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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May 18. 2020

고둥과 고등어에 관한 오해

음식 에세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방학 때이면 친할머니가 계시는 삼천포(사천, 삼천포항)에 내려가 일주일씩 지내다 왔다.


버스를 6-7시간씩 타고 할머니댁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나를 안고는 제일 먼저 뭐가 먹고 싶은지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고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셨다. 그렇게 난 고둥이 아닌 고등어를 먹었고 내 말을 알아듣는 못하는 할머니를 속으로만 야속하게 생각했다.


몇 번의 방학을 고둥 대신 고등어를 먹었을까. 난 친할머니가 주시는 고등어가 싫어졌고, 저녁식사 때 할머니가 바삭하게 구운 고등어를 젓가락으로 깨작거렸다. 할머니는 의아한 얼굴로 맛이 없냐고 물었다. 소심한 나는 크게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그게 아니라… 고둥… 고둥..’이라고 작게 소리 내자 할머니는 ‘이기 고등어 아이가.’라고 사투리로 말하셨다. 또, 우물쭈물하는 나를 보며 아빠는 눈치를 챈 듯 웃으며 말했다.


“어머이요. 기게 아니라 고.둥.입니다. 야가 까먹는 고둥이 먹고 싶은 갑네예.”


그제야 할머니는 ‘아, 고둥.’하시며 다음날 고둥 한 바가지를 삶아서 쟁반을 받친 큰 플라스틱 채에 넣어 저녁 식사 후에 내놓으셨다.


난 고둥이 참 좋았다. 바늘로 돌돌 돌려가며 고둥의 살을 발라 먹는 게 꽤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쑤시개로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쑤시개로 하다 보면 뾰쪽한 끝이 고둥 삶은 물 때문에 불어 금방 뭉툭해져 살을 발라낼 때 애를 먹는다. 그래서 고둥 먹을 땐 바늘이 최고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고둥을 먹을 땐 누가 살을 완벽하게 발라냈는지 겨루기도 했는데 승자는 늘 엄마였다. 작고 가는 손으로 어쩜 그리도 고둥을 살살 달래 가며 살을 발랐는지 모른다.


고둥은 맛도 참 좋았다. 머리 부분은 쫄깃하고 짭조름하면서 단맛이 났고, 내장 부분은 바다향이 나면서 쌉싸름한 맛이 났다.  


아쉽게도 지금은 고둥을 쉽게 사 먹을 수 없다. 사 먹는다 해도 너무 비싸거나 비리비리한 녀셕들뿐이다. 내가 어릴 적엔 삼천포 앞바다가 참 맑아서 해녀들이 고둥을 주워오듯 했다고 한다. 나도 종종 갯벌에 나가면 바위에 붙은 작은 고둥을 손으로 잡기도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오늘,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떠들며 고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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