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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음식이 그리울 때

궁극의 한식주점, 호반

골목은 어둑하기 그지없었다. 소시적 숱하게 들락거리던 낙원상가 주변인데도 낯설었다. 허름한 모텔 간판만이 불을 밝힐 뿐, 신뢰하기 힘든 친구가 인도한다면 이 끝에 장기밀매단이 기다리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 딱 좋았다. 막다른 골목 끝에 도착하니 환한 간판과 왁자한 소리가 밤을 밝히고 있었다. 첩첩산중을 해매다가 양산박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호반, 이름만 몇 번 들었던 곳이다. 대포같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민폐를 일삼는 파워블로거 무리의 손때를 타지 않은 곳이자 사십대 언저리 손님은 스스로의 입에서 젖내를 느낀다는 노포. 들어가기도 전에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두 발로 들어가지만 필시 네 다리로 나올 것 같은, 오랜 주당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직감이 들었다. 이런 외진 곳에 있는, 뜨내기는 절대 올 수 없는 노포일수록 위험도가 올라가는 법이니까. 


타짜의 눈빛으로 메뉴를 살핀다. 내노라 하는 맛집의 벽엔 주연과 조연이 갈라진다. 홍어집에 산낙지가 있고, 보신탕집에 삼계탕이 있으며, 김치찌개집에 삼겹살이 있는 것과 매한가지다. 하지만 호반의 메뉴엔 그런 구분이 없다. 육군과 해군이 구분없이 진을 짠다. 역전 식당의 차림표를 연상시키지만 주문하기도 전에 상에 가득 깔리는 밑반찬들을 맛보면 직감은 확신이 된다. 물김치부터 꽁치조림까지, 무엇하나 인위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손대다 만듯 밋밋한 것도 물론 아니다. 자연스러운 맛있음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밑반찬, 아니 밑안주만으로도 능히 초록병에 든 액체가 식도로 증발한다. 


본게임이 시작된다. 겨울부터 이른 봄에는 서해안 강굴이 우선이다. 엄지손톱만큼 자잘한 강굴에 젓가락을 들이대는 건 초짜다. 숟가락으로 푹 떠서 양념간장과 함께 입에 넣으면 양식굴에 비할 바 없는 향이 퍼진다. 추위가 가시고 굴이 들어가는 철이 되면 주꾸미 볶음이 바톤 터치를 한다. 접시 위에 내리는 계절을 만끽하노라면 이 집의 깊은 내공을 느끼게 하는 초식이 펼쳐진다. 채소와 고기로 속을 채운 대창 순대는 잡내하나 없이 고소하고 쫄깃하다. 밀가루대신 대창으로 피를 쓴 만두같다. 탱글한 젤라틴의 씹는 맛과 은은한 양념이 조화로운 도가니찜, 벌겋지만 겁먹을 필요없는 낚지 볶음의 공통점은 맛과 모양에 잡것을 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그 재료 고유의 속성들이 입속에서 연쇄 반응을 일으키니 침이 흥건하다.


여기서 만족하기엔 이르다. 호반까지 갔는데 병어조림을 먹지 않는다면 에베레스트에 등정해서 사진을 찍지 않는 것과 같다. 왠만한 식당에서 구경하기 힘든 두터운 병어가 무우와 감자와 함께 레시피를 훔치고 싶은 양념에 졸여 나온다. 이미 배가 부르건만 젓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이미 취했건만 잔은 계속 비워지고 또 채워진다. 보통의 술집에서야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먹지만 호반에서는 음식을 먹기 위해 술을 마시게 된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 처럼 네 발로 기어 나오는 일은 없다. 이 곳의 기품덕이다. 40년 넘게 주방을 지켜온 사장님을 비롯, 홀을 오가는 종업원들의 표정과 몸짓은 세월만이 만들 수 있는 품위와 자연스러움이 있다. 사장님의 온화한 주름과 담백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궁중의 수랏상을 책임졌던 대장숙수의 얼굴이 저렇지 않았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술과 음식이 밤의 벗으로 자리잡은 이래, 궁금한 게 있었다. 사극과 역사소설에 나오는 주막은 어떤 곳이었을까 하는. 허름한 민속주점에서도, 고급 한식주점에서도 그 궁금증은 매듭 하나 풀리지 않고 남아 있곤 했다. 호반을 처음 가던 날, 옛 한량들이 세설을 논하던 주막이 이런 곳이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 그 시절, 이런 주막이 있었다면 풍류를 아는 선비 누군가 그 맛과 멋을 찬양하는 가사(歌辭) 한 편 호기롭게 짓고도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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