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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May 12. 2020

오래 전, 할머니와 꽃게를 먹었다

음식 에세이

엄마와 먹은 꽃게

주말에 집에 내려갔는데 송장이 붙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가 식탁에 놓여있었다. 서산에서 엄마 친구가 택배를 보낸 것이었는데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껍질이 단단하고 싱싱한 꽃게가 6마리나 있었다.


엄마와 난 이 꽃게들을 된장 넣고 끓일지 아니면 쪄먹을지 고민하다가 모두 쪄먹기로 결정했고, 요리하기 전에 먼저 꽃게를 솔로 깨끗이 닦았다. 예전에 살아있는 꽃게를 닦았을 땐 심적으로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죽어있어서 한결 수월하게 닦을 수 있었다. 


꽃게를 꼼꼼히 닦다 보니 외할머니의 꽃게 찌개가 생각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젠 먹을 수 없지만 내가 먹어본 최고의 꽃게 찌개였다.


8년 전이었다. 힘든 수술을 받으신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삼촌이 사고를 당해 할머니를 돌봐드릴 수 없었고, 마침 쉬고 있던 내가 얼마 동안 할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렸다. 내가 사는 집은 할머니 댁과 가까워 아침에 시장에 들러 장을 보기도 했는데, 그날은 시장에서 가을 꽃게를 싸게 팔고 있어 1만 원어치를 사서 신나게 할머니한테 갔었다. 할머니는 꽃게를 사 온 나를 보며 좋아하셨다.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닌 별미라 할머니도 나처럼 꽃게가 참 반가웠으리라.  


할머니의 지휘 아래 아바타가 되어 꽃게를 손질했다. 꽃게를 깨끗이 씻은 후 등껍질을 떼고 입과 아가미 등을 제거한 후, 몸통을 1/4 조각이 되도록 잘랐다. 냄비에 물을 넣은 후 꽃게와 양파를 넣고 끓을 때쯤 할머니가 양념장을 넣었다. 얼핏 봤을 땐 간장, 고춧가루, 설탕 등이 들어간 것 같았다. 그렇게 30분 동안 푹 끓여낸 꽃게 찌개는 양념장이 자작했고 달큼하면서도 얼큰한 향과 간장의 짭짤한 향이 났다. 


식탁에 한상 차리고 밥과 함께 꽃게 찌개를 먹었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하얀 밥에 찌개 국물과 게의 살을 발라 비벼 먹었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난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비웠고, 할머니도 참 잘 드셨다. 


이후에 혼자 할머니의 양념장을 비슷하게 흉내 내어 만들어 꽃게 찌개를 끓였는데 정말 맛이 하나도 비슷하지 않아 실망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요리법을 물어볼 수는 없지만, 양념장의 비율을 바꾸어 만들다 보면 언젠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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