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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암씨 Jun 29. 2021

태그(Tag)와 꼬리표 (2)

뜻밖의 인문학

종이보다 더 오래된 태그의 역사


  요즘에야 제품에 붙이는 태그는 종이에 인쇄된 내용을 태그용 건(gun)과 태그용 핀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과거엔 나무에 붓으로 적어 노끈으로 묶거나 가죽끈으로 달아 걸었다. 왜 태그는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도 나무로 계속 쓰이게 되었을까?


  보통 종이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중국과 이집트가 서로가 먼저라며 우열을 겨루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전자는 채륜(蔡倫, 50년~121년 중국 후한 중기의 환관)이 발명한 종이(성분이 되는 물체를 부수어 물에 풀어 펴서 말렸다.)이며, 후자는 파피루스(일정한 결이 있는 식물의 내피를 가로와 세로로 결을 합쳐 서로 눌러 붙여서 말려서 사용했다.)이다.  영어 paper의 어원이 파피루스(papyrus)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지금의 종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생산 방식의 원리(펄프를 이용한 제작) 등을 보면 채륜 쪽이 더 가깝다.


  어찌 되었건 종이가 발명되기 전, 그러니까 13세기 이전까지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사용했던 것들은 나무나 뼈, 금속판, 석판 혹은 옷감 등이 사용되었다.  더 오래전 기원전의 역사에는 뼈에 기록된 글씨들이 남아 있었고, 기원전 400여 년경의 문방구 일체의 재료 중 나무판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즈음부터는 주로 나무로 된 세로로 긴 판에 글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단단한 물건에 날카로운 도구로 파내어 글을 남기곤 했지만 나무판을 서사 재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나무에 잘 스며드는 먹과 붓을 사용하게 되었다.  나무가 사용되면서 먹과 붓의 발전을 견인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사용되던 나무판은 최대한 얇게 쪼개어 사용하였으나 건조가 되는 과정에서 아무리 잘 펴서 말린다 해도 둥근 방향으로 휘어져 버리는 습성 탓에 가로방향으로 넓게 사용하기엔 불편함이 있어, 나무의 결 방향으로 세로로 길게 사용하게 되었고, 동양 문헌의 세로 쓰기가 자연스럽게 시작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세로로 길게 쓰일 나무들을 묶어 책을 만들게 되었으니 지금 책을 나타내는 한자 冊의 상형 원리는 당연하다고 보인다.  이런 쪽 나무에 글을 적은 것을 간독(簡牘)이라 하였고, 간독 여럿을 묶어 책을 만들고 보관하게 된다.

冊 딱 이렇게 생겼으니.. <출처 : 대만 中央研究院 數位文化中心 https://digitalarchives.tw/>

  두보(杜甫 당나라의 시인 712~770)가 말했던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분명 이런 나무로 된 책을 일컫은 것일 게다!!


  이런 나무 형태의 책이나 문서는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도 꽤나 오래 사용되어 6~7세기경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 왕실이나 귀족들은 비단이나 삼베 같은 천에 글을 써 책을 만들거나 문서로도 썼고 그림도 그렸지만, 비싼 비단의 가격은 왕실과 나라의 재정을 흔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록의 보관은 나무에 적은 간독 형태의 책으로 보관했으며 종이가 널리 사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된 6~7세기경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나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8세기 경인 삼국시대까지도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사용하던 간독(簡牘)을 묶어 책으로 사용했는데 나무를 사용한 목간(木簡)과 대나무를 사용했던 죽간(竹簡)도 있었다.  이런 간독(簡牘)은 메모 정도의 내용을 보낼 때, 나무 쪽 하나 정도에 간단(簡單)하게 적어서 보내기도 했는데, 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간독(簡牘)간단(簡單)에 쓰인 간(簡)은 같은 한자이며 이런 연유로 기인된 글자이다.


  이런 간독의 형태로 상인들은 마차나 상선에 상품을 쌓아서 덮고는 간독 형태로 간단하게 메모해 놓았다.  어떤 것을 누가 누구에게 어디에서 어디로 보내는지의 내용을 말이다.  이러한 내용은 한번 전달되면 필요가 없어지니 앞에서 말했듯 칼 같은 것으로 긁어서 지운 후 다시 쓸 수도 있었고, 비나 물에 젖어서 훼손될 위험도 없었으니 종이가 널리 쓰였어도 종이로 바뀌지 않았다.


  수년 전 낙지가 안고 올라온 청자 덕에 발굴된 태안 앞바다의 유물 중 한 고려청자에는 이런 간독 형태의 간단한 메모가 태깅되어 있다.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 靑磁陰刻蓮花折枝文梅甁─竹札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重房都將校吳文富     宅上精蜜盛樽封

  내용인즉...

  “중방도장교오문부(重房都將校吳文富)”는 중방에서 도장교라는 무관직을 맡은 오문부라는 수취인을 표기한 것이다. 뒷면에 “택상정밀성준봉(宅上精蜜盛樽封)”은 ‘준(樽)에 좋은 꿀[精蜜]을 담아 올린다’는 내용이다. 즉, 당시 개경에 있는 중방 도장교 오문부에게 청자 매병[준]에 좋은 꿀을 담아 올렸던 상황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간독 형태의 메모는 고려청자의 입구부에 달린 형태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전달되지 못하고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0)의 DHL 택배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도 국가의 보물로 지정되어 잘 보관되고 새로운 역사의 교육에도 활용되고 있으니 탁월한 태깅이 아니었나 싶다.




  잘게 잘라서 행태 조차 알 수 없게 만든다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특정 프로그램 언어에서는 먼저 처리해야 할 내용의 기호로 사용되기도 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것을 모으기 쉽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SNS에 가끔 해당 해시태그 사용자 1명인 태그들을 보고 눌러보곤 하는데 띄어쓰기 기호로 쓰는 건 아닐까 싶은 글들이 대부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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