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적인 설화성과 투키디데스적인 객관성이 어울린 책
김진경의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을 두 번째 읽는다. 확실히 처음 때와는 다른 깊은 감동이다. 읽는 페이지 하나하나에 담긴 내용을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매눈을 하고 읽었다.
역시나 김진경 교수의 그리스 역사와 이집트의 역사, 그리고 성경의 역사를 비유하는 부분은 참으로 맛갈스런 별미였다. 바다의 나라에 ‘바다’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고, 문학과 철학과 예술이 빛났던 나라에 ‘문학’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나라 그리스는 언제나 내겐 어쩔 수 없는 동경이고 그리움이다.
이번 리뷰는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나 사건을 키워드로 풀어보았다.
처음 읽었을 때도 페이시스트라토스에게 깊이 끌렸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의 매력에 이끌렸다.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고 독재자의 행보를 보이는 리더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국민이 부여한, 시민이 부여한 역할을 마치 자기 것인 것 마냥 착각하는 데서 오는 무지와 교만, 그리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오는 것일 터. 공교롭게도 내가 속한 두 나라의 무늬가 모두 그렇다.
그가 참주가 되기 위해 부린 여러 가지 간교와 유치한 연극은 찬성할 수 없다. 허나, 그가 참주가 되고 난 후 빈부의 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것이나 자신을 반대한 솔론을 예우하며 대접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며 부러움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또한, 그가 세운 훌륭한 법들을 존중하고 지켜나가고자 한 그의 모습은 참주가 되기 전에 보여준 간사한 모습과는 달리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분별력으로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훌륭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가 그리는 리더가 아닐까.
다른 독재자들과 달리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선의의 독재자로 일관한 셈이다. 정적에 대해 관대했고 산업을 장려했으며,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도시를 미화했고, 법을 준수하면서 종교와 예술을 존중했고, 체육을 장려하면서 빈민을 구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를 유지하였다. 그는 독재자의 모범이었던 것이다.(P119)
김진경 교수는 페이스스트라토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어떤 리더였는지 잘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클레이스테네스의 도편 추방 제도는 무모하게까지 느껴지는 위험한 제도였다. 추방해야 할 위험한 정치가의 이름을 시민 각자가 도편(오스트라콘)에 긁어서 투표를 하다니. 이 도편 추방 제도는 비록 시민권 박탈이나 재산 몰수가 수반되지 않는다 해도 10년이란 세월은 추방당하는 정치가의 정치적 기반이 충분히 상실될만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역시나, 이 도편 추방제는 자신들의 정적을 물리치기 위해 악이용 되었다.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페리클레스 등을 배출한 그 당시 정권의 주축 가문인 알키메오니다이가 가장 많이 추방되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도편 추방 제도를 접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살라미스 전쟁을 아테네의 승리로 이끌었던 (영화 300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데미스토클레스가 정적을 쫓아내기 위해 이 제도를 악이용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역사적 사실이다.
하긴, 내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페이시스트라토스도 간교한 방법으로 참주가 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데미스토클레스에게도 그것이 정적을 쫓아내는 최선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아테네를 사랑하여 자결을 택하긴 하지만, 페르시아로 몸을 피해 달아난 데미스토클레스는 그닥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지진 않았다.
양탄자가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잘 몰랐던 나라 페르시아는 미스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매력적인 나라로 느껴졌다. 영화 <300>에서 브라질의 인기 배우인 호드리고 산또로가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 역할을 맡았었다. 영화를 보며 열광한 이가 어디 나 하나였을까.
페르시아는 키로스 왕이 메디아 왕국을 합병한 후 리디아, 바빌로니아, 이집트를 점령하여 이뤄진 나라인데, 그렇게 여러 민족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한 제국이 별다른 반란을 겪지 않고 200년이나 존속했다고 한다. 언젠가 일본 역사 강의에서 일본의 왕들이 한 가문에서 지금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놀라움이었다.
Chapter 3에 펼쳐진 ‘페르시아 전쟁과 그리스의 약진’ 부분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영화 300과 300 II 제국의 부활을 보고 난 후라, 스토리가 전개되어감에 따라 영화 장면이 흐름을 타고 그대로 떠오르며 책의 내용과 오버랩되어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국가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죽음에 마치 나도 아테네가, 스파르타가 내 나라인 듯 그렇게 눈물이 서리곤 했던 게다.
책에서 데미스토클레스가 언급될 때마다 영화 <300>에서 그 역을 맡았던 설리반 스테플턴이 떠오르며 모든 사건들이 사실적으로 다가와 그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레오니다스 왕 역을 맡았던 (우리 큰 딸아이가 좋아하는) 제럴드 버틀러가 훨씬 더 멋있긴 했지만서도.
지나가는 나그네여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전해다오.
그대들의 명에 따라 우리 이곳에
잠들었노라고.
