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세금을 국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 물론 재분배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 정도에서 어리석을 수 있는 여지가 있긴 하지만, 전체를 깎아내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코로나 전담 의사로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의료의 기본은 응급환자, 의료적 개입으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치지 않는 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행정절차 때문에 정작 응급환자는 방에서 길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것도 이 경미하기가 감기나 독감과도 같은 오미크론 시국에.
*국가적 뻘짓 목록
1. 모든 확진자에게 유선으로 의료진이 전화를 걸어야 한다
모든 멀쩡한 사람을 포함해서, 전화 받기 싫다고 짜증 내는 사람에게조차 전화를 일단 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전 의료진이 하루 종일 통화 중이라는 거다. 지자체는 마비인데 의사는 하루 종일 멀쩡한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고 끊느라 응급 이송해야 할 사람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2. 심지어 그 통화는 의료상담조차 아니다
전 의료진이 햇반, 공짜 약, 공짜 타이레놀, 위기 지원금 10만 원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다. 왜냐면 의료진만이 하루에 1회 통화 의무가 있으니까. 구청이고 보건소고 그냥 전화 안 받으면 그만인데 의료진은 해야 한다. 그럼 행정적인 질문은 누구한테 해야 하나 모든 기관이 통화 중인데? 이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죄송한데 저 이름 잘못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놈의 지자체는 우리도 연락이 안 된다. 우린 1인당 하루에 270 콜도 하는데 다른 곳은 한 통화도 안된다.
그저 정치적으로 몇 표 더 받으려고, 햇반 때문에 사람이 집에서 죽어간다. 위정자들이 이 점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3. 이때다 하고 나타나는 범법자들
나쁜 사람들이 코로나에 더 잘 걸릴지 어쩔진 몰라도 확진은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이 되는 건 사실이다. 콧물 한 번 났는데 혹시나 싶어서 검사해서 확진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걸 보면. 사실 지하철은 10cm 거리에 사람 다 있고 방역도 안되는데 수많은 무증상 경증 환자들이 있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다 검사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다고 착한 사람만 코로나에 확진되는 건 아니다. 격리를 이용해서 법정 출두일을 늦추고, 회사 가기 싫다고 무기한 연장을 원하고(날짜를 지정해서 요청하기도 하고 공식 서류라도 떼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코로나 확진 시 관련 약이 공짜인 점을 이용해서 수상쩍게 쌓아놓기도 한다. 그래 봐야 감기약인데 마약성 성분 든 약들을 격리 기간보다 길게 계속 요청하는 이유는???
4. 줄 거면 주고 말 거면 말지
돈을 주기로 했으면 주고 아님 말아야지. 격리 통지서를 포함한 서류를 받아서 복지센터에 제출을 해야 10만 원을 준다. 근데 안 그래도 바쁜(지 아니면 쓸데없는 일을 관료적으로 처리하느라 마비됐는지) 지자체에서 격리 통지서를 보내질 못하고 있다. 아 내 10만 원 받아야 하는데? 매일 전화하는 의사한테나 물어보자. 여기 내 10만 원 왜 안 줘요?서류 대신 발급 신청해 줘요.
잘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든 확진되면 격리 통지서가 나와야 한다. 더럽게 느릴 뿐. 그럼 그냥 확진이 되면 10만 원을 주면 된다. 절차가 필요하다고? 민번처럼 부여되는 확진자 번호에 업데이트하면 확진자/접종 예외자까지 다 뜨는 QOOV는 왜 갑자기 안 쓰고 이때만 서류를 하나 더 발급받아야 하나?
5. 아무도 모르는 격리 해제일
장담하건대 만든 사람도 헷갈릴 거다. 난 격리 해제를 지자체에도 설명하고 병원에도 설명하고 동료 의사와도 논의하고 환자 및 보호자에도 알려줬는데 한 번에 알아들은 사람이 많아야 두셋이다. 그럴 만도 하지. 일하는 중에도 격리 기준이 계속 바뀌는 데다가 경우의 수도 많거든.
