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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ameyuki Jul 11. 2019

열도의 소울푸드, 미소시루

일본인이라면 쌀밥과 된장국이지!

양성평등이 개선되면서 예전만큼 흔한 풍경은 아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결혼을 앞둔 여자에게 "된장찌개는 끓일 줄 아냐"고 묻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된장찌개는 한국인의 가정 식단에서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이라, 된장찌개만 끓일 줄 알면 밥은 굶지 않겠다, 또는 된장찌개도 못끓이는 여자라니 그 남편이 밥을 얻어먹을 수는 있겠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그런데 일본에도 "미소시루를 잘 끓이면 시집 가서 사랑을 받는다" 는 말이 있다. 미소시루는 일본 가정식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메뉴이므로,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하는 미소시루를 맛있게 끓이는 새댁은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소시루(味噌汁), 즉 된장국은 어떻게 일본인의 소울푸드가 되었을까. 



일본에서 된장을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스카 시대인 서기 701년에 반포된 "타이호 율령(大宝律令)"에  "未醤(みしょう, 미쇼오)"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 "미쇼오"가 "미쇼" → "미소"로 변화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미소(味噌)"가 공식적으로 데뷔하는 것은 그로부터 정확하게 200년 후인 서기 901년이다. (덧붙이면, 일본에서 噌자는 오직 된장이라는 단어에만 쓰이는 글자이다.) 헤이안 시대의 법률과 시행세칙을 묶은 "엔기시키(延喜式)"에 고급 관료의 급여로 된장을 지급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된장은 지금과는 달리 밥에 발라 먹거나 약으로 쓰였으며,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엔기시키"에는 또 헤이안 도읍에 있던 두 개의 관영 시장, 동시(東市)와 서시(西市)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이 두 군데 시장에서 "사치품이기는 하지만 된장도 팔고 있다"고 쓰여 있다. 




그러다가 카마쿠라 시대에 드디어 된장으로 국을 끓이는 조리법이 등장한다. 그때까지의 된장은 콩 낱알이 그대로 살아있어 음식에 뿌리거나 발라 먹서 먹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중국 승려들에 의해 약발(작은 절구)이 전래되면서, 된장의 굵은 알갱이를 빻아 고운 입자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페이스트(paste) 형태의 된장은 물에 잘 녹아 국으로 끓이기 쉽다. 미소시루가 탄생한 것이다. 이로서 밥, 국, 반찬 한가지로 구성되는 일본의 기본 식단, <이치쥬잇사이(一汁一菜, 일즙일채)>가 확립되었다. 카마쿠라 무사들의 끼니는 이 일즙일채가 보통이었으나, 아직도 된장은 특수계층만이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14세기에 쓰여진 일본 중세 수필 문학의 걸작 <츠레즈레구사(徒然草)>에는 부엌 선반 위 접시에 들러붙어있던 약간의 된장을 안주 삼아 둘이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쌀밥과 된장국을 먹는 무로마치 시대 상류층의 식사 장면 / <紙本著色酒飯論図> , 일본 문화청 소장


무로마치 시대에 와서야 드디어 된장은 평민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정책적으로 대두, 피, 밤 등의 재배를 장려하면서 콩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자, 보존이 용이하고 영양가가 높은 된장은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식품이 되었다. 농민들은 집에서 직접 된장을 만들어 먹었고, 무사들은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된장국을 함께 먹었다. 

또한 된장을 활용한 다양한 조리법이 나와, 오늘날까지는 전해지는 된장 요리의 대부분이 무로마치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무로마치 말기에는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간장이 발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 무장들은 그야말로 된장덕후들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터로 달려나가야 했던 동란의 시대, 전투식량의 보급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된장은 훌륭한 식품이었다. 밥 또는 죽(당시의 쌀은 대부분 현미였다)으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을 섭취할 수 있고, 여기에 된장을 더하면 단백질과 나트륨의 보완이 가능하다. 전장의 음식으로는 최고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주먹만한 크기로 뭉쳐 말리면 휴대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쉬이 상하지도 않았다.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고향 오와리도 된장으로 유명하지만, 타케다 신겐의 신슈(지금의 나가노 현) 미소와 다테 마사무네의 센다이 미소, 그리고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핫쵸 미소는 그야말로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된장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지역 특산 명물이 되었다. 


