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줘야 해
오래 전에 읽은 <땡큐! 스타벅스>, 아직도 그때 기억이 선하다. 책을 읽기 위해 잠꾸러기인 내가 아침에 벌떡 일어나 까페로 달려가고, 책을 읽다가 시간을 넘겨 부랴부랴 매장으로 빛의 속도로 날아가던 기억. 출근해서도 온통 책 생각.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까페로 달려가곤 했다. 그야말로 ‘안달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었다.
그 와중에 <서양 철학사> 축제를 올리지 못하고 끙끙대느라 본의 아니게 두 집 살림을 하느라 나름 정신없게 보냈지만, 그 사이 틈틈이 안달하며 읽는 <땡큐! 스타벅스>는 그 재미와 느낌의 깊이를 더 해주었다.
마치 10분간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 친구 반에 달려가서 수다 떨고 수업 종 땡~ 치면 행여 선생님이 먼저 들어오셨을까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총알처럼 내 교실로 달려오면서도 그렇게도 재밌고 달콤했던 10분의 휴식. 바로 그랬다. <땡큐! 스타벅스>는 바쁜 일상 속에 그런 짜릿한 휴식과 함께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던 책이다.
명문 예일과 버클리를 졸업한 마이클 게이츠 길. 세계 굴지의 회사 JWT에서 승승장구 빛나는 성장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었다. 선조 때부터 부유한 명문가 집안에서 고상한 직업과 취미를 가진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마이클 게이츠는 문학, 정치, 건축, 경제 분야를 넘나들었고, 헤밍웨이, 프랑크 시나트라, 무하마드 알리, 심지어 영국 여왕까지 온갖 유명인사들은 만나며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비극은 닥쳤고 현실은 잔인했다. 60의 나이에 집도 잃고 부인과도 이혼하고 자식도 멀리서 밖에 볼 수 없는, 그런 무일푼의 노신사가 될 줄 감히 꿈에서라도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방황하며 오갈 데 없이 스타벅스에 앉아있던 그에게 우연히도 크리스털이란 아주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스타벅스 매니저로부터 일자리 제안을 받게 된다.
그에게 다가온 새로운 기회. 그에게 참 인생이 무엇인지 삶 속에 느끼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스타벅스와 마이클 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우연하게 만난 ‘크리스털’이라는 천사의 손길로부터.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바로 마이클 길의 살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마치 ‘빈곤’이라는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그를 피하는 예전 친구들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그는 ‘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그의 살고자 하는 욕망, 용기, 그리고 그 안에서 적응하고자 하는 열망과 몰입의 극치를 이루는 노력. 그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 와이프와 자녀들로부터도 떨어져 나와 온전히 혼자 맞닥뜨려야 했을 때 그는 얼마나 암담했을까. 그가 명품 옷과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어도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의 허망한 눈빛을 감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크리스털의 눈에 띄었던 이유기도 했다.
그가 화장실 청소를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에선 울컥했다. 손님들의 까다로운 주문에 맞춰 온갖 종류의 커피를 뽑아내야 하는 카운터로 가는 것이 두려웠기에 화장실 청소라도 잘해야 잘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던 마이클.
행여 나이가 많아 그것 때문에 다른 파트너들에게 불편을 끼치게 될까 봐 힘들다는 소리도 못하고 그렇게 정신력으로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 임하는 마이클을 보면서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나라면 내게 예기치 않게 다가온 어느 날의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며 저렇게 해낼 수 있을까? 비교 상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장면마다 비교되며 나를 고개 숙이게 했다.
그의 스토리가 그렇게도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그가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을 망각 주머니에 집어넣고 커다란 웃음 속에 쿨하고 멋지게 해낸 것이 아니라 갈등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을 그리워하고 비교하고 때로는 넘어지려 하면서도 계속 일어났던 인간적이 모습 때문이었다. ‘과거는 짧게, 미래는 길게’를 외치며 ‘나를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줘야 해..’ 위로하면서 ‘좀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해야지’라며 스스로를 토닥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기회를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잡았다.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주어졌던 특별하고 부유했던 환경에서는 체험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그가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이 이제야 발휘되며 그렇게 주위로 환한 빛을 비추며 퍼져 나갔던 것이다.
