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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ameyuki Aug 07. 2019

한 그릇의 음식이 운명일 수도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キッチン> 이 그려낸 사랑, 그리고 카츠동 

의외로 현대 일본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90년대 이후 한국 서점가를 휩쓴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을, 물론 한두권씩은 다 읽어봤지만, 설탕을 녹여 얇은 막을 씌워놓은 듯한, 말캉한 화과자 같은 그 문장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책은 없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라는 유명한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을, 나는 그야말로 사랑했다. (사진:  ⓒ남수현)


요시모토 바나나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책은 <키친>, <만월>, <달빛 그림자>의 총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만월>은 <키친>의 속편 격에 해당하는 연작이다. 

부모형제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그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말그대로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여주인공 미카게에게 엉뚱하게도 "같이 살자"고 제안해온 모자, 에리코와 유이치. (원래 남성이었다가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된) 아름답고 상냥한 엄마 에리코와 맑고 순수한 유이치는 미카게에게 "가족"이 되어주지만, 불의의 사고로 에리코는 목숨을 잃고, 이번에는 유이치가 마음의 진공 상태에 빠져버린다. 두 사람은 연인도, 남매도, 친구도 아닌, 어쩌면 그 모두가 뒤섞인 감정의 혼란 속에서 갑자기 닥쳐온 죽음과 싸우지만, 그들의 방식은 슬플 정도로 서툴다. 


어차피 나는 나일 뿐이니, 이렇게 맑은 인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감하게도 유이치의 마음을 알아버렸다. ···두번 다시 그 도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홀로, 별 아래 낯선 곳에 있다.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늘어났다 줄어드는 그림자 위를 걸어갔다. 
역 근처까지 가고 말았다. 아직 문이 열려 있는 국수집 불빛을 발견하였다. 우윳빛 유리문 속을 들여다보니, 카운터밖에 없어 단촐하고, 손님도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나는 안심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좀 풍성한 음식이 먹고 싶어서, "돈까스 덮밥 주세요" 라고 주문했다. 
"돈까스 튀겨야 되니까, 좀 시간이 걸릴 텐데 괜찮은가?"
가게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단장을 한 모양이다. 원목 냄새가 풍기고, 구석구석 손길이 닿아 있어 분위기가 좋았다. 이런 가게는 대개 맛도 좋다. 나는 기다리다가, 손 닿는 곳에 놓여있는 핑크색 전화기를 보았다. 


에리코와 유이치와 함께 사는 동안 유명 요리연구가의 문하생이 된 미카게는 이즈로 출장을 떠나지만, 지방의 온천료칸에 틀어박힌 유이치가 계속 마음이 쓰인다. 배가 고파 저녁 무렵 거리로 나와서도 이런저런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에 작은 동네 식당에 들어간다. 


아직 80년대의 감성이 남아있는 도쿄 아오모노요코쵸(青物横丁)의 상점가.  미카게가 마주친 식당도 이런 가게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미카게가 주문한 "돈까스 덮밥"은 카츠동(カツ丼)이다. 카츠는 돈까스의 까스, 동은 덮밥을 의미하는 돈부리의 돈이니, 돈까스 덮밥이라고 번역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돈까스 덮밥, 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넓은 접시에 흰 밥을 푸고 그 위에 소스 뿌린 돈까스를 얹은 그림이 상상된다. 물론 <키친>이 한국에 처음 출간된 1999년만 해도 지금처럼 서울 시내에서 현지 레시피 그대로의 일본 음식을 쉽게 접하기 힘든 때였다. (일본 대중 문화 개방은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90년대 이전까지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이른바 "경양식 레스토랑"의 돈까스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 일본식 돈까스와는 그 맛도, 질감도, 구성도 사뭇 달랐지만, 외식 문화가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에는 매우 특별한 음식이기도 했다. 납작하고 단단하게 튀긴 돈가스에 소스를 끼얹고(부먹?) 분말크림수프가 딸려나오던. 고등학교 시절 이미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가슴 설렜던 80년대생인 나에게는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밥과 빵"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그러다 처음 서울에 생긴 일본식 돈까스 집이 바로 명동의 노포, "명동돈까스"이다. 도톰한 등심살에 빵가루를 묻혀 가볍게 튀겨내서,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특제 소스는 끼얹어 나오는게 아니라 종지에 덜어서 찍어 먹는다. (찍먹?!) "명동돈까스"의 창업주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창업 구상을 하던 중, 먹는 장사를 해보라는 재일교포 지인의 추천으로 도쿄 메구로의 "톤키(とんき)"에 가서 일본식 돈까스 조리법을 배워왔다고 한다. "톤키"는 1939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돈까스집으로, 오픈키친으로 손님이 조리의 전과정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본 특유의 "한사람 몫(一人前)"을 해낼 때까지 10년 동안 밑바닥부터 도제식 훈련을 받는 전통을 오늘날까지도 고수하고 있다. 