인기 탤런트 아오이유우가 유서깊은 요릿집의 어린 안주인 역을 맡아 열연한 드라마 <오센 おせん> . 콩을 골라 직접 된장을 담그고 비전의 된장국을 끓이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에도시대에 들어오면서 된장국은 전국민의 표준 식단으로 자리잡는다. 여전히 여러 종류의 반찬을 먹는 것은 사치였지만, 적어도 현미밥과 된장국, 채소절임으로 구성된 일즙일채가 기본 식생활로 완전히 정착한 것이다.  일본 전통 만담(落語) 중 하나인 <미소구라 味噌蔵>에는 인색하기로 소문난 된장 상인이 며칠 가게를 비우면서, 혹시라도 인근에서 화재가 날 경우 불이 옮겨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소구라(된장을 저장하는 광)의 된장으로 문과 벽의 틈새들을 막으라고 당부한다. 나중에 불에 그을린 된장을 도로 벗겨내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구두쇠의 잔머리다. 


후카가와 명물인 후카가와메시(深川めし). 스미다강에서 잡은 신선한 재첩과 된장으로 만든 여름철 보양식이다. 


특히 에도를 에워싸고 흐르는 스미다가와(隅田川)는 예로부터 재첩이 많이 잡히기로 유명했다. 스미다가와를 사이에 두고 에도 도심과 마주보고 있는 후카가와(深川, 지금의 도쿄도 코토구 일대)는 에도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저지대를 매립해서 건설한 일종의 신도시로,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스미다가와에서 잡은 재첩(또는 바지락)과 된장, 파를 듬뿍 넣어 자작하게 국물이 배어나게끔 지은 후카가와메시(深川めし)는 이 동네의 별미이자, 여름철 보양식이기도 했다. 온열증, 열사병의 민간요법으로 재첩을 넣어끓인 된장국을 마신 것이다.

(재미있게도 된장이 열을 내린다는 속설은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있어서 화상을 입으면 환부에 된장을 바르고 동여매곤 했다.)

후카가와라는 지명은 사라졌지만, 이 지역은 마치 뉴욕의 브루클린처럼, 과거의 변두리 서민 동네에서 블루보틀 커피 일본 1호점이 생길 정도의 힙 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 지하철 키요미즈시라카와(清水白川) 역 근방에는 여전히 레트로 감성 물씬한 가게에서 맛좋은 후카가와메시를 먹을 수 있다. 

  

"흰쌀밥과 미소시루"로 대표되는 일본의 아침 밥상은 결혼·출산율 하락으로 인한 1인 가구화와 함께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의 대상이기도 하다. 드라마 등에서도 해외 여행을 다녀오거나, 신변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 끼니를 잘 못챙기다가 흰쌀밥에 미소시루를 허겁지겁 먹으며 "일본인이라면 역시 쌀밥과 미소시루지" 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신선한 신슈(=나가노현)산 식재료로 모던 와쇼쿠(和食)을 지향하는 레스토랑 체인 스쥬다이닝. (도쿄미드타운점)


TIP! 도쿄 여행 중에 맛있는 미소시루를 맛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서울에서 된장찌개 맛있는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이다. 

웬만한 음식점은 어디서나 기본 상차림으로 나오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값은 조금 비싸지만,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도쿄의 야경을 바라보며 원조 신슈미소로 끓인 미소시루를 먹어보고 싶다면, 스쥬다이닝(酢重ダイニング)을 추천한다. 

나가노현 카루이자와의 델리카트슨 스토어, 스쥬마사유키쇼텐(酢重正之商店)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미드타운과 신마루노우치빌딩, 시부야 히카리에 등 도쿄의 랜드마크 빌딩들에 지점이 있으며, 

쌀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나가노현의 사케들을 마실 수 있는 것은 물론 신슈미소를 비롯한 다양한 식료품을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참고자료 & 사진출처 - 알파벳 순)

http://7fukjin.com/heian/tosaiiti/ 

https://asanomiso.co.jp/hpgen/HPB/entries/20.html

http://bunka.nii.ac.jp/heritages/detail/193002/3 

https://www.hanamaruki.co.jp/misogura/history/ 

https://www.hikarimiso.co.jp/enjoy-miso/encyclopedia/ 
http://www.hoteifoods.co.jp/recipe/so-003/

http://iroha-japan.net/iroha/B02_food/22_misoshiru.html 

http://www.kikkoman.co.jp/kiifc/tenji/tenji15/soysauce03.html 

http://www.koji-miso.com/miso/2011/02/post-2.html 

http://kyoudo-ryouri.com/food/2260.html 

https://www.marukome.co.jp/miso/history/

http://www.misosiru-angya.com/zatugaku/zatugaku.html 

https://okazaki-kanko.jp/feature/miso/top

http://rekishi-memo.net/japan_column/misoshiru.html

http://www.sendaimiso.co.jp/power/akamiso/ 

https://www.suju-masayuki.com/index.php#shoplist

https://syoku-life-labo.com/gohan-hid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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