*기본 : 접종완료자는 7일 미접종자는 10일
1) 확진 일자와 증상 발현일(조사서 기준) 3일 이내 차이 날 경우 이른 시점이 기준
2) 접종 완료의 기준은 2차 접종 90일 이내(심지어 방역 패스와도 안 맞음) 3차 접종 14일 이후
3) 병원관리일=자율 격리 시작일-1
4) 접종 완료자에서는 자율 격리 시작일=해제일
5) 접종 미완료자 확진자 일자에서는 자율 격리 시작일=접종 완료자인 격리 6~7일 차 음성 확인된 동거인의 해제일
6) 접종 미완료자 확진자의 접종 미완료 동거인은 자율 격리 시작일 포함해서 7일 추가 격리
7) 접종 완료자 확진자의 접종 미완료 동거인은 확진자 해제일 +7일
8) 재택치료 해제일은 격리 해제일과 다를 수 있다(확진자가 재택치료 해제가 됐는데 가족 신확진으로 동반 격리자가 되는 경우)
* 다음은 접종 완료자 확진자 A, 접종 미완료자 신확진자 B, 접종 미완료 음성 아이 C가 같이 있는 가족의 증상 발현일 및 확진일이다. C의 격리 해제일은?
A 증상 발현일 2월 3일 확진일 2월 6일
B 확진일 2월 12일 무증상
C 7살
2월 19일에 B 재택치료 해제 후 7일 추가 격리
C도 같다. 2월 26일
A는 2월 3일 기준일자로 2월 10일 재택치료 해제, B가 19일 병원관리 종료가 확정되면 19일 격리 해제. 안심 숙소 신청하거나 거주지 분리 시 재택 해제자 상태면 거주지 이주신고 즉시 격리 해제
하면 뭐하나. 설명해도 지자체에서도 이해 못 해서 개판으로 해제 문자 중. 사람들은 해제 문자가 법적기준인 줄 알지만 확진도 안된 사람한테 뜬금 날아갈 수 있는 문자다 보니 그냥 내가 얘기해서 오류 신고해 주면 내가 한 격리 해제대로 된다. 그럼 뭐하나 전화연결도 안 되는데.
+역조서가 작성이 미완이면 증상 발현일이 안 나와서 해제 일자를 모름 +증상 발현 일과 확진일이 4일 이상 차이 나면 pcr ct값 확인하게 되어 있어서 또 모름 + 해제일 지나서 해제 결정되기도
6. 10-3판, 5판, 쪽대본 ㅋㅋ
아무도 이해를 못 하는 이유. 우리끼리 하는 말이 근무자가 간신히 다 이해하면 이제 다음 판본이 나온다...이다. 하다 하다 7+3 전환은 판본도 아니고 쪽대본으로 받았다. 10을 7+3일로 바꿔서 병원관리료를 0.7배만 주겠다는 이야기인데, 일만 더 늘었지 나아진 건 아니다. 왜냐면 하려면 일괄적으로 7일을 해서 차라리 증상 연장을 하면 되는데... 7일에 종료되고 9일 차에 증상 나타나서 다시 연장 신청과 재관리로 넣으면 명단이 누락되고 누락신고는 또 전화도 톡도 안 받고.... 죄송해요 기준이 한 17번쯤 바뀌다 보니.....^^...
이때 2차 접종 이후 180일 이내도 아니고 90일 이내로 접종자 기준을 바꿨다. 근데 애초에 방역패스 받은 사람들이 순응도가 낮은 사람들이 아니다. 접종 안 할 생각도 없었고 2차 맞은 지 92일쯤 됐는데 확진되고 보니 갑자기 미완료자라니? 이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보니 지자체는 300통해도 안 받음. 아. 의료진 통화 오니 여기다 화를 내 보자.