명돈 돈까스의 로스까스(왼쪽)와 도쿄 메구로에 있는 "톤키" 본점의 전경


돈까스는 일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그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는 이미 책(<돈가스의 탄생-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오카다 테츠)까지 나와있을 정도이니 여기서는 건너뛰지만, 어쩌다 돈까스가 밥 위에 올라가서 카츠동이 되었을까. 

카츠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그 발상지가 후쿠이현이라는 설, 고후시라는 설, 도쿄 와세다라는 설 등등이 난무하고 있는데, 일단 역사적인 기록 상으로는 후쿠이현의 양식당이 최고(最古)인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카츠동이 지금처럼 밥을 소스로 맛을 내고 돈까스를 달걀로 말아 내는 레시피로 대중화가 된 것은 와세다 버전에 더 가까워보인다.

메이지 39년(1906년)에 문을 연 와세다의 국수집 산초안(三朝庵)은 당시 대인기를 끈 신문물인 돈까스를 메뉴에 도입했는데, 단체손님의 예약이 취소되거나 하여 준비한 돈까스를 팔 수 없는 날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차게 식어 식감이 나빠져서 버려야 할 지경이 된 돈까스를 보고,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안타깝게 여겨 "달갈로 말아서 내면 어떨까요"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굉장히 좋은 곳이기는 해. 창문도 크고, 폭포 같은 것도 보이고. 그렇지만 나는 지금 칼로리가 높고 기름기 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구. 신기하네. 같은 밤하늘 아래서 지금 둘 다 배를 쫄쫄 곯고 있다니."
유이치가 웃었다. 
몹시 바보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그때, 난 지금 돈까스 덮밥 먹을 거라구! 라고 자랑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더없는 배신처럼 느껴지고, 유이치의 머릿속에서 함께 굶어주고 싶었다. 
둘의 마음은 죽음으로 에워싸인 어둠 속에서,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브가 지금 거의 맞닿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지나면 서로 다른 회로를 따라 떨어지고 만다. 지금 여기를 지나면, 두 사람은 이번에야말로 영원히 친구로 남는다. 
틀림없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째야 하는지를 모른다.


4대를 내려오며 "카츠동의 발상지"로 사랑받았던 와세다의 산쵸안(三朝庵). 2018년, 112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영원히 문을 닫았다. 


이 무력감, 지금 그야말로 바로 눈 앞에서 끝내고 싶지 않은 것이 끝나가고 있는데, 조금도 초조하거나 슬퍼할 수 없다. 한없이 어두울 뿐이다. 
아무쪼록, 좀더 밝은 빛이나 꽃이 있는 곳에서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 
드디어 돈까스 덮밥이 나왔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나무 젓가락을 갈랐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양새도 먹음직스럽게 생겼지만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 굉장한 맛이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지만 나는 프로다. 이 돈까스 덮밥은 거의 행복한 만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솜씨다. 고기의 질하며, 소스의 맛하며, 계란과 양파를 익힌 정도하며, 고실고실하게 지은 밥하며, 어디 흠잡을 데가 없다. 나는 운이 좋다. 아아, 유이치가 같이 있다면, 하고 생각한 순간, 나는 충동적으로 말을 뱉고 말았다. 
"아저씨, 포장도 되나요? 일인분 더 만들어주시겠어요?"

그리하여 가게를 나온 나는, 깊은 밤 부른 배에, 아직 따끈한 돈까스 덮밥 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한길에 우뚝 서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내가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하고 주춤거리고 있는데 바로 눈앞으로 미끄러져온 빈 택시를 본 순간, 결심하였다. 


소설 속에서 미카게는 맛있는 카츠동의 조건을 일일이 나열한다. 

카츠동을 포함한 돈부리(どんぶり. 丼로도 표기하는데, 일본에서만 쓰는 한자다. 글자의 생김새로 음식을 나타냈다는 점이 재미있다.)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500엔짜리 동전 하나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이른바 원코인 런치의 간판 메뉴이기도 하다. 그러니 꼭 유명 돈까스집이 아니라도, 동네 식당과 밥집, 국수집에서도 뚝딱 만들어서 파는 것이다. 

달걀을 풀어서 간장(또는 우스터 소스나 데미글레이즈 소스)과 양파를 넣고 익힌 국물이 밥에 촉촉하게 스며든다. 한입 크기로 자른 돈까스를 달걀로 말아 밥 위에 얹는다. 차게 식어버린 돈까스를 재활용했다는 탄생 비화와는 달리, 아무래도 갓 튀겨서 따끈따끈한 돈까스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맛있다. 밥은 국물이 배어야 하니 조금 고슬고슬한 편이 좋다. 



