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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ug 07. 2023

가족 친구들과 함께 보낸 주말

이번 여름휴가도 이렇게 아쉽게 끝나 버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여행이든 뭐든> 아무거나 해 봐야겠다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다. 화요일에는 줌바 클래스에 가고,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지인들을 만나 각각 점심과 저녁을 먹고, 금요일에는 서울에 가서 해야 할 중요한 서류를 했다.


토요일, 이 날은 내가 세운 금토일 계획에서 하이라이트였다. 한 달 전부터 토요일 계획을 세웠고, 거기에 맞춰 금요일과 일요일 계획을 덧붙인 것이다. 심지어 금요일 중요한 서류를 만드는 일조차 토요일 여행 계획이 있으니 겸사겸사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칠월 초에 해외여행을 가기 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의식적으로 <언제 한 번 만나자>라는 인사를 덧붙이는 우리는 여고 동기 사이다. 찬란했던 질풍노도의 시기, 비단 그 친구 말고도 짧은 동안 가깝게 지낸 여고 동기들이 여러 명 있었다. 이 친구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어느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둘이서 미친×들처럼 비를 맞고 춤을 추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비를 좋아하지도 않고 비를 맞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날의 역사적 사건은 아마도 내가 제안한 것은 아닌 듯싶다. 여고 2학년 무렵 뜨거웠던 나와 그의 인연은 고등학교 졸업 후 둘이 각각 다른 생존 노선을 선택하면서 끝난 듯하더니, 그가 아이 엄마가 되고, 내가 잠정적 예비 엄마가 되는 시점에 다시 이어졌다. 그 무렵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이민을 갔다. 그리고 손 편지를 몇 번 주고받다가 친구와 나는 십 년 이상 연락이 끊어졌. 잘 생각해 보면 연락을 이어가는 것도 연락이 단절되는 것도 나 때문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나의 삶도 파란만장하고, 예측불가능하고, 지극히 전투적이다는 것으로 구차변명을 해 본다.


금요일은 서울에서 서류를 마치고 경기도로 내려가서 1박을 했다. 이제 성인이 된 남자아이와 성인이 되어 가는 여자 아이를 둔 부부에게는 가족여행 중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호텔비 폭탄을 맞지 않고, 불결한 모텔에서 휴식하는 것을 피하려면, 철저하고 신중하게 숙소를 선정해야 한다. 남편이 경기도에 있는 호텔에 2개를 잡았다고 했을 때, 나는 막연하게 패밀리 스위트 룸인가 보다 생각했다. 막상 체크인을 하고 지정된 숙소로 가니 정말 옆에 나란히 붙은 방이 2개였고,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남편과 아들이 같은 방을 쓰고, 나와 딸이 같은 방을 쓰는 것이 어떨까 제안했다가 (물론 남편은 못마땅한 눈치였다), 아들을 제외한 셋이서 한 방을 쓰는 것으로 수정했지만, 남편은 딸과 내가 있는 방에 합류하지 않았다. 호텔방에는 더블 사이즈와 풀 사이즈 침대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그날 밤 딸과 나는 한방에서 한 침대를 썼고, 남편과 아들은 옆방에서 각각 침대를 하나씩 썼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정오 무렵에 여고 동창이 사는 도시로 갔다. 친구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들러서 친구의 신종 BMW를 따라 몇 해전 입주한 친구의 새 아파트로 갔다. ('나는 언제쯤 저런 차를 몰아 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굳이 그런 차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주위에서 다들 몰고 다니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 듯하다.) 아파트로 들어서니 친구의 남편과 두 아들이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친구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만나는 것은 벌써 5년 만이었다. 친구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 남편의 머리가 그새 많이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고 허리춤에 손을 얹은 자세가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아니나 다를까 친구의 남편은 허리가 좋지 않아 며칠 전 MRI를 찍었다고 한다.) 친구의 아파트를 구경하고 한 시간 경이 지난 후 친구가 한 달 전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 하우스에 체크인을 하러 갔다. 여분으로 싸 온 이불과 베개를 들고 낑낑거리며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니, 더블 사이즈 베드가 있는 방 하나에 거실, 욕실, 부엌이 딸린 구조로 돼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친구의 남편이 소유하고 있는 웨어 하우스에서 친구 가족이 부산하게 준비한 바비큐 등으로 저녁을 먹고 웨어 하우스 주차장에 설치된 작은 야외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모닥불에 스모어도 만들어 먹은 후에 다리 수술 후 아직 회복 중인 아들과 모델 보다 입이 짧은 딸을 게스트 하우스에 데려와 잠 잘 준비를 도와주고, 남편과 나는 친구집으로 다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떠나기로 일정을 잡은 터라 친구와 그냥 헤어지긴 서운하고 그렇다고 늦게까지 붙잡고 있기도 미안한 그런 어중간한 시간대였. 그날 새벽부터 손님들 머리를 한 친구와 허리가 아픈 친구 남편의 상태를 고려해서 열한 시경에 우리는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빨리 자러 가도 늦게까지 있어도 어차피 우리는 민폐였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친구가 덜 서운할까를 생각해서 최대한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적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눈치 게임 같은 한국 문화는 다소 어렵다.) 게스트 룸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다시 각방을 썼다. 남편과 아들은 거실에서 잠을 잤고, 딸이 잠들어 있는 더블 침대에 나는 몸을 눕혔다. (이번에는 남편이 거실에서 자겠다고 먼저 제안을 했다. 덕분에 나는 최근 많이 까칠했던 딸과 살갑게 한 침대에서 잘 수 있었다. 아기 때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에서 따로 잤기 때문에 딸과 내가 같이 자는 일은 별로 없었다.)


