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엔, 독립출판

8주간의 독립출판 수업을 앞두고 생각들

by 밝고바른

2024년 여름, 셋째 아이를 계획하며 휴약을 시작했다. (브런치북: 다시, 열두 살이 되어버렸다.) 전에도 워낙 이것저것 하다만 취미들이 많았었는데,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도 그와 같은 신세가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 읽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고, 글은 어떻게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장들이 모여 한 덩어리의 글을 만드는 것은 역시나 많은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일관된 글의 방향도 중요했고 글조각들을 엮는 작업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약을 먹지 않은 나, 체력도 시간도 부족한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생각만큼 좋은 결과물은 고사하고 대충이라도 완성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하게만 느껴져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휴약하고 1~2개월은 그래도 괜찮았다. 점점 나빠졌던 것을 보면 약효는 당연하게 일시적이라고 해도 뇌에서는 단기적으로라도 뭔가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 같다.) 시기적으로 성장하는 구간이었던 탓에 더 아쉽고 그래서 슬펐다. (엑스(구 트위터) 계정은 수익화가 바로 코앞이었다.)

지난 4월 출산하고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바로 다시 시작했다. 예전보다 글을 못쓰고 많이 못 읽는다 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대로 그만두기엔 조금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런 생각도 했다. 뭐 그전엔 얼마나 잘 썼다고 그래?


흐지부지되어 버린 일 중에 가장 아쉬운 건 바로 독립출판이었다.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고 할머니의 그림작품을 같이 넣어 출판해드리고 싶었다. 할머니 생신에 맞추어 출판기념회와 전시를 함께하고 싶었다. 잘 만들고 싶어 인터뷰집 몇 권도 구매했다. 학예사 친구에게 조언도 구하고 주변에 의견도 물어봤다. 하지만 다른 일처럼 미루게 되었다. 아니 무엇보다 미루면 안됐을 일이다. 할머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생신이 지난 바로 몇 주 뒤였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또 한 번 쓰린 속을 감추어 달래야 했다. 할머니의 그림 전시가 처음 있던 날, 아무도 오지 않아서 속상했다는 것이다. 옆에 다른 분은 꽃도 받았고 같이 사진도 찍었지만 할머니는 혼자였다. (아무도 전시 사실을 몰랐다.) 나에게는 분명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영영 그 기회를 찾을 수 없다.


좀 부족하면 어떤가. 뭐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그러던 중 제주패스파인더와 위아파랑의 독립출판 프로그램 소식을 들었다. (재직자이다보니 작년엔 다른 사람에게서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서 신청하지 않았었다.) 틈틈이 적어온 글을 모아 살을 붙여서 책을 만들 거다. 친구와 만나서 재미있게 떠들고 집에 가는 길에 마저 못한 말이 아쉬웠던 경험처럼 더 이상 남은 할 말이 없을 만큼 모두 써서 남기려고 한다. 살면서 누가 나에게 에세이 출판하자고 제의하겠나 싶어서 다 털어놓으려 한다. 모르겠다. 다 털어놓고 나서도 할 말이 생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