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즌졍 Oct 16. 2023

1년 중에 3달 내내 매일 피를 흘린다고 생각해보세요.

[Essay] 생리컵 못 쓰니까 진짜 너무 불편해서 쓰는 글

진짜 이렇게 생각해보면 끔찍한데, 사춘기 시절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매년 3달씩은 매일 피를 흘리고 있다고. 그 부위가 손가락, 팔, 다리, 이런데라고 생각해보면 진짜 말이 되는 일인가 싶은데. 전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은 실제로 그러고 살고 있지. 뭐 이런 생각을 처음 해본건 아닌데, 1년만에 자궁경부암 정기검진 갔다가 질염 있단 소리에 생리컵을 못써서 오랜만에 탐폰을 쓰니까 너무 불편해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3달 동안 매일 손가락, 팔, 다리 이런데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줄줄 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도 2017년 일건데, 한국에서 한참 생리컵이란게 세상에 존재한다! 라는 얘기가 나왔던 시기였던거 같다. 한동안 페이스북 피드가 전부 생리컵 이야기로 가득했으니까. 그때 나는 핀란드에 교환학생을 가있었고, 생리컵 써보고 싶다 써보고 싶다 생각하지만 막상 뭐 살 기회도 없고 막 엄청 절실하게 필요하진 않았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그냥 그렇게 면생리대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면생리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고등학생 때 부터 면생리대를 썼었는데. 엄청나게 뭔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진짜 그냥 일회용 생리대를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어쩔수없는 선택지로 찾은게 면생리대였다. 면생리대 쓰기 직전에 나는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 너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피부도 계속 빨갛게 부풀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땐 생리대에 대한 얘기가 많지 않았던 시기라 당연히 성분이 안좋은 걸로 만들어진 생리대만 썼으니까 당연했던거겠지. 근데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여자로 태어난 난 어쩔수없이 1년에 3달은 흘러내리는 피를 뭔가로 받아내야만 했다고. 그러다가 어찌저찌 엄마가 친구에게 들으셨나 해서 면생리대를 알게 되었고, 써볼수 밖에 없었다. 피 묻은 생리대를 매번 손으로 빤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피 잘 빠지지도 않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어찌저찌 적응해서 생리컵 쓰기 전까지 잘 썼다. 왜 탐폰을 쓰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한국 여성, 그것도 어린 여성에게 탐폰에 대한 장벽은 꽤나 높다.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그때만 해도 질 안에 뭔가를 넣는 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사회적 장벽은 더 높았으니까.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 너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피부도 계속 빨갛게 부풀고.

아 근데 또 탐폰 얘기 나오니까 (ㅋㅋㅋ 얘기가 자꾸 뭐 하나 나오면 꼬리를 물고 다른데로 흘러가네. 암튼.) 근데 또 사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난 잘 몰랐지만 크고나서 생각해보니 나름 여러 측면에서 재미나고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는 여성이신데. 나의 첫 탐폰은 사실 초등학생 때였나. 그때 아마 한참 수영다니고 있었을 때였을 건데, 생리해서 수영을 못가게 된거지. 그때 놀랍게도 우리 어머니는 나의 가랑이를 벌린 다음에 주니어 탐폰을 끼워주셨고 수영을 가라 하셨다. ㅋㅋㅋ. 난 그때 별 생각 없었는데, 그냥 처음 해보는 거니까 조금 긴장하고 결국 주니어 탐폰은 양도 적어서 수영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엔 피를 줄줄 흘리면서 온거 같긴 한데, 커서 친구들한테 얘기하다보니 우리 엄마도 참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근데 우리 엄마, 그런 사람이시지. 난 그 엄마를 닮은 엄마 딸이고.


생리컵도 당연하겠지만 좌충우돌이 많았다면 많았는데, 핀란드에서 우연히 어느 행사장에 갔는데 생리컵을 팔고 있길래, 어라? 하고 대뜸 보라색 생리컵을 샀다. 웃기게도 빨리 써보고 싶어서 얼른 생리하기를 기다렸는데, 내가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가끔 생리를 한달씩 건너 뛰는데, 그때 하필이면 딱 그렇게 생리를 한달 건너뛰어서 두달을 기다려서 썼는데, 아, 그 전에 궁금해서 한번 넣어보려 했지만, 엄청난 쓰라림과 손목과 손등과 손가락의 통증만 얻은 채 두세번 시도하다 포기했다. (근데 왜 이 글을 쓰는데 예전에 비슷한 글을 쓴거 같은 기시감이 드는지 모르겠네...) 암튼 그러다가 드디어 생리를 했고, (ㅋㅋㅋ 그때만큼 생리를 기다린 적도 없는거 같네 생각해보니까) 핀란드에서 생리컵을 처음 써봤는데, 핀란드는 모든 화장실 칸 안에 세면대가 있어서 집 밖에서 생활하다가도 생리컵을 비워야할 때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그 짓을 두세번 하다가 깨달았지. 한국가서 생리컵 어떻게 쓰나... 근데 한국 와서도 뭐 그냥 대충 화장실에 사람 없을때 호딱 나가서 씻고 호딱 들어와서 다시 끼우거나, 아니면 텀블러나 물병 들고 들어가서 씻어서 써도 되고, 방법은 찾으면 어디에나 늘 있다.


