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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으면 상처도 없다.

양의지를 떠나 보내고



어제 아침 더스틴 니퍼트가 양의지에게 보내는 눈물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양의지는 골든 글러브 수상식에서 니퍼트를 언급하며 울먹였다. 그리고 오늘, 양의지의 NC이적 소식이 전해졌다. 누가 게임으로 돈 버는 회사 아니랄까봐 현질을 아주 제대로 했다. 4년 125억. 김택진이 원래 두산팬이었나? 김경문도 사고 손시헌도 사고 이종욱도 사더니 이제 양의지까지 사버렸다. 이왕 현질을 하려면 아주 두산에게 베어스를 샀으면 어떨까 싶었다. 돈없어서 프차급 선수들 줄줄이 나가는 것도 지겹다. 


일부러 글까지 쓰는 이유는, 올해 가장 빠졌던 게 야구였기 때문이다. 82년 이후, 가장 야구를 열심히 봤던 한 해. 시합만 보는 게 아니라 온갖 관련 뉴스및 기타 컨텐츠도 빠짐없이 찾아 봤던 한해. 시청을 넘어 덕질이었다. 덕질이란 대체로 연애와 비슷하다. 버닝 러브와 같다. 바라는 것 없이 빠져들고,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게 된다. 144게임의 시합 하나 하나, 9이닝의 공 하나 하나를, 나는 집중했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아내에게 혼도 많이 났다. 심하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7년까지는 야구를 느슨하게 봤다. 가끔 순위나 확인하고 어쩌다가 게임 결과나 체크했다. 가을의 몇 게임만을 시청하곤 했다. 관심은 있으나 적극적인 애정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늦가을 비바람이 엄청났던 날, 결혼을 했다. 미혼에서 기혼, 첫 글자의 초성 하나만 바뀐 게 아니었다. 거의 모든 게 바뀌었다. 예상했던 것들이 바뀌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바뀌었다. 감당할 수 있던 게 있었고, 감당하기 힘든 게 있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 성격이지만, 반대로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기도 하다.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마다 온갖 건강 관련 수치가 요동치곤 했다. 변화란 어떤 식으로든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바뀐 신분은 자잘한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는 길을 막았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신다던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던가 하는. 누가 막은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자유보다는 책임의 비중이 높아진 상황이었지만 지난 삶의 관성은 힘이 쌨다. 핸들을 돌려도 좀처럼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다. 답답함과 무력감이 먼동처럼 터올랐다. 어떤 이들은 그럴 때 친구에게, 혹은 트위터나 페북에 징징대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스스로에게조차 징징대지 못한다. 하물며 아내에게도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와 못했다의 중간 어디 쯤일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소신으로 살아왔고, 실제로 많은 것들이 어떻게든 됐지만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회피에 불과했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것 같다. 


견실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있는 힘껏 핸들을 비틀어 어떻게든 방향을 돌렸을 것이다. 나는 견실하지 못했다. 도피할 곳이 필요했다. 야구가 개막했다. 패넌트 리그의 게임을 매일 보면서 처음에는 생각했다. 저녁마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야구를 보는 평범한 유뷰남의 생활이 시작됐다고. 나도 어쩔 수 없다고. 


한국 시리즈 6차전. 연장혈투끝에 시리즈 내내 죽을 쑤던 박건우가 마지막 타자로 나왔다. 그의 마지막 헛스윙 후, 공이 포수 미트에 빨려들기도 전에 나는 TV를 껐다. SK의 우승 세레모니가 시작되기도 전에 모든 야구 커뮤니티를 즐겨찾기에서 지웠다. 야구 관련 뉴스는 쳐다도 안봤다.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날부터 한동안 포털조차 들어가지 않았듯이. 현타가 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야구에 쏟아부은 150일은 여가나 취미가 아니라 회피와 외면이었음을. 나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고 당위를 외면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나태는 문신처럼 마음 깊이 새겨져있었다. 


내가 야구에 빠져 사는 걸 알던 친구는 내가 매일 야구를 보는 것을 개탄했다. 나의 현타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물었다. “이제 야구 안보겠네?” 나는 답했다. “양의지 못잡으면” 오늘 양의지 이적 소식은 이 가정을 성립시켰다. 만약 여느 해처럼 느슨한 야구팬이었다면 별 일 없었을 것이다. 이종욱, 송시헌이 나가든 말든 민병헌, 김현수가 나가든 말든 별 일 없이 살았던 것처럼 이렇게 심경을 적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야구에 연애처럼 빠졌던 해였기 때문에, 분노란 것도 생기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150일의 회피와 외면 끝에 결국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줘서. 이별이 미래에 줄 상처의 무게는 사랑이 과거에 준 기쁨의 무게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줘서. 


나는 외면과 회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직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저녁 노을이 간만에 아름다웠다. 집을 나와 걸으며, 모처럼 하늘을 계속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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