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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Jan 25. 2024

Sipalay에서 만난 인간군상

'만남이라는 여행의 묘미'

  앞의 시팔라이 여행기에서 이야기를 했듯이, 슈가비치에 있는 Sulu Sunset Beach Resort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하는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이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석양이 질 무렵에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나른해질 때는 해먹에서 자다가 강아지 좀 쓰다듬고... 그냥 인간의 스트레스 지수를 0으로 만드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을 경계하는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비치벤치에 앉아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어느 사이 옆에 사람이 앉아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20대, 한창 여행을 할 때에는 언제나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작하는 나였지만,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예전만큼의 에너지도, 상큼 발랄함도 그리고 호기심도 없기에.. 또한 나의 에너지를 희생하면서까지 굳이 좋은 대화를 해야 한다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옅어진 나로서,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사실 나의 큰 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

  도착한 첫날, 해변가의 비치벤치에 앉아 넋을 놓고 석양의 바다를 바라보는데 '하비에르 바르뎀'을 닮은 분이 나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그분은 캐나디안이지만 버뮤다에서 산지 25년이 넘은 버뮤다인이라고 했다. "버뮤다?? 버뮤다 삼각지대 그 버뮤다?" 하며 낯설어하니까 맞다고 하며 버뮤다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방문해봐야 할 국가라고. 미국 동부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작은 섬이라고 했다. 다만 물가가 살인적으로 비싼 나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버뮤다인을 만난 게 처음이라 너무 신기해서, 남편한테 그 아저씨 얘기를 했더니 다음날 그가 버뮤다 아저씨에게 다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 그분은 버뮤다에서 경찰이라고 하셨고, 버뮤다는 조세피난처로 굉장히 유명한 나라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부호들이 와서 살며, 구글과 같은 유명 국제기업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고 한다. 그러니 깨끗하고 안전하지만 살인적인 물가가진 곳일 수밖에. 


2.

  역시나 비치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으니, 어떤 뮬란처럼 생긴 그렇지만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고, 걸크래쉬한 필리피노 여성이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여전사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왜냐하면 필리핀 현지 로컬 남자들과 그녀의 서양인 남편이 터프하게 비치발리볼을 하는 전쟁 같은 에서 지지 않고 볼을 튕기는 유일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비치발리볼에서 잠시 쉬기 위에 내 옆에 앉았고, 바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걸었다. 건강미와 허리까지 오는 까만 머리카락.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그녀의 볼에 굵지만 5센티가량의 칼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아우라에 나는 압도되었다.


  독일어도 하는 그녀였기에 어디에 사는지 물으며 그녀의 남편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었다. 남편은 오스트리아인으로 둘이 2년 전에 오스트리아로 들어간 후 첫 1년은 독일어공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노인 전문 요양원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녀에게 아시아인으로 유럽에서 살기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초반에는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자기가 웃으며 인사를 해도 오스트리아인은 웃지도 인사를 받지도 않는 일이 반복되었기에... 이제는 자기도 웃지 않는다고. 또한 스스로 그들의 문화에 들어갔으니 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다름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지금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일정 금액을 필리핀에 있는 가족에게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냥,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의 사연이 궁금했고, 그녀의 인간미에 매료됐고, 그녀의 아우라가 좋았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날 밤이었다. 깜깜한 해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니 여전사 그녀와 그녀의 오스트리아 남편, 그리고 열댓 명 정도의 로컬 아이들이 있었다. 앞에는 그 아이들이 만든 캠프파이어와 블루투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시원하게 들리는 파도소리.. 깜깜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까지. 꿈인가 싶었다. 급히 리조트로 돌아와 로버트를 불러 다시 나왔다.

  

  그들 옆에 나란히 앉아 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다시 한번 그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는 어떻게 만났어?"라는 질문에 그녀는 보라카이 섬 근처의 아주 못 사는 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느 정도 크고 보라카이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지금의 남편이 보라카이에 잠깐 놀러 왔다가 자기한테 빠져, 1년 2개월을 그곳에 머무르며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동네 꼬맹이 로컬 남자애들에게 불을 더 크게 만들라고 부지런히 요청했다. 아이들이 신나서 마른 야자수잎을 가지고 와서 더 크게, 더 밝게 불을 붙였다. 그러다 잠시 뒤 아이들이 환타 한 병을 가지고 오더니, 우리들에게 같이 마시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뜬금없이 웬 음료수?라고 물으니 그녀가 말했다.