테르모필다이 전쟁에서 죽어간 스파르타인들의 전몰 용사 추모비에 쓰여있는 시모니데스의 시를 읽으며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싸웠다.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 장면을 읽다가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아킬레우스와 싸우러 나가는 헥토르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안드로마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이 떠올라 또 그렇게 눈에 서리가 끼고야 말았다.
레오니다스가 고전적인 스파르타의 무인이었다면 데미스토클레스는 현대적인 정보전과 심리전의 달인이었다. 사실 이번에 읽을 때는 데미스토클레스에게 특별히 시선이 많이 갔는데 그것은 책 속의 데미스토클레스가 멋진 영웅으로 비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영화 <300II: 제국의 부활>을 보았기 때문이을 것이다. 영화는 살라미스 해전만을 다루었기 때문에 그의 영웅적인 면모가 더욱 두드러지게 돋보일 수밖에 없었을게다.
나는 이런 계략과 책략에 뛰어난 간교스러운 영웅보다는, 레오니다스 왕이나 헥토르 같은 올바른 성품의 곧고 남성다운 영웅에게 더 끌린다. 나의 남성상이 그렇기 때문이겠지. 간교함과 사기성으로 재산을 벌고 명예를 취하는 이들보다는 재산이 좀 없어도 명예로운 타이틀이 없어도 사람 됨됨이가 존경스럽고 정의로우며 믿고 의지하며 함께 많은 것을 나누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신뢰를 주는 남성이 훨씬 더 멋지다.
어렸을 때부터 같은 친구였고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면 자란 테미스토클레스와 아리스테이데스. 이 두 친구의 정반대적인 성격과 인품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데미스토클레스는 구국을 위해 전쟁의 영웅이 되지만 추방을 당하는 신세가 되어 비굴하게 이왕, 저 왕에게 빌붙어 다니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가 그나마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음은 그가 막대한 재산가였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정적이자 경쟁자였던 아리스토테이데스는 온 아테네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공직을 행하며 생을 마감한다. 큰 부를 축적했던 테미스토클레스와는 달리 청빈 생활로 일관했던 그는 자신의 장례비조차 남기지 않아 아테네 당국이 묘비를 세워주었을 정도였다니,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조적인 두 영웅이었다.
스파르타가 전쟁에 있어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아테네의 거듭된 도전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아테네 인과 스파르타 인의 기질을 대비하며 스파르타 인의 소극적인 태도에 분통을 터뜨린 코린토스 사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스파르타 인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이 싸워야 할 아테네인이 어떤 인간이며 그대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소. 그들은 혁신적이며 항상 새로운 계획의 착상과 실행에 민첩하오. 그러나 그대들은 보수적이며 행동이 절실히 필요할 때에도 행동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집착하고 있소. 그들은 자기의 실력 이상의 일을 대담하게 감행하며, 피하는 것이 순리일 때도 피하지 않으며, 불행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소. 그러나 당신들은 강하면서도 약자와 같이 처신하고, 신뢰해야 할 자를 의심하고 두려워할 바가 없는데도 언제나 겁을 먹고 있소.(P231)
아고게(Agoge)라는 제도를 시행하며 사내아이들을 강한 전사로 훈련시키고, 또한 여자 아이들에게까지 무술을 가르치며 강하게 키웠던 스파르타가 전쟁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생소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자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강해지니 스파르타로서는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스파르타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에 반하는 내용들은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긴, 그렇게 치면 아테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예술을 사랑하고 문학과 철학을 사랑했던 아테네 인들이 그토록 호전적이었고, 그 내면에 강한 지배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쟁에 수동적인 스파르타만큼이나 내게는 놀라움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아테네 인들이 침략하고 모든 남성들을 전멸시키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노예포 팔려가게 했던 멜로스 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악마적이어서 과연 그 끔찍한 짓이 바로 인문학을 사랑한 아테네 인들에 의해 행해진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참으로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그 거대한 물결 속에 얼마나 방대한 사건들이 함께 흐르는지.
그리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페리클레스를 언급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이고 훌륭한 정치가 페리클레스. 그리스를 가장 빛낸 정치가이며 고귀한 성품과 카리스마 작렬하는 웅변가. 자신은 귀족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청년이면서도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노력했던 정치가였다.
한국의 역사 속의 인물에 비하자면 ‘정조’와 비유되지 않을까? (세종대왕일까? 개인적으로 정조를 좋아하니 정조로 하고싶다. ^^) 서로에게 뒤지지 않는 지혜와 민중에 대한 사랑으로 선한 정치를 베푼 매력덩어리 두 왕들.
