들의 무더기 무덤,
그 후 살아남은 자들의 참혹한 삶의 현장,
이 모든 곳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기념관을 나와 차에 타고 시동을 거니
운전석 양 옆으로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고
세련된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푸른 제주 바다를 왼편에
야자수 심긴 가로수 너머의 초록 들판을 오른편에
그림 같은 구름이 펼쳐진 하늘을 정면에 두고 운전을 한다.
70년의 시간을 두고
그때의 그분들이 잘못하신 일도 없고
내가 특별히 잘한 일도 없다.
70년의 시간을 두고
우연히 그분들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고
우연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래서 남의 일 같지 않다.
오늘 보고 알게 된 일들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잊지는 말아야겠다.
그게 말도 안 되는 내 운에 대한
예의이고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감사합니다.
제가 대단한 일은 못해도
그 희생과 아픔과 슬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