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이 가만히 찰랑인다.
수평선에서부터 끝도 없이 잔 물결이 밀려온다.
나란히 줄 지은 오징어잡이 배의 밝은 빛에
은색으로 비친 구름이 은은하게 움직인다.
하늘엔 별이 콕콕 박혀있다.
세상이 모두 깊게 잠든 새벽 3시,
겨울 별자리인 오리온자리가 한 여름에 떠 있다.
조용하다.
풀벌레 소리와 파도 소리말고는 들리지 않는다.
꿈같다.
까만 하늘에 수놓아진 별도 그렇고
내 발목을 3초마다 간지럽히는 파도도 그렇고
눈앞에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것도 그렇고
바로 옆에서 거닐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다.
내일 서울로 올라가면
이 모든 여행이 꿈일 것 같았는데
지금 이 순간 이미 꿈 속 같다.
친구는 이렇게 조용하고 장엄한 바다를 보니
이제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근데 나는 슬펐다.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이 슬펐다.
내 외로운 무의식의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어스름한 어둠의 세상에 홀로 서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30대의 나는
인생이 어차피 이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묘하게도 위안을 느꼈다.
눈물이 맺혔다.
막연함을 막연하다고 알아차리는 상황에
막연함이란 없었다.
결국 난 친구와 비슷한 감정에 도달했다.
과정은 정반대였지만
슬펐고, 눈물이 났고, 평안을 느꼈으며, 자아가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