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살기 개빡센 나라인 이유
1. 한국에서 ‘번듯한 삶’의 기준은 너무나 높다.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 다니고, 아파트 한 채 있고, 결혼해서 애 있고, 이러면 뭔가 확실히 ‘번듯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사실 이 기준에 맞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산다. 중소기업을 다니거나, 명문대 출신이 아니거나, 싱글이거나, 애가 없다. 이들은 스스로 ‘번듯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고, 각자의 공간에서 괴로워한다.
2. 직장만 봐도 그렇다. 근로자 90프로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데, 중소기업은 좋소기업이란다. 실제, 바뀌어야 할 점들이 많지만, 뭔가 바뀌려면 사람들이 당당하게 설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어때서? 90프로가 이렇게 사는데. 이게 일반적인 모습이야. 뭘 바래. 내가 보통이야!”라고 내 자리에 당당하게 서야 한다. 근데 이게 어렵다. 중소기업 문제를 지적하면 “아니 좋소가 다 그렇지 뭐. 그러게 더 열심히 해서 대기업 가지 그랬어”라는 식의 시각이 온다. 계속 이걸 듣다보면 본인 자신도 “에휴 내가 못해서 좋소왔는데 뭐 어떡하겠어. 싫으면 내가 옮겨야지” 이런 식으로 내 자리에 당당하게 서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되면 90프로 대다수의 자리임에도 부끄러운 자리가 되고, 조용히 입닥치고 있어야 하는 자리가 되고,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우울증 1위, 자살1위, 결혼 안하고 출생율 최저고 이런 뉴스야 뭐 너무 많이 있다.
3. 이런 문제들 뒤에는 “소시민적 완벽주의”가 있다. 그니까 뭐냐면, 소시민적인 영역에 대해 - 무슨 대단한 가치를 추구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고, 그냥 취직하고 집사고 차사고 이런 문제에 - 불필요할 정도로 완벽주의를 갖고 있다. 삶의 어느 한 영역이라도 번듯한 삶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루저가 된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명절에 넌 언제 취직하냐는 소릴 듣는다. 취직하면 언제 결혼하냐, 결혼하면 언제 애 낳냐 소리를 듣는다. 애 낳아 키우면 끝인가? 아니. ‘어르신, 노후대비는 되어 있으신가요?’ 차례다.
완벽주의는 '완벽을 향해 노력하자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완벽주의다. 전반적으로 괜찮더라도, 조그만 흠결이라도 있으면, 책 잡히거나 스스로 마음 고생을 한다. 소시민적 완벽주의는 우리 스스로 숨통을 죈다. "이 정도면 그냥 괜찮은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4. 이런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회는, 이상하게도 굉장히 종교적이다. 왜? 종교만큼 완벽한 것이 없다. 완전무결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주의 사회에서는 정치도 종교화된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인간들은 잘못된 인간들임"). 팬질을 해도 종교적으로 한다 ("나의 스타는 완벽하다. 감히 함부로 언급하면 안된다"). 자기계발을 해도 종교적으로 한다. 실제 종교도 굉장히 종교적이다(?).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떠나 교리의 세계를 떠돌게 된다.
완벽주의는 일견 굉장히 합리적인 방법론을 추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종교와 무속에 많이 기대게 된다. 교회도 많고, 절도 많고, 무속도 많다. 왜? 완벽주의의 기준을 맞출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70점 맞던 학생한테 75점 맞으라고 하면 공부를 한다. 근데 70점 맞던 학생한테 100점을 맞으라고 하면 기도를 한다. 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한국인의 삶이 이러하다. 초자연적인 수준의 힘이 없으면 기준미달이 되는 삶이다. 어떤이는 종교에, 어떤이는 코인에 기도를 한다.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