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붕고*에서 5일장이 열렸다. 도시를 둘러싼 수십 개의 언덕과 산 너머 수십 킬로 떨어진 마을로부터 키붕고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크고 작은 길이 사람 반 짐승 반으로 가득 찬다. 길 위에는 없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다. 여자들은 재봉틀과 색색의 원단들, 건초더미와 물병, 우유통과 꿀단지, 삼부사**와 과일로 가득 찬 채반과 아가사케 ***를 머리에 이고, 등에는 갓난아기를 업고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은 채 걸어간다. 남자들은 침대 프레임과 층층이 겹친 의자들, 60여 개가 넘는 바나나 다발과 자르지 않은 사탕수수, 빗자루와 장작더미, 숯 자루와 화로 등 트럭으로 옮겨야 할 물건들을 등에 지고 간다. 나무로 만들어 구르지 않는 자전거와 현이 없어 연주할 수 없는 기타도 보인다. 노인의 양손에는 다리를 끈으로 묶은 열댓 마리의 닭들이 총각무 다발처럼 거꾸로 매달려있다. 산 채로 뒤집힌 닭들의 눈에 두려움이 서려 있다. 아이들은 얇은 나뭇가지를 들고 자기 키만 한 염소와 양을 친다. 염소 떼와 양 떼는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관심 없는 듯 멍한 눈으로 풀을 씹으며 시장으로 흘러간다. 건기에는 바싹 마른 흙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데, 대지의 뜨거운 숨결 때문에 짐승들의 몸에서도 김이 모락거린다. 기름진 냄새를 맡은 파리들이 털 사이를 휘젓고 풀숲에 숨어있던 빈대들이 슬며시 올라탄다. 파리와 짐승, 사람이 많아질수록 장은 가까워진다. 더운 공기를 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면 장의 초입이다. 입구에는 늘 간이 정육점이 자리한다. 문과 벽, 창문 없이 도살대만 덩그러니 있는 정육점의 고리에는 살아생전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걸려 있다. 도살대의 새하얀 타일이 시뻘건 피, 시꺼먼 파리들과 대조가 된다. 타일이 번쩍거리는 바람에 고기가 오히려 부패해 보인다. 매달린 고기에서 아직 온기가 떠나지 않은 냄새가 난다. 소화가 채 안 된 풀냄새와 진흙을 머금은 물 냄새가 내장 냄새와 뒤섞인다. 간이 정육점이 보이면 최대한 숨을 참고 지나가려 하지만, 냄새는 기어코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온다. 죽은 짐승들의 눈이 산 사람보다 반짝여서 섬찟하다. 강에서 막 건져 올린 민물고기의 투명한 눈, 털을 제거하지 않아 박제한 듯한 기묘한 토끼의 눈, 아직 등에서 김이 오르는 염소의 취한 듯한 눈, 깃털이 날리는 닭들의 검은 유리구슬 같은 눈. 사체의 눈과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돌아서서 한참을 걸어도 그 시선이 계속 따라붙는다. 애써 무시하며 시장 안으로 들어오면 입구부터 물건들이 널려 있다. 1톤 트럭에 실려 온 초록 바나나와 양배추가 시장의 천막보다 높게 쌓인다. 감자와 고구마가 바닥을 구르고 양파와 토마토, 옥수수와 마늘, 꿀과 비누, 우유와 설탕, 옷가지와 가구, 숯과 화로가 자리한다. 중앙으로 들어가면 열대과일의 끈적 달큼한 냄새가 코를 마비시킨다. 애플망고와 나무토마토, 파인애플과 아보카도, 파파야와 몽키바나나, 만다린과 라임이 쌓여있다. 며칠 혹은 몇 주, 몇 달을 각자의 땅에서 정성 들여 키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부락의 모든 일거리와 놀거리가 몰린 시장은 갓난아기부터 기어 다니는 아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들의 놀이터이자 어린이집, 그리고 수유방이 된다. 아기들은 맨몸으로 삶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기저귀, 팬티, 천 조각 하나 없이 양배추 이파리와 과일 껍질들, 뱉은 씨와 껌 종이 위를 나뒹군다. 막 나기 시작한 젖니 사이에 검은 모래와 주황색 열매가 끼어있다. 꼬불꼬불한 머리가 초록색 이파리에 물들고 작은 손과 발은 기름투성이다. 바닥의 먼지가 계속 얼굴에 휘몰아치지만 커다란 두 눈은 개의치 않고 반짝인다. 엄마가 눈을 잠시 뗀 사이 조금 멀리 기어가지만 이름 모를 삼촌과 이모들이 보살펴준다. 시장 전체가 하나의 핏줄로 이어진 대가족 같다. 더 이상 아기가 아니게 된 어린이들은 재빠르게 일을 시작한다. 트럭의 야채를 상인의 매대로 나르고 시장의 물건을 손님의 집으로 배달한다. 손님과 일이 많은 만큼 또래 경쟁자들도 많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동자와 신경이 온통 사람들의 표정과 손짓에 쏠려있다. 시장에 외국인이 나타나면 횡재다. 동네 어른보다 훨씬 어리숙해 보이는 외국인의 지갑은 별것 아닌 일에도 쉽고 통 크게 열린다. 애플망고 한두 알만 사러 왔던 외국인은 짐꾼이 필요 없지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고 없던 장바구니도 만들어서 내어 준다. 제일 먼저 달려온 친구에게 장바구니를 건네고 먹고 싶지 않던 파파야와 두리안도 담는다. 시장을 구경만 하러 왔다면 과일이나 야채 이름을 현지어로 물어보며 속성 과외비를 한두 푼 쥐여준다. 경쟁이 최고조로 달한 치열한 한낮, 땡볕에 모인 아이들의 볼에 이른 주름이 져있다. 해가 천막 아래로 떨어지기 전 시끌벅적한 축제 같던 장이 마감을 준비한다. 격앙된 소음이 점차 사그라들고 시장 전체에 알람이라도 울린 듯 일사불란하게 제자리를 정리한다. 달빛으로는 부족한 밤길이기에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두들 필요한 것을 하나 이상은 챙겼다는 얼굴로 어둠을 밟으며 돌아간다. 지나치게 많이 번 사람도, 지나치게 부족한 사람도 없다. 시계 없이 파장 시간을 알듯, 아무 간판과 표식 없이도 약속된 장소였던 장터는 다시 공터가 된다. 전깃불이 닿지 않는 집 그림자가 문을 닫고 삶과 노동이 유창하게 몸에 밴 아이들도 하루를 마무리한다.
*키붕고(Kibungo): 르완다 동부에 위치한 인구 46,000여 명(2005년 기준)의 도시
**삼부사(Sambusa): Samosa라고도 불리는 안에 야채나 고기를 채워 튀기거나 구운 음식
***아가사케(Agaseke): 장식품이나 혼례용품으로 쓰이는 르완다 전통 수공예 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