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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Apr 20. 2023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7회 말 연속 득점 그리고 역전. 3회초에 연이은 안타를 맞고 풀 죽어있다가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야구 보는 맛이 이거지. 과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스포츠다. 



9회 말 끝내기 홈런은 또 어떤가. 패색이 짙어지고 관중들은 하나 둘 짐을 싸 미리 인파를 뚫고 터덜터덜 나가는데 어라? 반신반의하면서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그러고 싶지 않은데 괜히 마음 한 구석에 희망의 불씨가 하나 탁 켜진다. 긴장 속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배트가 돌아가고 이전과 다르게 시원시원한 탕-소리에 공기를 뚫는 것처럼 쭉 뻗는 볼. 



누군가 안타를 쳤거나, 홈런을 쳤을 때를 야구장 밖에서도 눈치채는 방법이 있는데,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내지르는 함성 소리가 길어지다가 곧이어 한 음 더 높은 함성 소리로 이어질 때가 그때다. 대게의 경우 함성 소리는 뜬공이 그리는 포물선과 같이 힘없이 고꾸라지지만, 점수를 내는 볼은 소리부터 다르다. 일명 그라데이션 함성 소리가 파열음처럼 터지고 주자들이 홈으로 돌아오면 집에 가려던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다시 짐을 내던지고 목청 터지게 노래를 부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누가 만든 말인지 정말 잘 표현했다. 참을성없는 나같은 관중은 점수가 벌어지는 순간 '텄다 텄어' 하며 애써 시큰둥해지려 노력하지만, 이따금씩 그런 빠른 포기가 민망해질 정도로 짜릿한 반전을 선물해주는 스포츠다. 



더이상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순간에 배트를 쥔 채 외롭게 서있는 타자가 시원한 홈런을 칠 때면 그간 일상 속에서 얼마나 번번히 실패가 두려워 지레 겁을 먹고, 아직 설익었을 때 급하게 따먹어버렸는지를 떠올리곤 한다. 야구는 어떨 땐 인생과 같다는 다소 웅장한 말이 새삼 피부로 와닿기도 한다. 새옹지마였다가도 전화위복이 되는 건 야구나 우리 인생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반쯤 포기했을 때, 지쳤을 때쯤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리듯이 흐름이 바뀌어버리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야구 팬이 되나보다.






 


우리팀 수비 순서라 자리에 앉아 경기를 보고 있을 때였다. 상대팀 팬들은 일어나 가사는 정확히 들리지 않는 응원가를 부르고 있고 선수들은 부채꼴 모양의 그라운드에 작은 인간 미니어처들처럼 자세를 낮추고 서있었다. 



과자를 먹으면서 맥주도 같이 쪼로록 마셔주고 공격 때보다는 조금 느슨한 표정으로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타자를 바라보는 각도에 장애인석이 눈에 걸렸다. 일반석들보단 간격이 넓고 테이블석처럼 음식을 올려두고 먹는 테이블이 있고, 휠체어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넓은 복도에 있는 자리다.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리가 어떻고 누가 앉았는지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 자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아저씨와 휠체어에 탄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한쪽 팔은 휠체어에 붙어있는 끈으로 묶여있고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찡그리는 얼굴을 폈다 접었다 하는 할아버지는 뇌성마비가 온 장애인이신 것 같았다. 좋아하시는 건지 아닌지, 아니 사실은 이 경기를 알고 보시는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를 정도로 표정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저 매마른 고목같은 살갗을, 피부라기보단 가죽에 가까운 얼굴이 움푹 파이게 연신 찡그리기만 하셨다. 공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남들보다는 한템포씩 늦게 고개를 돌리고, 선수들을 보다가 전광판을 보기도 하는 빛 바랜 눈동자에서 경기를 보고 계시긴 하구나,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아들로 추정되는 옆에 앉은 아저씨는 살뜰히도 할아버지를 챙기셨다. 입에 작은 치킨 조각을 넣어드리고, 하나 넣어드릴 때마다 입 주변을 닦아드렸다. 할아버지의 옷을 여며 드리고, 물병을 가리키시면 조심스럽게 입에 물을 따라드리기도 했다. 



잠시 두 분을 둘러싼 다른 것들이 뿌옇게 보이면서 부자의 오늘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침대에 누워 계신 어르신을 일으켜 휠체어에 앉혀드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고 봉투에 넣어 휠체어의 핸들과 바퀴 뒤에 걸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고 야구장까지 가는 날이니 할아버지도 평상시보다는 들뜬 마음이셨겠지. 이 날 날씨도 근래들어 가장 맑고 좋았는데, 마침 그런 날 외출하셔서 정말 다행이다.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먹기 좋은 순살치킨으로 포장해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리기 전 경기장에 조금 일찍 도착했을 것이다. 평소 주변의 적막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관중석 소리, 웅웅거리는 엠프소리와 북소리, 여기 저기서 맥주캔 따는 소리에 할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경기 내내 연신 찡그리셨지만 그 얼굴이 왠지 괴로움과는 멀어보였다. 아저씨는 할아버지의 미세한 표정만 봐도 아실테니, 오는 길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모셔왔다고 생각하시겠지. 남들보다는 배로 힘들고 배로 각오해야했을 이 날의 외출은 그만큼 배로 값졌겠다.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디 그 날 경기장을 채웠던 모든 에너지가 어르신께 전달되었길 빌었다. 

사람들이 모여 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응원할 때면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무언가 울렁울렁거리고 심장이 간질간질거리면서 닭살이 돋을 때가 있다. 앞, 뒤, 옆사람과 전혀 모르지만 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를 기원할 때 솟구치는 어떤 동지애과 친밀감 같은 것이 생긴다. 여차하면 어깨동무까지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 보이지 않지만 분명 어떤 기운이 그 공기를 채운다고 믿는다. 


흔히 경기의 흐름이 바뀐다고 하나. 경기의 흐름이란 것도 이런 기운이 뒤에서 바람이 불어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듯이 분위기를 밀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흐름을 타면 내내 부진했던 선수도 날개를 달은 듯 잘하기도 한다. 


경기장 전체를 꽉 채웠던 그 기운이 그 날만큼은 모두 온전히 어르신의 마디마디에 흡수되었길 바랬다. 불편한 몸을 치료해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 행복하셨기를. 같이 일어나 옆사람을 얼싸 앉고 뛰진 못하지만 그 희열을 가슴으로 모두 받으셨기를. 적막한 병실이나 요양원에 돌아가 꼼짝 못하는 침대에 다시 누우셔도, 부디 마음만은 북소리와 응원소리로 가득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7회 말 역전의 순간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희망이 미약하게나마 할아버지와 아저씨의 마음 한켠에도 피었길 몰래 기도했다. 적어도 할아버지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 거란 희망이라도 말이다. 가시는 길에 고통만 있지 않을 거란 희망, 이렇게 종종 바깥 바람을 쐬면서 고통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희망.





우리 팀의 우승으로 경기가 종료되고 그 날의 MVP 선수의 간단한 인터뷰까지 본 후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올 때까지도 아저씨와 할아버지는 자리에 계셨다. 인파가 조금 덜해졌을 때 안전하게 나가기 위함이였으리라. 


음에 두 분이 시야에 들어왔을 땐 괜히 서글픈 마음이 잠시 들었다가, 살뜰히 할아버지를 챙기는 아저씨와 느릿느릿하게나마 눈으로 공을 따라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음 번에 왔을 때도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기 내용을 알고 계시는지 잘 모르겠는 그 표정으로라도 앉아계신다면 왠지 마음이 더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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