  "나도 옛날 꼬맹이일 때 우리 동네에 외국인이 오면 너무 신나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엄청 노력했던 게 기억나. 하하하. 그들에게는 이게 행복이야. 그래서 불을 피워달라고 요청하고, 음료수 사 먹으라고 돈을 줬더니 애들이 같이 마시자고 하는 거야."


  그녀가 또 말했다.


  "나는 필리핀에 올 때마다 늘 로컬들이랑만 놀아. 그들의 진심을 알거든. 내일 오전 10시에는 저 아이들과 낚시를 가기로 했어. 거기서 잡은 생선을 구워서 점심으로 먹을 거야. 너희도 같이 래?"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둥이만 리조트에 두고 갈 수는 없기에 아쉽게도 같이 가지는 못했다 ;;


...


  그녀 같은 사람이 필리핀으로 돌아와 정치를 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저런 강인하고도 따뜻한 감성을 가진 그녀라면 유럽에서 적응만 잘한다면 그곳에서 크게 대성을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녀의 제2의 인생이 기대된다. 동시에 그녀에게 신의 축복과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3.

  다음날, 점심을 먹고 방갈로로 돌아와 해먹에서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로버트가 한국에서 25년간 교수를 하다가 퇴직한 캐나다인 아저씨를 만났다며 얼른 저쪽에 가서 그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총알처럼 튀어나가 그에게 인사를 했다. 너무 궁금하잖아. 한국에서 거의 30년을 살았고, 지금 은퇴하고도 계속 서울에서 산다고 하니...


  그는 1997년 경,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도피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한국왔다고 한다. 근데 도착한 순간부터 우울증이 사라지며, 지금까지도 한국이 굉장히 편하다고 . 주위 외국인 친구들은 늘 한국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는데, 자기는 단 한 번도 이곳이 성가시다 또는 불편하다 느낀 적이 없다고.


  캐나다에 있을 때보다 한국에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호수에 위치한 캐나다 집에는 여름에 가서 3주 정도만 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늘 시팔라이에 와서 4주 이상을 머무른다고 했다.


  매년 이곳을 방문하니, 리조트 주인이 이제 은퇴를 했으니 필리핀에 와서 풍요롭게 사는 게 어떻냐고 하기에, 여기서의 생활을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리핀의 부의 불평등이 너무 불편해서 이곳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그분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25년간 영어와 언어학을 가르치고 은퇴했다고 한다. 또한, 그 대학에서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한 최초의 외국인 교수라고. 그곳에서 25년을 일한 덕분에 지금은 사학연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고도 .


  이분이 굉장히 특이한 건, 자기는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자기의 이런 깊은 내면을 방해하는 스마트폰(다시 말하면 핸드폰)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국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역시 사람이 의지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것 같다.


  또한, 분의 이번 시팔라이 여행의 목적은: 얼마 전에 친한 친구가 유명을 달리해서 마음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하여 여기 있는 동안 그 친구를 기리며 글을 쓰면서 우울함을 달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고 했다. 그는 나와 이야기할 때에도 큰 노트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


  이분에게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혼자 있는 게 편해서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지금은 3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다고 며 그의 고양이 가족을 보여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분은 전생이 뭔가 스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 많은 것을 원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지내는, 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삶. 알고 보면 그가 바로 살아있는 부처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카카오톡 친구이다. 한국에 가면 그를 집에 한 번 초대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은퇴한 영어 교수님께 과외를 받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주기로 했다. 혹시라도 관심 있으신 분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ㅎㅎ


  이분에게도 행복과 축복, 그리고 건강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4.

  나타샤의 오빠인 데이비드의 이야기도 쓰고 싶지만 그는 늘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이기에 쓰지 않겠다. 혹시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직접 대화해 보길. 그는 정말 따뜻하고 건강하고 인간미 넘치는 28살 청년이다.


...


  이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뮌헨에서 철도 기사로 일하는 남자와 함부르크에서 경찰로 일하는 여자 커플, 다이빙을 가르치고 있는 독일계 스위스인인 리조트 주인, 지금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일이 보이지 않는 눈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하던 스위스인 등. 


...


  사람과의 만남으로 더욱 행복했던 시팔라이(Sipalay)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늘 즐거움과 행운이 함께 하길,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도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 차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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