7. 99페이지짜리 약 처방 안내
한 통에 80만 원인지 100만 원인지 하는 이 신약은 공짜다. 부작용 소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재는 처방이 별로 없지만 초반에는 선풍적 인기였다. 근데 팍스로비드 처방(물론 렉키로나 등 포함이지만) 안내서가 99페이지다.
팍스로비드 처방 요건은
1) 만 60세 이상이거나 면역저하자
2) 4주 내에 먹은 약, 비타민, 건강기능식품을 모두 기억해내야 함
3) 수많은 금기약물에 걸리지 않아야 함
4) 약 먹으면 가급적 끝까지 먹어야 함
5) 복용 중단할 경우 회수 폐기해야 함
모든 약을 이만큼 신경 써서 처방하긴 하지만, 고지의무가 있는 다른 경우에 비해 이건 문진 의사의 책임으로 국가에서 돌리고 있기 때문에 처방이 몹시 어려워진다. 만 60세인데 3주 전에 먹은 미국에서 아들이 사다 줘서 몇 번 먹고 버린 갱년기 건기식을 기억해 내야 한다. 못하면? 의사 책임.
의료진은 오버타임을 4시간 5시간을 하고 있는데, 의사도 의사지만 간호사들은 거의 갈려나가고 있는데 정작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약 안 먹어도 나을 사람들 택배 빨리 좀 해달라고 문의받는 거, 당초에 어떤 머리에서 지급하기로 결정했는지 모를 산소포화도 측정기기 오류 문의(그냥 문장 이어서 말할 수 있는지 보는 게 대부분 더 정확하다. 그리고 그놈의 젤네일... 측정 안돼요), 햇반 문의, 친구랑 확진일 같은데 왜 친구는 먼저 해제됐냐(격리 해제 항목 참조) 문의, 10만 원 문의, 쓰레기 소독 세탁 문의받고 있다.
아, 물론 그 사이에 정말로 응급인 사람들 콜은 안 되는 것이 문제다. 의사를 하나 더 뽑아서 응급콜만 받게 하면 어떨까? 아주 본인에게는 초응급에 해당되는 10만 원과 격리 해제 문의가 올 거다(처벌규정이 없음)
개선하려면..
핸드폰 사용이 가능한 사람들은 신청 시부터 응급콜 걸 수 있는 연락처를 알려 주고, 행정 관련 문의는 ARS로라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중요한 전화를 받아야지 모든 사람한테 전화를 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 말이다. 연락이 필요할 때 되는 게 중요하다.
응급콜 번호로 금전 문의 해제일 자의 변경을 얘기하는 경우 처벌규정이 있어야 한다.
하청 선정 문제 때문일 거라 짐작은 가지만, 로켓 배송에 B마트 배달도 되는 시대에 재택키트 배송 5일은 좀 선 넘지 않나? 메이저 물류센터와 정식 계약 좀 했음 한다.
코로나 관련 약, 특히 마약성 약제는 중복 신청하거나 격리기간보다 길게 쌓아놓으려고 할 경우 이후 경찰 조사가 있을 수 있음을 고지해야 한다.
생활 치료소 호텔 밥이라고 신청하시는 분들 있는데 그거 퀄리티 그렇지 않다. 재택치료는 햇반이고 생활치료는 호텔 식사라고 자꾸 밥 문제로 신청하는데 의료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신청하도록 하는 게 맞다. 무슨 죄다 무증상자야.. 식사비 받아야 한다. 차액 결정해서.
코로나 심각단계에서는 비대면 진료도 가능하고 오미크론은 대부분 증상이 실제로 면담해 봐도 무증상~계절 독감 수준이다. 코로나 치료 자체가 애초에 감기와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고 약도 같다. 알리면 격리를 어길까 봐 그러는지... 정보공유가 됐으면 한다.
아. 그놈의 택배.
일처리 더럽게 안 되는 물류회사 인바운드 콜센터 직원이 된 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