생리컵을 넣고 빼는 손의 근육이 발달되지 않아서


문제는, 내가 일상의 세계(?)에서 생리컵을 한번밖에 써보지 못한채로 2달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는 여행을 했다는 건데. 생리컵 뭐 이젠 너무 유명하니까, 처음 쓰면 내가 느끼기엔 생리컵을 넣고 빼는 손의 근육이 발달되지 않아서 진짜 너어무 힘들다. 내가 뭐 인체에 대한 지식이 많진 않으니까 정확한 부위를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손등이 엄청 아프고, 손가락 끝이랑, 손목을 꺾은채로 힘을 주는게 정말 힘들다. 지금이야 뭐 하도 열심히 훈련(?)해서 발단된 손과 팔의 근육 덕분에 힘들지 않게 하지만, 그때 당시엔 충분한 훈련을 겪을 시간이 없었던거지. 그 상태로 산티아고 순례길도 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탔는데, 다행히도(?)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 걷던 시기에 또 생리를 한달 건너 뛰었다. 건강상으로 보면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일단 다행이긴 했지. 그리고 진짜 생각해보면 산티아고 순례길 1달 내내 걷는건데, 여자라면 당연히 일주일은 생리하는건데, 그 여정 중에 생리까지 하면 진짜 하... 최악이야.


하지만 문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있을 때였지. 8-9일 정도 열차를 탔는데, 거기서 생리를 해버렸으니까. 근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생리컵 쓴게 다행이었다. 왜냐. 샤워도 못하는데 생리대 썼다고 생각해보면... 최악이야 진짜. 당장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야해. 근데 말하지 않았는가. 난 아직 훈련이 덜되었다고. 어느날 밤에 자는데, 생리컵이 새기 시작하는거다. 그래서 깨서 화장실에 갔는데, 이게 심지어 새니까 미끄러워서 도저히 빠지지가 않는거지. 열차 화장실 심지어 더러운데, 거기서 혼자 미친듯이 낑낑대는데 진짜 미치겠더라. 어디 주저앉아도 안되고 서서도 안되고 이 자세도 안되고 저 자세도 안되고 피는 계속 새는데...! 그 와중에 내가 화장실에 너무 오래 들어가있으니까,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문을 막 두드리는데, 처음엔 아마 짜증나서 두드렸겠지, 근데 너무 그러니까 결국 내가 포기하고 나왔는데, 옆 침대 러시아 아저씨인거지. 처음엔 짜증내던 아저씨가 안에서 나온게 나니까, 살짝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뀌고, 러시아말로 추측건데 괜찮냐고 물어본거 같은데, 대충 괜찮다고 하고, 옆 칸에 있는 화장실로 가서 또 낑낑대고 있는데, 문을 또 두드리는겨. 그래서 하... 다시 나왔나 했는데, 그 아저씨가 걱정이 됐는지 따라온겨 ㅋㅋㅋ 무섭게 생겨서는 따뜻해 러시아 아저씨도. 뭐 어차피 설명도 못하니까 다른 칸으로 갔나, 다시 아저씬거 보고 들어가서 했나 암튼 겨우겨우 빼서 호딱 씻고 다시 끼워서 잤던거 같다. 후...


그 아저씨가 걱정이 됐는지 따라온겨 ㅋㅋㅋ
무섭게 생겨서는 따뜻해 러시아 아저씨도


한국에 와서 한번은 집에서 생리컵 넣다가 잘못 넣어서 애가 돌아간적도 있다. 근데 돌아가면 진짜 무슨 짓을 해도 혼자서는 절대 못뺀다. 생리컵 써본 사람들은 들어보니까 다 한번쯤 이런 경험 있던데, 그날도 혼자 낑낑대는데, 엄마가 그때 마침 일 나가려고 준비하던 중이셨나? 그래서 혼자 낑낑대다가 도저히 이건 혼자서는 못하는데, 엄마까지 나가면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까 엄마한테 부탁했고, 엄마가 쿨하게 빼주고는 일하러 나가셨었다. 헤헤헤. 아, 근데 이런 얘기를 하려고 했던건 아닌거 같은데... 생리 얘기는 한번 하기 시작하면 진짜 끝도 없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하면 더 끝도 없어. 날밤새지.


