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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철활인

도가니

찜은 찜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by 햇살나무 여운

결국 참다가 무릎보호대를 샀다. 봄날 산책을 제대로 만끽할 기분도 들기 전에 무릎이 너무 아프다는 생각뿐이다. 도가니가 이렇게 쑤시는데 도대체 비는 왜 내리지 않는 걸까? 어차피 내릴 비라면 속 그만 태우고 어서 좀 내리지!


점심을 먹기 위해 자주 가던 식당에 들렀다. 1만 원에서 1만 2천 원 사이의 가격에서 이것저것 다 하는 밥집이다. 작은 쟁반 위에 상추샐러드와 밑반찬 두 가지, 애피타이저로 호박죽까지 포함한 1인분 기본 세팅은 모두 똑같고 메뉴에 따라 작은 뚝배기 안에 담기는 내용물만 달라진다. 이 식당의 시그니처는 갓 지은 쌀밥이 돌솥째로 나와서 뜨거운 물을 부어 숭늉까지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메뉴판 맨 윗줄에 있는 순두부찌개, 곤드레나물밥, 굴국밥 중에서 바꿔가면서 시킨다. 아주 가끔 생선구이를 시킬 때도 있다.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큰소리가 들린다. 한 젊은 남자 손님이 서빙하는 알바생에게 "돼지김치찜이 왜 이 모양이냐!"라고 따지는 소리다. 이 식당에 돼지김치찜 메뉴도 있었나? 메뉴판 맨 아래쪽에 적힌 1만 2천 원짜리, 있는지도 몰랐던 메뉴다.


돼지김치찜인데 왜 '돼지'는 거의 보이질 않느냐, 이게 무슨 찜이냐, '찜'이라고 쓰여있는데 찜이 왜 찜답지 않게 국물이 많으냐 등등등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한가운데 거칠고 사나운 목소리는 그렇게 한참을 계속된다. 그게 그리도 노여웠을까? 한 끼 식사값의 마지막 방어선을 겨우 지키고 있는 보통 밥집에서 돼지고기 전문점이나 찜 전문점의 퀄리티를 기대했을까? 왜 그냥 요리하신 셰프 님을 찾으시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희는요..."라고 뭔가 말하려는 알바생에게 "저희는요가 아니라요!"로 시작하는 같은 내용의 불만이 계속 반복된다. 헛웃음이 난다. 인간의 무력함 앞에 그나마도 없던 입맛이 뚝 떨어진다. 우리들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구나 싶다. 알바생의 최저시급 1만 30원에는 모욕 수당까지 포함되어 있을까? '인간'이라고 쓰여있는데 인간이 왜 인간답지 못하느냐고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저 사나운 불길은 산에 붙은 것인지 우리 마음에 붙은 것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어찌 이리도 각박한지! 저 바짝 마른 낙엽층이 우리네 마음 같다. 온 나라가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 들끓고 있다.


무릎이 아프다. 손목도 아프고 만지는 곳마다 쑤시고 열이 난다. 아, 마음이 아픈 거였구나. 어서 비가 내리길. 용서의 비가 내리길. 이 땅에도 우리 마음에도 거칠고 사나운 바람이 이만 잦아들고 용서와 연민의 비가 내려 적셔주길.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봄날을 봄날답게 꽃을 보느라 무릎 아픈 것도 잊은 채 하염없이 걷고 싶다.



작은 마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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