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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하다 죽을 순 없잖아

나는 왜 생각만 할까

by 도냥이

추석 당일, 아내와 함께 송도의 대형 카페 '카페 꼼마'에 다녀왔다. 우리 집에서 차로 삼 십분 정도 걸리는 다소 먼 거리다. 하지만 맛있는 커피와 넓고 쾌적한 공간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책들과 명사들의 추천 도서가 가득한 이곳은 쉽게 후보에서 제외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책을 좋아하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광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돈 한 푼 받지 않고 쓴 글이다.


이날 저녁 본가에 명절 인사를 드리러 가야 했다. 그럼에도 오전 시간을 활용하고 싶어 외출했다. 우리 부부는 쉬는 날 아침이면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가려 한다. 집에만 있으면 쉽게 지루해지고 무기력해지는 내 성향 때문이다. 또 집에 있으면 유튜브만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는 걸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생긴 암묵적인 합의이기도 하다.


카페에 도착해 커피를 주문했다. 아내는 기사 실기 공부를 시작했고 나는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에 글을 쓰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을 쓰기 싫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왔다. 꾸준히 써온 글임에도 여전히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참 신기하다. 이럴 때마다 인간은 타고나길 글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천재 중 천재였던 소크라테스조차 글쓰기에 반대했으니 말이다. 그는 글에 의존하면 기억력이 훼손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도 글쓰기가 귀찮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브런치스토리 창 옆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띄웠다. 게시글을 클릭하려던 그때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웹서핑을 하다가 한 시간을 날려버렸었다. 마치 인터스텔라에서 미래의 내가 S.T.A.Y라고 외치며 멈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중에 쓰자며 노트북을 더 펐다. 하지만 곧 '지금 안 쓰면 이따가도 안 쓰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늘 같다. 결국 안 쓴다.


글쓰기란 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오롯이 내 생각만으로 무언가를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백지 공부법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느낌을 잘 알 것이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아침에도 쓰지 않는다면 더 지친 저녁에는 과연 쓸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고 있다. 지금 쓰지 않으면 나중에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행동은 훨씬 강하다.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책을 머릿속에 품고만 있는 사람보다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들은 행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쉽게도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편이다. 이상한 상상을 자주 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 칼을 들고 위협한다면 어떻게 대응할까. 외부 업체 직원이 우리 팀장님을 무시할 때 내가 대신 나서 싸우는 장면을 그려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실제 행동보다는 일어나지도 않을 머릿속 시뮬레이션에 빠지기 일쑤다.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금세 집중력을 잃는다. 정신과에서 ADHD검사를 받아봤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행동력은 떨어진다. 생각에 시간을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또 생각만으로도 일단 결과를 이룬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행동의 동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로 장편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 삼 년이 지났지만 최근 쓰기 시작했다. 기사자격증을 따겠다는 말도 그저 말로만 끝났다. 인사이동 때 동료에게 감사 편지를 쓰겠다고 했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이러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을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숨을 거두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이렇게 죽을 순 없다.


그래서 요즘엔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고 할 때 먼저 멈춘다. 생각만 하다 지쳐버릴 걸 알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멈춘다. 불교에서 말하는 알아차림 훈련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생각이 멈춰지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한다. 그것마저 어렵다면 일단 밖으로 나가 걷는다. 가수이자 배우인 아이유도 생각이 많아질 때쯤 나가서 걷거나 뛴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앞으로도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계획하고 상상하고 망설이고 다시 돌아오고. 그 사이에서 몇 번은 지치고 몇 번은 멈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이 길어질 때마다 나를 다시 현실로 이끌어줄 행동 하나쯤은 항상 품고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결국 카페 꼼마에서 글을 쓰다 이런 생각까지 흘러왔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끝까지 써냈다는 것이다. 몇 번이고 웹서핑 창을 열까 고민했고 노트북을 덮으려다 다시 열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써냈다. 카페를 나설 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믿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 글을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허투루 지나가진 않았다고 느낀다. 행동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앞으로도 무거운 생각의 고리를 잠시라도 끊어낼 수 있는 행동 하나쯤은 계속 품고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언젠가는 지금 미루고 있는 이야기들도 한 줄 한 줄 써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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