그니까 원래 하려던 얘기는 뭐냐면 (ㅋㅋㅋ 이제와서) 내가 그래도 그나마 생리컵 익숙해지고나서는 생리하는 삶이 꽤나 괜찮았는데, 진짜 생리컵 너무 편하기 때문에. 자주 갈 필요도 없고, 익숙해지면 생리컵을 하고 있단 느낌도 거의 안나서 샤워할 때 빼서 한번 씻고 다시 쓸랬는데, 깜빡해서 샤워 다하고 물기 닦다가, '아! 생리컵 안 씼었다.' 생각날 때도 있으니까. 잘때도 뭐 뭔 난리를 쳐도 상과 없고, 물론 양 많은 날은 늦잠은 못잔다. 근데 뭐 나처럼 한 10시간씩 자는 사람 아니면 괜찮고. 하지만 한 5년 쯤 됐을 때 처음 알았는데, 질염이 있으면 생리컵 쓰면 안된단다. 질염이 기본적으로 한번 생기고 나면 몸 상태나 질 상태가 안좋을 때마다 자주 재발하는데, 그게 기본적으로 질이 통풍이 잘 안되는 환경에 자주 있을 때. 면 속옷 말고 나이론으로 된 속옷을 입거나, 꽉끼는 바지 입거나, 스타킹 신거나 등등. 진짜 짜증나. 졸라 예민해 질냔. 근데 거기에 생리컵도 포함되는걸 미쳐 생각을 못했던거지. 기본적으로 생리컵은 질을 꽉 막아서 진공상태로 만들어서 피가 못나가게 하는거기 때문에, 통풍 불가. 근데 그걸 몰라서 질염 있을 때도 며칠 약먹고 그냥 생리컵 쓰고 하다가, 어느날 산부인과에서 우연히 생리컵 얘기가 나왔고, 선생님이 그제서야 질염 있을땐 3-4달 정도는 생리컵 쓰지 말라고 하신거다. 근데 진짜 너무 불편해. 아, 근데 또 이 얘기 하려던거 아닌데 미치겠네 글이 계속 자꾸 새는구먼.


졸라 예민해 질냔


그러니까 진짜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뭐냐면, 당연히 생리하면 사람이 예민해지는게 당연한거 아니겠냐 이거였는데. 예전에는 여자가 조금만 신경질적으로 나오거나 하면 그날이야? 생리중이야? 이 지랄하는게 진짜 치떨리게 싫었는데. 그럴 땐 진짜 한대 패주고 싶다. 그러고선 변명이랍시고 진짜 뭐 호르몬적으로 그렇다고 이 지랄하는데, 아 뭐 맞는말이래도 싫고. 당연히 그 소리 듣는건 지금도 싫지만, 근데 사람이 당연히 생각을 해봐라. 호르몬이고 과학이고 뭐 나발이고 간에, 일주일 내내 피흘리고 있으면, 안 불편해? 신경이 안쓰여? 그냥 피 안흘릴때랑 사람이 다를 수가 있냐고. 니들이 생각을 해봐. 일주일 내내 어디 손가락에서 피가 계속 나. 그게 그냥 나다가 멈춰서 밴드 붙이고 있으면 되는 수준이 아니라 계속 줄줄 피가 난다고 생각을 해보라고. 그럼 계속 거즈고 뭐고 갈아줘야하고, 닦아줘야하고, 난리도 아니잖아. 다른 일을 하다가고 거기에 계속 신경이 쓰이고.


사람이 일주일 내내 피를 흘리고 있으면 불편하지


생각해보면 진짜 그딴 말 듣기 전에 생리중이면 어디 이마에라도 나 지금 생리중이니까 니들이 알아서 배려해라 라고 써붙여놔야할거 같아. 당연한거라고. 사람이 일주일 내내 피를 흘리고 있으면 불편하지. 그럼 그 사람을 니들이 알아서 배려해야되는거 아니냐고. 생리컵 못써서 대안으로 그나마 지금 탐폰 쓰고 있는데, 심지어 재택하고 이러니까 그냥 집에 있는데도, 불편해서 갑자기 사람이 울컥해버렸네. 운동 가는 것도 괜히 더 귀찮고, 주말에 날씨도 좋아서 자전거 탈까했는데, 그것도 생각하니까 괜히 귀찮고. 근데 이게 진짜 변명이 아니라 당연히 귀찮은거라고. 이 세상 여자들은 그 귀찮고 성가시고 번거롭고 짜증나는 걸 1년에 3달씩이나 매일 매 순간 극복해가면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거라고. 다 아는 얘기지만 순간 너무 빡쳐서 또 한번 쏟아내 봤습니다. 중간에 몇번 욕 쓴거 그래도 글이랍시고 자제하고 지웠다. 후...

작가의 이전글 엘리멘탈, 끝나지 않는 세번째 데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