예정대로 아침 9시경에 게스트 하우스 체크 아웃을 하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새벽에 친구랑 이미 통화를 했기에  그날 아침 친구와의 두 번째 통화였다. 아침을 먹여 보내고 싶어 하는 친구의 마음과 잠을 더 자고 싶어 하는 가족의 욕구를 고려해 볼 때, 새벽부터 우리 가족 아침 챙기느라 친구를 고생시키는 것은 너무도 불필요해 보였다. 이틀 연속 차로 여기저기 이동 하느라 가족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제시간에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려면 아침 먹을 시간은 없어 보였다. 게스트 하우스 안에 붙은 공고에 따르면, 체크아웃 전에 정리정돈과 쓰레기 정리 등을 해야 했다. 거실에 청소기가 놓여 있길래, 이불을 개고 난 후 청소기를 돌렸더니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 등이 꽤 많이 진공청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최근 들어 우리는 호텔에서 많이 묵었기에, 침대 정리만  대충 하는 호텔에 비해 게스트 하우스 체크 아웃은 다소 까다롭게 느껴졌다. 만약 부부만 묵는다면 호텔 대신 굳이 게스트 하우스에 묵을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삼십 분 정도 차를 타고 우리 가족이 향한 곳은 예전에 우리 부부가 만나 결혼한 교회였다. 교회 뒤에 있는 전통 시장에 한 시간 반 정도 무료로 주차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예전에 우리가 결혼할 때 주례를 서 주셨던 목사님께서 최근 교회에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만나 뵙게 될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여행 오기 전에 챙겨 온 구겨지지 않는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그 옷에 어울리는 발가락이 덮인 구두를 신었더니 발 뒤꿈치가 금방 까여서 쓰렸다. 예배 전에 뭔가를 먹고 싶다던 남편이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밴드를 사 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다리다가 지친 나는 그냥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편한 샌들로 갈아 신을까 몇 번 고민을 했지만 딸의 만류에 포기했다.) 교회에 들어서니 예배실 앞에 방문객 센터가 있었고, 남편은 그곳에서 너무도 편하게 빵을 먹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까진 발 뒤꿈치에 밴드를 붙였다. 곧 예배 시간이 다 돼서 예배실로 들어가니 옆으로 길게 의자를 배치한 예배실이 예전에 비해 엄청 작게 느껴졌다. 그리고 신도들의 수도 많이 줄어 있었다.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 사람은 그날 설교를 한 장로님의 부인인데, 예전에 우리가 이 교회에 다녔다고 하니, 목사님께서 지난달 해외에 나가셨고 최근 목사님 부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목사님 부부의 근황과 활기를 잃은 교회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찬양 시간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심정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설교 시간에는 기운이 다 빠져서 잠이  것 같았다. 가까스로 예배를 마치고 우리 가족과 인연이 깊은 다른 친구의 가족을 만나러 내비에 주소를 찍었다.


이 친구는 사실 여고 후배인데, 우리 결혼식에 신부 들러리로 왔다가 신랑 들러리를 처음 만났고 둘은 삼 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친구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나이가 약간 어렸다. 우리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예약을 해 둔 시간보다 1시간가량 이른 시간이었다. 다른 교회에서 아직 예배를 보고 있는 친구 가족들을 기다리며 근처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음료를 마셨다. 얼마 안 돼서 친구에게서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문자를 받고 우리도 슬슬 일어나 약속한 식당 주차장으로 차를 옮겼다. 그날은 내가 사겠노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지만, 친구는 소에 좀처럼 나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지 않기에  그날은 반드시 내가 밥을 사기 위해 식당 안으로 미리 들어가서 일행이 모두 도착했으며 계산을 먼저 해 달라고 카드를 건넸다. 전날 예약 전화를 받은 듯한 젊은 직원이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주차장에서 인사를 마친 우리 가족과 친구의 가족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반갑게 친구의 가족에게 인사를 했다. 한국인만 가득한 식당에서 어색해할까 봐 친구의 남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했더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줌마가 나에게 무언으로 눈치를 주었다. 친구의 가족을  테이블로 안내하고 나도 우리 가족과 함께 착석을 하니, 그 아줌마가 와서 한 테이블에 세 명씩 앉으라고 시비 걸 듯 말했다. 친구의 가족과 우리 가족이 각각 4인이라 세 테이블로 나눠 앉으면 대화 나누기가 불편해서 나는 그냥 4명씩 앉겠다고 했더니, 아줌마가 나에게 눈을 흘기는 것을 우리 딸이 보고 말았다. 아마도 흑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친구 남편의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 보다 까매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아줌마의 그런 행동이 많이 불쾌했지만 친구의 남편은 나와 반대편에 앉아 있어서 아마도 못 보았을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남은 누룽지 죽을 싸서 식당을 나왔다. 주문한 음식을 다 먹는 데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미리 예약을 했고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눈을 흘긴 아줌마가 괘심 했지만 그런 사람 때문에 오래간만에 어렵게 만든 친구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식당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처음에는 아이들 네 명이 함께 찍고, 다음에는 아이들 네 명과 엄마 두 명이 함께 찍고, 마지막으로 아이들 네 명과 어른 네 명이 함께 찍었다. 피부가 타 들어가듯  더운 날이었지만, 그래도 참 행복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우리 차에 타니, 아이들이 엄마 친구에게서 용돈을 받았다며 보여준다. 이번에도 당하고 말았다. 친구는 만날 때마다 이렇게 우리에게 돈을 쓰니 이길 수가 없다.


토요일에 만난 친구 가족도 일요일에 만난 친구 가족도 우리 가족에게 너무 잘하니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주말에 소중한 친구 가족들을 두 팀이나 만나고 우리 가족은 행복에 지쳐 피곤한 몸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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