잇달아 닥쳐온 죽음, 앞으로 가야할 길, 그리고 사랑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 앞에서 미카게는 혼란스럽다. 좀더 밝은 곳에서 느긋하게 생각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와중에 하필이면 두부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료칸에서 배를 쫄쫄 굶고 있다는 유이치에게 나는 곧 카츠동을 먹을 거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맛있는 것을 차마 나 혼자 먹을 수 없는 마음,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미카게는 무의식 속에서 인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아무 계획에 없었던, 미친 짓을 하게 한다. 한 입 먹은 카츠동의 그 행복한 맛에, 미카게는 충동적으로 포장 1인분을 더 주문한다. 내가 지금 이걸 어쩌겠다는 거지, 어이없어 하면서도. 


"돈까스 덮밥 배달하러 왔어." 내가 말했다. 
"혼자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맛있어서."
그리고 배낭에서 돈까스 덮밥 팩을 꺼냈다. 
"유이치, 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지? 지금까지의 인생과 깨끗이 결별하고 다시 시작할 생각이지. 거짓말 하면 안돼. 난, 알아."
언어는 절망을 말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침착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튼 이거 먹어. 자, 먹어."
눈물이 나올 정도로 파란 침묵이 밀려왔다. 눈꺼풀을 내리깐 유이치가 돈까스 덮밥을 받아든다. 
"괜찮으니까, 조금이라도 따뜻할 때 먹어봐."
"응 맛있겠는데."

"있지 유이치, 난 유이치를 잃고 싶지 않아. 우린 내내, 아주 외롭기는 하지만 푸근하고 편한 곳에 있었어. 앞으로 나와 함께 있으면, 괴로운 일이며 성가신 일, 지저분한 일도 보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유이치만 좋다면, 둘이서 더 힘들고 더 밝은 곳으로 가자. 천천히 생각해 봐. 이대로 사라지지 말고."
유이치는 젓가락을 놓고, 똑바로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돈까스 덮밥은 두 번 다시 먹을 일이 없겠지. ...아주 맛있었어."
"응."
나는 웃었다. 


한밤중에 카츠동 한 그릇을 전해주려 택시를 타고 먼 길을 달려간 미카게는 굳게 잠긴 료칸의 담벼락과 지붕을 기어올라, 기어코 유이치에게 닿는다. 그리고 따끈한 카츠동을 건넨다. 사랑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 사람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 마음이 "혼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카츠동에 담겨 있다. 다 좋으니까 일단 따뜻할 때 한입이라도 먹으라는 마디가, 어렴풋이 자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던 유이치를 현실로 데리고 돌아온다. 

그 사이에 평생 혼자였고, 누구를 사랑해본 적도 없었던 미카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정의한다. 전혀 편안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함께 더 힘들고 밝은 곳으로 한발짝씩 내딛는 것. 그 과정이 괴로운 일, 성가신 일, 지저분한 일들 투성이라도. 


나를 일본어의 세계로 이끌었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작품, <키친> (사진: ⓒ남수현)


<키친>으로 처음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난 후 나는 그녀의 책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무엇보다, 요시모토 바나나를 통해 일본어의 세계에 마침내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수 차례 일본어 학습을 시도했다 실패한 역사가 있어 일본어는 나와는 연이 없는 언어라고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런데 달랑 기초문법 교재 한권과 포켓 일한사전을 들고 일본어에 재도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만났던 책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또다른 중편, <하드보일드 하드럭>이었다.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필사하면서, 나는 비로소 일본어의 매력을 만날 수 있었다. 길고도 긴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수화기 저편에서 만난 연인들처럼. 


"어디서 거는 거야?"
나는 웃었다. 마음이 느긋하게 풀어진다. 
"도쿄."
라고 유이치가 말했다. 
그 말이 모든 것의 대답이라고 느꼈다. 


<참고자료 & 사진출처>


https://aizumonogatari.com/history/2800.html 
https://ameblo.jp/musuiteisyujinn/entry-11857551680.html 
http://don.or.jp/text/history/ 

https://gendai.ismedia.jp/articles/-/56861 
http://r.gnavi.co.jp/g-interview/entry/huuuu/4801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62129.html 
https://matome.naver.jp/odai/2149942542636144301 

https://www.mbs.jp/mbs-column/maetoato/archive/2018/10/12/014341.shtml 
https://www.mbs.jp/mbs-column/maetoato/archive/2018/10/12/014341.shtml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17006300Z20C17A5000000/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83852&cid=42717&categoryId=42718 

https://www.tokyo-jimushosagashi.com/aomonoyokochoeki/ 

https://www.waseda.jp/inst/weekly/attention/2018/07/31/50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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