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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빙어니언 Feb 25. 2024

세상은 앓음다우니까

노력을 믿어본다

대학생 시절, 홍보대사가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정돈된 머리와 세련된 유니폼 차림으로 고등학생들을 안내하고, 학교 홍보물에는 세상 제일 예쁜 미소가 찍혀 있는 등 겉모습에 반해 지원했던 것 같다.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좋았던 점 등 애교심을 끄집어 지원 동기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몇 십 번씩 수정했다. 글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고 어색했지만 자기소개서 많이 써봤다는 친구, 학원 선생님, 좋은 대학교 간 사촌언니 등 지인에게 지원서 한 번 읽어봐 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했던 것 보면 정말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어렵게 쓴 서류가 통과되고 면접 날짜가 잡혔다. 살 빼려고 밥도 안 먹고 헬스장도 가고, 무슨 예상 질문이 있을지, 창의적인 답변은 뭐가 좋을지, 수많은 지원자 중 나를 각인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엄마와 백화점에 가서 원피스를 고르는 등 고민을 많이 하며 준비했다. 붓지 않기 위해 전날 저녁도 먹지 않았다. 면접 당일, 정성스럽게 화장하고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안고 면접실에 들어갔다. 왜 지원했는지, 우리 학교만의 특징, 증명 사진 언제 찍었냐는 등 예상 질문부터 생뚱맞은 질문까지 떨리지만 허리 꼿꼿하게 펴고 답변했다.

홍보대사가 나온 홍보물.(내가 나온 학교는 아니다.) 출처: 동아대학교

면접 후 끝났다는 안도감과 안 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과 함께 며칠을 보내고 드디어 결과를 마주했다. 탈락이다. 허무함과 동시에 눈물부터 났다. 내가 그렇게 안 예쁜가,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내가 원하던 대학교도 떨어졌는데 난 역시 뭘 해도 안 되는가 등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리쳤다. 우울하게 몇 시간을 보내고 학원 선생님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학원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영어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됐다. 영어를 가르치셨지만 언어에 있어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자기소개서 검토를 부탁했던 분이다. 결과가 나오면 꼭 알려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전화했다. 울면서 떨어졌다고 말하는 나의 소식에 선생님은 이렇게 위로했다. “그냥 너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준비한거야. 더 많이 고민하고 자기관리 잘하고 더 열심히 한 사람이 된거야.”


생각지 못한 위로였다. 떨어졌지만 나에 대해서 또는 면접 본 교수님의 관점에서 생각했지, 다른 지원자에 대해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 울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렇게 믿어야지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


나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나보다 더 깊이 고민하고 준비한 지원자가 홍보대사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내가 더 치열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위로였다. 그래서 나는 통화를 끊고 나보다 더 많이 준비한 사람이 홍보대사가 됐다는 사실을 믿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다음에 내가 회사 합격했을 때 또는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내가 누구보다 준비 많이 해서 이긴 것으로 생각할 것을 결심했다.

소설가 박상륭은 아름다움이란 '앓음다움'이라고 표현했다. 고민, 절실한 마음, 하기 싫은데도 꾹 참고 묵묵히 한 노력, 등 무언가를 위해 진정 앓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세상이 보여지길 간절히 바란다.


노력의 순위가 곧 결과에 나타난다는 믿음. 결과에 마음이 아플 수도 있지만 그래도 노력을 믿어보는 것이다. 많이 부족하지만 오늘도 열심히 글을 썼다. 이 노력이 나의 다른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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