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수업을 들으러 책방에 가는 길, 마침 내가 읽고 있는 같은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같은 전철을 타고 와서 같은 역에서 내리는데 같은 책을 읽고 있다니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하마터면 말을 걸 뻔 했다. 두 가지 색이 사선으로 반반 나뉘어 강렬하게 대비되는 표지 디자인 덕분에 조금 멀리서 언뜻 보았는데도 바로 그 책이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책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영화보듯이 바로 몰입되구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보는 족(族)', 이어폰을 끼고 있는 '듣는 족', 아무래도 가장 많은 눈감고'자는 족', 게다가 디지털 기기로 전자책을 보는 것도 아닌 오롯이 종이책을 손에 들고 있는 아날로그 형 '읽는 족(族)'을 발견하면 오래 헤어져있던 동족을 만난 듯이 반갑고 기쁜 마음을 숨길 길이 없다.
사실 나도 가방 안에 책이 있는데, 장거리도 아니고 몇 정거장 가지도 않는데 괜히 혼자 유별나 보일까봐 선뜻 꺼내지 못할 때가 많다. 아니면 북커버를 씌우기도 한다. 책 읽는 게 뭐 어때서? 심지어 지금 책방에 가는 길이기도 한데 말이다.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그만큼 종이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사람을 보기가 워낙 드물어져서일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전철 같은 칸 안에 딱 세 명만이라도 읽는 족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내 SNS나 알고리즘 안에는 온통 읽는 족과 쓰는 족으로 가득한데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그리 가깝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스스로 유별난 모습이 아니라 힙하고 멋진 모습으로 여길 수 있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가 보다.
모레도 책방에 간다. 이번엔 chatGPT 수업이다.누구나 대놓고 다니는 책방 하나쯤 있지 않나?책방 가는 날이 내게는 휴가이고 소풍이기도 하다. 한 달 스케줄을 잡을 때 최우선 순위가 책방이다. 그 다음 알바 나가는 요일을 정한다. 빈말도 아니고 과장된 말도 아니고 지극히 사실이다. 그만큼 내게는 책방에서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고, 생활에 휩쓸리지 않고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의지이자 노력이기도 하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가는 것이다.
책방은 책만 읽는 곳은 아니다. 책을 매개체로 한 독서와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북토크는 물론이고 뜨개질, 꽃꽂이, 그림과 공예, 타로 등 얼마든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매우 유연하고 변화무쌍하고 융합적인 공간이다.내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같은 취향을 향유하는 읽고 쓰는 동족들을 만나서 오랜만에 나의 영혼을 흠뻑 적시고 물들이고 오면 또 일주일 버틸만 해진다.
이 소중한 공간이 오래도록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빈손으로 그냥 오지 않고 꼭 한두 권 책을 사서 온다. 넉넉히 여유를 두고 미리 주문해 놓고서 책방 가는 날 찾아오기도 한다. 이것은 나의 우정이자 의리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작은 동네책방 하나 키우고 지키는 데에도 온 동네가 필요하다. 우리 동네가 '책방이 있는 동네'였으면 좋겠다.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