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7주차가 막바지에 이르고 8주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것은 역대급 한파에 에베레스트 북벽을 무산소로 단독 등반한 것과 같은 위업이라 할 수 있는데, 대학교 OT에서 처음 술의 맛을 알게 된 후 군 시절을 제외하고 술을 안 마신 날이 두 달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술 마신 날은 '맥주만 마신 날' 포함. 이를 제외하면 많이 줄어들긴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술에 취한 기분이 무엇인지, 심지어 술의 맛이 무엇인지 아득하기 짝이 없다. 엄마 뱃속에서 겪었던 일이 차라리 생생할 정도다. 하여, 쓰는 글 중 가장 즐거웠던 술 칼럼 마감이 돌아올 즈음이면 두려워진다. 마치 공연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 리뷰를 써야하는 느낌이랄까? 비록 취하여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마시며 받았던 느낌을 몸과 마음으로 떠올리며 거나하게 쾌도난마로 썼던 것이 과거지사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난 번 칼럼 을 쓰면서는 스스로의 글에서 술냄새대신 감성냄새가 난다며 자학했더랬다. 쓸 때 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며 늘 하는 자학이지만, 이번의 그것은 결이 달랐다. 마시지 못하는 비극이 대저 이러하다.
왜 못마시느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중이염 때문이다. (이걸로 몇 번을 우려먹는 거냐. 지겨운 분들께는 죄송할 따름이지만 이 소재는 아직 몇 번 더 우릴 수 있는 특등급 사골임) 세상에, 고작 중이염이 두 달을 끌다니. 이럴 줄은 나도 모르고 주변도 몰랐다. 의사도 몰랐다. 우선 이 동네 뮤지션들의 주치의께서 3주의 치료끝에 GG를 쳤다. 그 분의 소개로 간 두 번 째 병원(대학 병원임) 의사는 "여기서 확실히 나아졌다는 걸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해했다. 3주가 지났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저도 참 이상하네요"라며 꼬리를 내렸다. 거의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의 치료는 고통 그 자체였다. 고막을 째고 그 안까지 썩션을 넣어 고름을 빨아들이는, 나를 구원하기 위한 파괴의 손길이랄까. 문제는 파괴만 있고 구원은 없었다는 거지만. 그러니 왠만해선 비관을 모르는 나도 그 순간만큼은 비관할 수 밖에 없었다. 속세에서 추방되어 수행의 나날을 보내던 중 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그나마 생길락말락하던 불심이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날, 나는 파계승의 심정으로 잔을 입에 댔다. 원래는 '비뚤어질테야!'라는 심정으로 쓰러질 때 까지 마실 계획이었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지 않았다. 국산 맥주는 비렸고 소주는 역했다. 하여 그 날은 유사음주행위만 하는 걸로 그쳤다. 비뚤어지기는 커녕 입맛만 버렸다. 국산 대량 생산 주류의 맛없음을 확인한 걸로 만족해야 했다. 이것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인가.
그 기간동안 괴로웠던 건 항생제 복용이었다. 하루에 두 번, 많으면 세 번에 걸쳐 근 두 달 가까이 항생제를 입에 던져넣다보니 소화가 안되기 시작했다. 귀속에 있는 포도상구균 뿐만 아니라 소화기 속에서 소화 작용을 돕는 균까지 죽은건가. 명품 알람시계처럼 정확한 식욕주기가 흐트러졌다. 저녁 무렵이 되면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도 있었다.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고 토한 적도 있다. 세상에.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수행 끝에 득도할 날이 머지 않은 건가.
어제 찾은 집 근처의 큰 대학 병원. 나보다 어려 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귀를 들여다 본 후 말했다. 위로나 격려의 말 따위가 아닌, 무척 심하다는 말만 했다. 다행히 고막 안 쪽은 건드리지 않았다. 샘플을 채취하고 고막 바깥의 고름들을 빨아들인 게 조치의 끝. 그리고 청력검사도 하고 CT를 찍자고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약을 썼는데 낫지 않는다는 건 중이뿐 아니라 근처에 염증이 가득 차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술 밖에 답이 없다고 한다. 귀 근처를 째고 염증을 긁어내는 수술.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이 지긋지긋한 나날들에 종지부를 찍을 수만 있다면야 그깟 수술이 문제랴. 그래서 사람과 대화할 때 마다 오른쪽에 서야하고, 조금만 시끄러우면 계속 "뭐라고? 뭐라고"를 반복해야 하는, 무엇보다 왼 쪽 귀로만 음악이 들어오는 형벌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전 병원에서 받은 약이 아직 일주일 넘게, 즉 스무봉지 넘게 남아 있는데 또 새로운 약을 처방받았다. 먹는 약과 넣는 약. 오, 둘 다 하루에 한 번만 먹고 넣으면 되는 거였다. 대신 엄청 비쌌다. 그렇게 하루. 만약 이 비싼 약이 그 전과 마찬가지로 효과가 느껴지지 않았다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리가 없다. 나침반 하나에 의존해서 겨울의 북극해를 항해하는 초보 항해사처럼 지쳐 있었을테니. 이 약들, 효과가 끝내준다. 고름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르다. 왠지 이대로 일주일안에 염증이 가라앉고 고막 재생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돈 값을 한다. 칠흙같은 바다 저 멀리 희미하게나마 등대가 보이는 기분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희망사항이다. CT와 청력검사 결과가 나오면 또 어떤 사태가 펼쳐질지 모른다. 등대불이 알고보니 도깨비 불인 상황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설레발이다. 아직은.
나는 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어떻게든 되곤 했다. 그것은 희망이라기 보다는 나태함에 가까운 낙관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물론 나름 술을 멀리하고 이런 저런 노력과 관리를 하긴 했지만, 초기에 통증이 있을 때 빼고는 금방 낫겠지, 때되면 낫겠지 그런 생각으로 오히려 이 상황을 셀프개그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런데 큰 병원을 가고, 하루에 몇 번씩 항생제를 먹어도 호전이 안되니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이 생겼다. '이대로 한 쪽 청력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이럴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병원을 바꾸고(진작 갔어야 했다.) 약을 바꾼 후 하루만의 호전으로 그 두려움은 사라졌다. 물론 아직 안들리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병이 다 나으면, 그리고 청력도 회복되면 건강좀 챙기려고 한다. 운동도 하고, 마시기 위해 마시는 걸 멈추고, 아주 조금 일찍 일어나는 정도다. 다른 이유 없다. 계속 잘 놀기 위해서다. 난 놀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이니까. 또 하나, 어떻게든 안되는 것도 세상에 있으니까. 남들 다 놀고 있는 불금의 밤, 이런 글이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