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게임도 내게는 독이다.
쉴 때 집 주변을 지나다니다 보면 개와 함께 걷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어떤 이는 개를 줄로 묶어 산책시키고, 어떤 사람은 유모차에 태우고 다닌다. 품에 안고 다니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렇게 반려견과 함께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반려견처럼,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하나씩 혹은 그 이상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바로 중독이다.
그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쇼츠 중독, SNS중독, 알코올중독, 주식중독, 음식중독... 그 외에도 수많은 중독들이 있다. 현대 사회는 이런 중독을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매혹적이며,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오히려 우리는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소파에 눕히고 무심코 켠 유튜브. 달콤한 피로 회복제처럼 보이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느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스크롤은 멈추지 않고, 우리의 뇌는 그것을 멈출 이유를 찾지 못한다.
TV 광고, 엘리베이터 속 LED 화면, 유튜브의 맞춤형 추천. 모든 것이 우리를 어떤 중독으로든 이끌고, 결국에는 지속 가능한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그나마 덜 해로운 중독을 고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각종 디톡스 프로그램이나 제품들이 성황을 이루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마 '헬시 플레저', '디지털 디톡스' ,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배경 속에서 자연스레 나온 흐름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현대인 중 한 명이다.
나는 게임중독자다.
이 중독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조용한 새벽. 모두가 잠든 집 안에서 혼자 컴퓨터를 켜던 그 설렘은, 어쩌면 나만의 '새벽 미사' 같았다. 경건했고, 벅찼다. 그렇게 정신없이 메탈슬러그 3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인이 되어 결혼한 뒤엔 스팀 게임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위쳐 3, 다잉라이트, 엘든링, 발더스게이트 3은 물론, 디스 워 오브 마인 같은 매니악한 게임부터 귀곡팔황이나 대협입지전 같은 중국 게임까지. 족히 백 개는 넘는 게임을 수백 시간 동안 즐겼다. 이렇게 수 십만 원을 쓰고 수백 시간을 들여도 후회는 없었다. 즐거웠으니깐. 하지만 문제는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지각하거나 결근한 적은 없었다. 겉으로는 멀쩡했다. 하지만 퇴근 후 '세 시간만 하자'고 다짐했건만, 정신을 차리면 새벽 3~4시. 다음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결국 자괴감과 피로만 쌓여갔다.
중독 관련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중독은 양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적게 하더라도 조절할 수 없다면 중독이다.
그 구절을 읽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상태가 바로 그랬다.
그래서 인정했다. 나는 게임 중독자다. 모든 해결의 시작은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이 중독이 내 삶에 끼치는 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육체적·정신적 악영향을 더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아이키퍼'앱을 설치해 사용 시간을 제한해보기도 하고, 아예 컴퓨터 본체를 본가에 맡기기도 했다. 심지어 아내에게 "내가 게임하면 백만 원을 주겠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아이키퍼는 고객센터에 전화해 풀었고, 본체는 차에 실어 다시 가져왔다. 백만 원 약속은 아내에게 비굴하게 부탁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왜 나는 매번 실패하는 걸까? 곰곰이 고민해 봤다. 실패의 패턴은 거의 늘 같았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게임을 끊는다. -> 한 달쯤 잘 유지된다. ->시간이 남는 순간이 찾아온다.-> 심심함과 권태로움을 느낀다-> 못 참고 게임을 한다. -> 후회한다.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순환을 반복한다.
문제는 '시간이 남을 때'였다. 나는 교대 근무를 하는데, 특히 야간 근무 후 연차를 쓰면 3~4일 정도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 생긴다. 그때 심심함과 권태로움이 몰려오고, 게임에 대한 욕구가 급속도로 강해진다. 그리고 이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손을 댄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늘 같은 말이 맴돈다.
"이거 좀 한다고 뭐 달라지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하자"
중독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무너진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게임은 내게 '독'이다.
이 문장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서 나온 말에서 따온 것이다. 알코올 중독을 가진 사연자가 "어떻게 하면 술을 끊을 수 있나요?"라고 묻자,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술을 독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좋은 술도 그대에겐 독입니다."
이 말을 내식으로 바꿔다. "게임은 내게 독이다. 아무리 좋고 재밌는 게임도 결국은 독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게임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겐 건강한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 수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작하면 멈출 수 없기에, 그것은 내게 독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G.O.A.T(Game of All Time)급 게임이라도, 아무리 재미있어 보여도, 그것이 내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하지 않는다. 만약 하고 싶다면, 그에 따른 건강과 삶의 균형을 잃을 대가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최근 게임을 안 하고 100일쯤 됐을 때, 강한 유혹이 밀려왔다. 그때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게임은 내게 독이다. 아무리 좋은 게임도 내게는 독이다."
억지로 억누르기보다는 이렇게 흘려보냈다.
"아, 지금 게임이 하고 싶구나. 그런데 그건 내게 해가 되니까 하지 않겠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2~3일이 지나니 신기하게도 욕구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게임을 끊고 싶다는 글을 브런치에 여러 번 올렸었다. 내 첫 글도 게임 중독에 관한 글이었다. 하지만 이번 글이야말로, 그 순환 고리의 마지막 장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사진출처 : chat gpt 4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