그의 솔직함이 좋았다. 자신이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을 가족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속이지 않고 떳떳하게 말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멋짐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녀들의 태도도 놀라움이었다. ‘그런 아빠가 창피하다, 부끄럽다’가 아닌, 재밌다 흥미롭다며 아빠의 새로운 인생을 마음으로 축하해주며 함께하는 멋진 자녀들. 남매들이 아빠가 일하는 스타벅스 매장에 모두 찾아와 함께 하는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눈물이 났던 장면이다.
특히나 한창 예민한 고등학생인 아들인 챨리가 어떤 거리낌도 없이 받아들이며 스타벅스 티켓을 구하는 장면에선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그런 아들을 보는 나이 든 아빠 마이클의 마음은 미안함과 흐뭇함, 그리고 대견함으로 버무려져 얼마나 흐뭇하고 따뜻했을까. 사랑하는 자녀들과 모두 함께 포옹하는 장면은 눈물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마이클 게이츠 길의 반전 드라마. 보통 가난함에서 부유함으로 변하는 반전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에게 <땡큐! 스타벅스>는 아주 색다른 반전의 흐뭇함을 안겨준다. ‘부가 다는 아니다’ 또는 ‘부가 행복을 안겨주는 건 아니다’라는 식상한 결론으로 잇고 싶지 않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런 식상한 결론이 아닌, 우리가 어떤 막다른 골목에 매몰차게 몰아세워진다 해도 삶은 우리의 선택하는 것이고, 삶의 길은 우리가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고, 그 기회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적이면서도 가슴 떨리는 삶의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마이클은 크리스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그건 분명히 마이클의 선택이었다. 거기서 마이클은 고백한다.
크리스털의 태도가 어떻든 간에
그의 제안만큼은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삶에 대한 열정, 그의 삶을 받아들이는 용기 있는 자세가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며 희망을 안겨준 것이다. 그가 지난날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신세한탄 만하며 자신의 삶을 쓰레기통으로 내던지지 않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자신의 삶을 이기적인 자세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포기하지 않는 삶에 대한 열정, 결국 그것은 겸손함이 아녔을까 생각해 본다.
읽는 내내 마이클의 상황 속에 나를 놓아보면서 읽었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나라면 마이클처럼 했을까?’
매 순간 비교되며 그의 삶에 대한 용기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내게 이렇게 최악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과연 나는 내 삶을 온몸으로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잡을 수 있을까?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묘미는 바로 커피 종류와 사이즈 별로 컵 옆면에 적혀 있는 구절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스타벅스를 그렇게 애용을 해도 컵 옆면에 그런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글이 쓰여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팔기 위한 회사가 아니라, 마치 커피 한 잔에 꿈 하나를 용기 하나를 희망 하나를 함께 담아 주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난 지금 이 부분을 스타벅스에 앉아서 쓰고 있다. 얼마나 분위기 있는 작업이었는지. <땡큐! 스타벅스>를 스타벅스에 앉아 읽으며 책에 단상을 끄적거리는 이 느낌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짜릿한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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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떙큐! 스타벅스>는 2010년 5월에 쓴 리뷰를 정리해서 올린다. 4년 전, 우리 부부가 브라질에서 지난 25년간 경영해 오며 이루어 냈던 회사를 닫아야 했던 순간에 느꼈던 절망적인 암담함을 겪고 나니 마이클의 마음을 조금은 더 가까이 느껴지는 듯하다.
마이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그리고 그 후로 닥친 힘든 코로나 상황에서도 잘 견디어 내신 모든 분들에게 수고하셨다고 참 잘 견디어 내셨다고 따뜻한 허그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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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ine Dion - A New Days Has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