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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팝 스토리: 애정의 성찰, 편견의 극복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승자의 입장에서 쓴 한 시대의 재구성이란 얘기렸다. 하지만 한 시대의 정점에선 승자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는 이야기란 영 재미가 없다. 읽는 사람은 물론이고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약 나관중이 유비, 조조, 손권을 이야기의 축으로 삼지 않았다고 치자. 제갈량, 순욱, 주유를 내세우지 않았다고 치자. 그리하여 맹획이라던가, 유장 같은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치자. 우리가 <삼국지>를 읽었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리라. 아니, 나관중도 쓰다가 붓을 꺾었을 게 분명하다.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명을 다 한 후의 이야기가 급격히 시들해지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를 만들어낸 영웅과 호걸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승자가 아닌 이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때는 딱 하나다. 재능을 타고 났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요절한 경우다. 비극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들 말이다. 


음악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음악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최소 이름은 들어 봤을 이름들이 있다. 비틀즈, 롤링 스톤즈, 밥 딜런 부터 에미넴, 비욘세, 그리고 아델에 이르는 스타들이 그렇다. 그들은 모두 다른 음악을 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상업적으로 엄청난 스타덤에 올랐다. 한 시대를 견인했다. 음악계의 유비요 제갈량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영토, 즉 장르와 차트를 개척하고 점령했으며 어떻게 음악적인 완성도와 영향력을 획득해나갔는가. 이는 거의 모든 음악책의 주요 모티브다. 그들의 성장과 활동사를 다루고 음반들의 상업적 성과와 음악적 의미를 기록하는 것, 음악책을 쓰는 데 있어서 일종의 공식이자 가장 읽히기 쉬운 도구다. 


밥 스탠리의 <모던 팝 스토리>(배순탁 역, 북라이프)는 이런 통념에서 꽤 벗어나는 책이다. 1952년 UK차트가 만들어진 후 2000년대 초 아이튠즈의 등장과 함께 음반의 시대에 부고장이 전달되는, 약 50년간이 이 책이 다루는 시대다. 이 50년의 광야에 등장했던 인물과 음악을 밥 스탠리는 편견없이 다룬다.”정확하게 팝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그것은 록, R&B, 소울, 힙합, 하우스, 테크노, 메탈, 그리고 컨트리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라는 서문의 문장처럼, 그에게 있어 비틀즈와 마빈 게이, 크라프트베르크와 비욘세는 모두 동등한 혁신의 훈장을 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시각이 가능할까?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특정한 장르와 시대에 꽂히기 마련아닌가. 그렇게 형성된 취향이 쌓이고 발전하며 누군가는 뮤지션이 되고 누군가는 비즈니스맨이 되며 누군가는 평론가가 되어 자신의 취향을 구현하고 또한 옹호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물론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약력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64년 영국 호섬에서 태어난 밥 스탠리는 학교 졸업후 대형 레코드 샵에서 일하며 음악 산업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1986년엔 음악 팬진(요즘으로 치면 독립 잡지)를 만들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의 초기 원고 중 하나는 제임스 브라운에 대한 것이었으며 실력을 인정 받아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 잡지 <NME>에 조니 캐시의 공연 리뷰를 쓰며 기자로도 활동하게 된다. 그 무렵 그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세인트 에티엔을 결성하게 되는데, 이 밴드는 당시 영국 밴드로서는 보기 드물게 여러 장르와 요소들이 혼합된 팝을 추구했다. 초기에는 고정된 보컬리스트없이 여러 보컬을 객원으로 쓰다가 1991년 ‘Nothing Can Stop Us’가 빌보드 댄스 차트 3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치자 그제서야 고정 보컬 시스템을 갖췄다. 이런 이력은 그가 젊었을 때 부터 어떤 도그마나 헤게모니에 사로 잡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우월한 음악이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그저 좋은 음악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의 편견없음은  단순히 뮤지션과 장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스타의 뒤에 숨어있는 프로듀서와 작곡가들, 그리고 그들을 고용한 제작자와 레이블에게도 마찬가지다. 영웅호걸들 뿐만 아니라 그 조력자들도 동등한 위치에서 다룬다. 그리하여 <모던 팝 스토리>는 음악의 역사를 예술적 운동의 관점뿐만 아니라 차트와 시장의 산업적 관점에서도 다룬다. 후자는 좀 더 중요한 깨달음을 독자에게 알려주는데, 이를테면 하나의 위대한 노래와 동시대 차트에서 어떤 노래들과 겨뤘는가를 확인해줌으로써 장황한 수사없이도 그 음악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 방식은 특히 세월속에서 살아남아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음악일 수록 유용하다. 물론 별처럼 빛났던 이들에 대한 헌사도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밥 딜런을 선지자로 여기며 세계의 의미에 대해 알려달라고 질문했지만 애초에 그것은 대답 불가능한 질문이었다. 대신 밥 딜런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도와줬다. 우리가 밥 딜런을 놀라운 존재였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 “커트 코베인을 감옥에 가둔 건 결국 그의 재능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그에게 탈출의 수단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우리 곁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정말이지 우리에게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애정어린 성찰없이는 결코 쓸 수 없는 문장들이다. 


<모던 팝 스토리>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떠올리곤 했다. 음악을 사랑했던 그 순간들을. 그것은 사춘기 시절의 일기를 읽으며 짝사랑의 기억을 다시 꺼집어내는 것과 같았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사랑의 이유를, 이제는 흐뭇하게 짚어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또한 나는 몇 번이나 깨닫곤 했다. 그간 내가 가졌던 음악에 대한 도그마를. 어릴 때는 메탈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라는 자부심에 빠졌었고, 언젠가는 힙합도 음악이냐는 냉소를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선입견은 사실 음악계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것이며 왜 그런 고정관념들이 발생하고 확산되었는가를 밥 스탠리는 조목조목 밝힌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음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교착상태에 빠진 흐름은 다른 음악들과의 접목과 틀을 깨는 시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말한다. 음반의 시대가 끝나고 스트리밍과 유투브의 시대가 된, 모던 팝을 지나 컨템포러리 팝의 시대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음악을 듣고 음악을 꿈꾸는 청춘들이 존재하는 한. <모던 팝 스토리>를 읽으며 모르는 음악들을 유튜브로 들으며 책장을 넘기는 걸, 정작 모던 팝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듯 다음의 누군가는 과거와 현재의 음악가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음악적 폭발을 만들어내고야 말것이다. 그 때 필요한 건 개탄과 회의가 아닌, 편견없는 발견과 해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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