페리클레스는 집안 내력부터 굉장하다. 유서 깊은 명문 출신으로 외가는 알크메오니다이 가문이었고, 어머니는 크레이스테네스의 조카딸이었다. 페리클레스는 명문가 출신답게 일찍부터 영재교육을 받았다. 소피스트인 다몬에게서 음악교육을 받았고, 엘레아학파의 제논으로부터 자연학과 변론술을 익혔는데 페리클레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자연철학자 아낙사고라스였다. 페리클레스는 미신을 믿지 않은 합리적 사고방식의 자연학, 우주론 등을 배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의 고매한 품격과 위엄 있는 태도, 침착한 말투와 단정한 옷차림, 말하자면 그는 가문의 모든 미덕을 물려받았다는데, 특히 용모가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를 닮았다 하니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는지 어렵지않게 그려볼 수 있다. 그의 석상 사진을 보면 데생의 주인공 줄리앙을 닮아서 가슴이 설렐 정도가 아닌가. 내가 줄리앙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오죽하면 내가 한국을 떠날 때 친구가 줄리앙 데생 작품을 선물로 주었을 정도다.
페리클레스에게 깊은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오는 것은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인기로 독재를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결정권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독재자가 되고픈 욕망을 갖는다. 그런 만큼, 특히 그리스에서는 참주가 되려는 자에 대한 경계와 견제가 심했다. 그러한 경계가 결과적으로 민주정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페리클레스는 고결한 기품을 지녀 말투는 고상했고 저속한 농담을 일체 입에 담지 않으며 함부로 웃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집불통이면서 재미도 없고 딱딱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었으며 당대 으뜸가는 풍류객이기도 했다.(P212)
참으로 멋진 페리클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의 그림자만 보아도 가슴이 설렐 것 같은. 그의 최고의 업적 중의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을 내 살아생전 볼 수 있었음은 삶이 내게 준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알렉산드로스 군대는 반항을 하는 테바이의 모든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6000명이나 학살을 했는데 그중에 단 한 건물만은 그 파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건물은 바로 알렉산드로스가 평소 애송하는 시의 작가인 핀다로스의 집이었다.
학살이 자행되고 힘없는 아녀자와 아이들도 죽어가는 그 처절하고도 무서운 전쟁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집만은 그대로 두었다니. 한편으로는 경악스럽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로맨틱하게까지 느껴지는 행위였다. 모든 생물이 말라죽어가는 혹독한 사막에 핀 한 송이 장미 같은 느낌이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애송하던 핀다로스의 시는 1984년 LA 올림픽 폐회식에 올려지기도 했다.
정복자에게도 동경은 있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서정적인 감성, 또는 내면에 깔린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할까? 겉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우리 내면의 표상들. 문화적으로 뒤처져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아마도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의 마음 안에는 그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학, 예술, 철학 등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아테네. 그런 아테네에게는 관대했던 알렉산드로스였다. 훗날 로마가 그랬듯이.
시를 암송하고 애송하는 왕, 멋지지 아니한가.
역사책은 읽을수록 빠지게 된다. 내게 있어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는 더욱 그렇다. 그 옛날의 이야기들을, 사건들을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풀어낼 수 있는지. Polis에 대해 읽다가 문득 역사를 캐내려 가고,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생활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일인지. 새삼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한나라의 거대한 역사를 편히 앉아 좋아라 싫어라 하며 토 달아가며 읽고 있지만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 그리고 문학자들의 절절한 열망과 갈망이 그 안에 묻어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니 뭉클해졌다.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들이 그렇게 당연하게 있을 수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과 수고가 제물로 바쳐져야 했는지. 문득, 뜨거움이 올라온다.
기원전의 고대 역사가 이렇게도 자세히 기록되어 우리에게 읽히고 있음에 순간적으로 경이로운 감동과 감사가 일었음이다. 이 모두 ‘기록’으로 남긴 고대인들의 지혜로움 때문이겠지. 역사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사소한 나의 일상조차도 후세대에 중요한 기술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들뜨는 일이다.
김진경 교수는 그리스의 역사를 문자가 없었던 고대시대부터 짚어나가며 우리에게 꿀맛 같은 역사를 보여주었다. 학문성과 대중성을 고루 겸비한 책을 목표로 삼으며 헤로도토스적인 설화성과 투키디데스적인 객관성이 어울린 책을 쓰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김진경 교수.
교수님께 전해드리고 싶다.
"그렇게 학문의 깊이를 느끼며 감동이 함께 하는 책이었고, 손을 뗄 수 없이 흥미진진한 책이었습니다. 읽는 동안 참 행복했습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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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연결된 음악을 올리고 싶었다.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그리스인 혈통의 가수
조르쥬 무스타키의 곡으로 골라보았다.
그의 콘서트에 가는 것이 한 때 나의 꿈이었지만..
그 꿈은 꿈으로만 남겨졌다.
그는 갔지만, 음악은 우리와 함께 한다.
조르쥬 무스타키의 음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Georges Moustaki의 Ma Solitude (나의 고독)
2014. 07.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