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현대미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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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부처, 불상, 카메라, TV모니터, 160 x 215 x 80 cm, 암스테르담 스테데익미술관 소장, 1999년작
2006년 세상을 떠난 백남준은 대한민국 태생의 작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알려진 현대 미술가이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매체를 이용하여 매우 분방하고 실험적인 예술 활동을 하였고 특히 비디오아트를 최초로 시작하여 발전시킨 천재적인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1932년 7월 20일 경성부 서린동에서 아버지 백낙승과 어머니 조종희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수송국민학교와 경기보통중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니스트 신재덕에게 피아노 연주를, 작곡가 이건우에게는 작곡을 배웠다. 1949년 홍콩 로이덴 스쿨에서 수학했으며, 1952년 도쿄 대학 문과부에 입학하였고 미학 및 미술사학을 전공하였으며 작곡과 음악사를 공부했다. 1956년 백남준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 대학교 및 쾰른 대학교 등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1958년 그 곳에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그의 자유로운 음악과 예술적 영감에 공감하였으며 그를 통하여 독일의 예술가들과 교류를 시작하였다.
1960년대 초반 요셉 보이스 등과 ‘변화와 생성의 흐름’ 이라는 개념을 모태로 하는 플럭서스운동을 통하여 백남준은 그의 독자적인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1964년 백남준은 뉴욕으로 이주했고, 1965년 소니의 포타팩(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으로 미국 뉴욕을 첫 방문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하여 곧바로 그 영상을 ‘카페 오 고고’에서 방영했다. 이것이 미술사에서는 공식적인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1974년부터 백남준은 비디오설치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하여, ‘TV 부처’,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 ‘TV 물고기’ 등등 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비디오아트와 자연물을 음악적으로 혼합하여 테크놀로지로 물든 현대 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통한 문화적 성과를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남준은 생존하는 동안 수많은 작품과 퍼포먼스 등을 통하여 그의 천재적 예술세계를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고 그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창출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서양의 조형적 형식과 기법으로 제작되었지만 동양적 철학과 정서가 자연스럽게 내적 배경으로 존재한다. 작품 ‘TV 부처’를 보면 그의 이러한 예술적 특성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명상을 하는 부처는 전면부에 비춰진 TV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끊임없는 삶의 존재적 질문을 던진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너 자신을 알라”는 내용과 불교가 말하는 형상을 초월하며 생명의 본질은 무한히 지속된다는 윤회적 삶을 표현하는 내면에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 본질적 생명력의 존재를 자각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비디오카메라와 TV라는 현대문명의 미디어 매체를 이용하여 너무도 명쾌하게 철학적 질문을 표현하는 그의 작품 ‘TV 부처’는 그가 살아온 다국적이며 다문화적인 그의 예술과 인생의 경로를 모두 담아내고 있는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는 모범답안과도 같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의 이러한 작품에 표현된 삶의 여정을 보면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 일본, 독일, 미국 등에 거주하며 평생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았지만 그는 언제나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존재성에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술을 향한 뜨거운 정열로 일평생을 살았던 그는 언제나 마음속 한편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였으며,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오늘날 한국 미술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200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던 그는 2006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뇌졸증으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그가 예술세계를 펼쳐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던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