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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ameyuki May 24. 2019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케.

일본에서 맛있는 사케를 만나는 소소한 꿀팁

한국에서 보통 사케라 부르는 술은 정확하게는 일본 청주이다.

사케()라는  자체가 ""이라는 뜻의 보통 명사로, 일본에서 "사케 마시러 가자(お酒飲みに行きましょう)", 라고 하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사케가 아니라 단순히  마시러 가자는 말이 된다.

일본에서는 사케를 니혼슈(日本酒)라고 부른다.


흔히 사케라고 불리는 니혼슈는 쌀과 누룩을 발효시켜 빚은 청주(淸酒)이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에서는 좋은 니혼슈를 마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대량 생산되는 전국구 니혼슈 브랜드가 많지 않다.
니혼슈는 일본 전국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영세 양조장에서 1년에 많아야 수천 병을 소량 생산한다. 본고장인 일본에서조차 고급 백화점이나 주류 판매점에 가도, 전국구급의 프리미엄 니혼슈는  종류 되지 않는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수입사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노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 들어와있는 쿠보타(久保田), 닷사이(獺祭) 같은 프리미엄 전국구 양산 니혼슈는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리테일 기준 일본 현지의 최소 3배, 음식점에서는 5배 이상의 가격이 매겨지는 듯 하다.)
물론 일본의 동네 수퍼마켓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키쿠마사무네(菊正宗)나 간바레오또오쨩 같은, 팩에 담겨 판매되는 저렴한 니혼슈는 한국에서도 많이 싸졌지만, 진짜 니혼슈의 맛과 향을 즐기기엔 아무래도 한참 부족하다.


매년 3월 초에 니이가타 시에서 열리는 사케 박람회 니이가타사케노진(酒の陣)의 모습

게다가 사케는 와인과는 달리 유통기간이 짧다.
좋은 와인은 오래 묵힐 수록 맛이 깊어지지만, 좋은 사케는 빚자마자 빨리 마실 수록  좋다. 일본의 양조장들이 햇술을 내놓는 시기는 주로 12~2월이다.
가을에 수확한 햅쌀로 겨우내 술을 빚어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해의  술을 선보인다. 니이가타시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케 박람회, 사케노진(酒の陣) 3 초에 열린다.

사케는 생산된지 늦어도 1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물류와 유통에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좋은 사케를 맛보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이유다.


일본의 대표적인 프리미엄 양산 사케, 쿠보타와 닷사이. 재미있게도 둘다 회사 이름이 아사히주조이다. (한자로는 각각 朝日와 旭)


내가 일본으로 이주한 2013년 즈음부터 한국에서는 닷사이(獺祭)열풍이 불었다.
그 전에는 사케라고 하면 서울 시내 이자카야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에 파는 키쿠마사무네나 간바레오또오쨩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사케 좀 마신다는 애주가라고 해도  쿠보타 만쥬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도 프리미엄 전국구 브랜드인 닷사이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사케 애호가들과 미식가들 사이에서 "닷사이 마셔봤냐"가 인삿말이 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야마구치현의 아사히주조에서 만드는 닷사이는 향이 깨끗하고 목넘김이 부드러워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무난한 사케라, 일본에서도 접대나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닷사이 같은 전국구 브랜드가 아니라면, 사실 로컬 사케는 하나하나 전부 마셔보지 않는 한, 좋은 술을 발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생산량, 유통망이 받쳐줘서 전국적으로 팔리는 유명한 로컬 사케들이 있기는 하지만, 웬만한 이자카야나 주류 판매점에 가도 저마다 다른 사케를 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를 때는 물어보자. 일본의 셰프들은 요리에 어울리는 사케를 심혈을 기울여 구비하며, 손님이  부탁하면 기꺼이 추천해준다.


일본에 가서 사케를 한병 사오고 싶다, 그런데 마셔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좋은 사케를 고를까?

팁을 하나 공유하자면, 음식점에서 추천을 받는 것이다.

보통 스시집이나 와쇼쿠(和食) 레스토랑에서는 술을 톳쿠리(徳利)라는 작은 병에 따라서 파는데, 이 단위가 一合(이치고, 약 180ml) 이다.

두세명이서 마시면 하루 저녁에 서너 톳쿠리는 마실 텐데, 이때 음식에 맞춰 전부 다른 술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대개 기꺼이 추천해주고 병도 보여준다.

특별히 그 지역 특산 사케를 마셔보고 싶다면 “지자케(地酒)”를 달라고 하자.

하나하나 마셔보고 그 중에 가장 자기 입맛에 잘 맞는 사케를 기억해두었다가 구입하면 된다.

일본은 인터넷 주류 판매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찾아간 가게에 원하는 사케가 없다고 해도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다.


일본 최고의 쌀 산지로 꼽히는 니이가타 현의 사케들


너무나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쌀로 이름난 지방이 사케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와 동해를 사이에 두고 바다에 면한 지방, 즉 북쪽에서 남쪽으로 아키타, 야마가타, 니이가타, 이시카와, 시마네, 후쿠이 현의 사케는 실망할 확률이 낮다.

또 최고의 사케용 쌀 품종 야마다니시키(山田錦)의 발상지인 효고현,  예로부터 절과 신사가 많아 술 수요가 큰 교토부와 미에현(이세 신궁이 있는)도 훌륭한 사케가 많이 나온다.

한국인들이 많이 여행 가는 큐슈에서는 사가현 사케가 맛이 좋다.

(덧붙이면 큐슈는 사케, 즉 청주보다는 소주가 메인이다. 큐슈에서 쌀이 가장 유명한 현은 쿠마모토 현인데, 그 쌀로 청주가 아닌 소주를 만든다. 쿠마모토산 쌀 소주는 고구마 소주와 보리 소주가 주류인 일본 소주 시장에서 프리미엄 소주로 통한다.)


사케에도 와인처럼 스위트(甘口, 아마구치)와 드라이(辛口, 카라구치)가 있다.

드라이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일본인들이 단맛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국인 입맛에는 사실 일본의 카라구치도 좀 달달할 때가 많다.
정말, 진짜 드라이한 술을 마시고 싶다면 쵸카라구치(超辛口)를 달라고 하자.


마스(枡)에 넘쳐흐른 사케를 그대로 입을 대서 마셔보는 것도 묘미.


간혹 일본 음식점에서 사케를 잔술로 시키면, 작은 나무상자 안에 유리잔을 넣은 형태로 나올 때가 있다. 이 나무상자는 쌀의 양을 잴 때 쓰이는 일종의 계량컵으로 마스(枡)라고 한다.

사케가 마스에 나오면 당황하지 말고 우선 마스 안에 들어있는 유리잔을 집어내 잔에 담긴 술을 먼저 마신다. 마스에 남아있는 술을 빈 유리잔에 따라 마시거나, 아니면 마스째 입에 대고 마셔도 무방하다. 마스는 보통 향이 좋고 항균 작용이 뛰어난 히노키(편백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나무 향과 술의 향이 어우러져 색다른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www.niigata-sake.or.jp/sakenojin/

http://sushiyaono.com/blog/2015/12/0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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