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즌졍 Jan 16. 2020

샤워가 밀린 일처리에 효과적인 이유

[Essay] 그렇다고 일부러 샤워를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컴퓨터를 잡지 않았다. 대신 손에 잡히는 대로 글을 읽었다. 그러다 강아지 샤워를 시켰고, 나도 샤워를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엄청난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폭발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거의 무슨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 수준. 유후. 근데 나는 샤워했다. 탕에 들어가는 거 아니고. 조금 다르다. 금관 무게. 몰라.


그니까 나는 오늘 일을 하기 싫었던 거다.


원래 회사 다닐 때도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되면 괜히 좀 지겨워지는 거 있지 않나. 지금 백수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결심한 지 2주 차.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이 제일 고비다. 사실 금요일도 고빈데, 금요일은 그냥 금요일 뽕으로 아예 노는 거다. 후...


지하철을 타지 않다 보니 일부러 짬을 내지 않고서는 한겨레 21을 읽을 시간이 없다. 한겨레 21은 내가 유일하게 돈 주고 정기 구독하는 간행물인데. 원래는 우먼카인드도 정기 구독했었다. 근데 기간이 끝났다. 연장해야지 하고 생각했으나 백수가 되어버려서 일단 엑셀 좀 돌려봐야겠다.


암튼 그래서 끝까지 읽지 못한 한겨레 21이 4개 정도 있었다. 걔네들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러고는 가장 예전 것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제부터 계속된 두통이 거슬려서 요가를 한 시간 정도 했다. 그러다 배고파서 샐러드 한 바가지랑. 진짜로 바가지에 해 먹었다. 토스트 두 쪽에 우유 한잔을 마시고. 얼마 전에 교보문고에서 배송된 책을 찾으러 무인 택배함으로 갔다. 그러고 설거지를 하고, 찾아온 책을 읽다가. 깜통이 샤워를 시켰다.


몽실몽실
마치 샤워기 물줄기가 거울부터 욕실 문까지 수증기를 가득 채우듯


강아지 샤워시켜 본 사람들은 알 거다. 강아지 샤워 = 내 샤워. 라는 사실을. 홀딱 젖어서 그냥 나도 샤워했다. 그랬더니 맨 처음에 말했던 아주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미루고 미뤘던 사업계획서 작성 및 사업 아이템 제작에 대한 열의와 욕구가 우오오옹 하고 발 뒤꿈치부터 눈동자까지, 마치 샤워기 물줄기가 거울부터 욕실 문까지 수증기를 가득 채우듯, 나를 몽실몽실 채워가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마상에나...!


장담하건대. 이런 경험. 자주 하지 않나. 다들. 나는 사실 똥 쌀 때랑 샤워할 때랑 양치할 때랑 머리 말릴 때. 제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자, 다들 입을 떼길 바란다. 나만 이런 거 아니지 않나. 화장실은 정말이지 놀라운 공간이다. 예전에 스펀지에도 나오지 않았나. 화장실에서 공부하면 집중 잘된다고. 다들 스펀지 본거 안다. 아닌척하지 말아라. 저번엔 샤워하다가 이번 사업 아이템이 생각나서 발가벗은 채로 친척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똥 쌀 때랑 샤워할 때랑 양치할 때랑 머리 말릴 때


자, 지금쯤이면 다들 이 생각하고 있을 거다. 내가 마음을 읽어보겠다. 회사에서도 일하다가 일 안 풀리 때, 일하기 싫을 때 따뜻한 물에 샤워 한번 싹 하면 의욕이 불끈 불끈이지 않겠는가!!! 자, 우리 이제 사무실에 샤워시설 만들어주는 사업을 시작하자. 내가 장담하건대 배달의 민족 5조? 우린 10조다!!! 헤헿.


이제 글 다 썼으니까. 터져 오르는 에너지 감당하러 일하러 가겠다. 오늘은 야근 좀 해야겠다. 깜통이 쓰다듬으면서. 거실 소파에서. 아님 침대에서. 노트북 닫는 순간? 퇴.근.

작가의 이전글 퇴사했지만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