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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Oct 30. 2024

노릇하게 구워진 올해

저, 토스트아웃이래요.

올해는 분명 성장의 해라고 했다.

새로 마주하는 것들이 많을 것이고, 끊임없이 새로 들이치는 파도에 잠기지 않고 그 위로 올라타기 위해 배우고 커가는 시기라고 했다.



작년인가 올해 초 봤던 온라인 사주 풀이로는 그러했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내 몸은 11월에 당도해 있었다. 성장은 커녕 무기력함만 잔뜩 짊어져 허리가 휘어져있는 모습으로.



올해의 나는 멋진 사진작가로 거듭나 있을 줄 알았다. 작년 12월,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매일같이 밤을 새며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었다. 그리고 택한 길은 그 이전에 한 어떤 선택들보다 과감했다. 나는 내가 거쳐 온 많은 길들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사진작가의 길을 택했다. 그땐 그게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뷰파인더 너머로 누군가의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행복했다. 검은색 무거운 물체를 사이에 두고 피사체와 호흡하는 것이 재밌었고, 그 피사체의 분위기를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다듬는 책상 위 작업도 즐거웠다. 머그컵에 따뜻한 차를 끓이고, 잔잔한 노래를 틀어놓고, 큰 모니터로 색감을 만져가며 하나의 사진을 완성시키는 과정이 좋았다. 밤마다 갖는 그 고요한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작업하는 내가 멋져 보였던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큰 전환점을 각오하고 시작한 2024년은 첫 달부터, 아니 첫 날부터 삐걱거렸고 이내 와장창 무너졌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것뿐, 그에 수반되는 각종 유사 서비스직 업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무거운 짐을 낑낑 거리며 지상과 지하를 오갔고, 그 와중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며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조명의 끼웠다 뺐다, 조였다 풀었다, 이리 저리 나르는 것 역시 온전히 내 몫이었다. 끼니를 거르며 고객의 옷매무새를 봐 주고 메인 작가의 손, 발이 되었다. 허리가 아파도, 복통이 도져도 그건 내 사정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말에 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케줄 근무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겪고 나서야 안 것이었다. 남들이 쉴 때 일하고, 내가 쉴 때 남들이 일하는 이 엇갈린 스케줄이 내 정신마저 약해지게 만들었다. 어쨌든 더 하소연이 되기 전에 끝맺자면, 한마디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작년의 나는 지금 생각해보니 꽤 살인적인 일정을 자발적으로 수행했었다. 회사를 가기 전엔 아침 일찍 일어나 테니스를 치거나 책을 읽었고, 퇴근한 후에는 필라테스를, 주2회 매번 다른 모델들과 야외 촬영을, 그리고 촬영이 없는 날엔 보정 작업에 매진했고, 틈틈히 온라인 인강도 들었다. 인물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주2회 촬영 후 두 명 모두에게 일주일 이내로 보정물을 전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유료로 해도 6주 보정 기간을 잡는 작가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때 순전히 내 의지로 무페이 열정을 태웠다.



그 시간들을 거쳐 나는 사진에 더 열정을 쏟기로 한 것이었고, 잘못된 선택을 자각했을 땐 이미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다행히 운좋게 바로 다음 달부터 전혀 다른 직군으로,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일을 업으로 할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지쳐있었다. 그걸 그땐 몰랐다.



'번아웃'이라고 부르는 건 몇 년을 일해야 오는 것이라고 정의했었다. 그러니 그 정의에 따르면, 나는 아직 번아웃이 오려면 한참 멀었기 때문에 그럴리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꼴랑' 이 정도로 번아웃이라니, 우스워. 그런데 이상 신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깜빡거리고 있었다. 저녁 시간을 그토록 내 시간으로 잘 쓰고자 했던 내가, 퇴근 후에 집에 가면 누워 있기만 했다. 5초 남짓한 웃긴 영상들을 검지 손가락으로 휙휙 쓸어올리고, 방은 점점 너저분해졌다. 급기야 책상은 노트북 하나 정도 쓸 수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잡동사니로 쌓여갔다. 언젠가 긁었던 카드 영수증, 읽으려고 했다가 시작도 못한 책들, 약 봉투, 더이상 필요없는 서류 등. 모든 걸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기억은 자꾸 깜빡깜빡했다. 급기야 하던 운동마저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만 두고, 조금씩 풀려가며 근육을 붙이려 준비하던 몸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놨다. 아무 것도 안한채 시간만 죽이는 평일은 계속되고, 주말엔 인간관계를 위한 약속들로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일주일이 홀라당 지나갔다. 어디에도 성장은 고사하고 내 시간도 없었다.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알면서도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토스트아웃'.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식할 때쯤, 그때 그 단어를 처음 봤다. 번아웃은 아무 것도 못하는 멍한 상태를 일컫는다면, 토스트아웃은 그 직전 단계를 뜻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 구워 까맣게 타기 직전, 노릇함을 넘어 오버쿡된 그 상태.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지만 완전히 타지는 않은 조금 지친 상태', '실제로는 의욕이 없더라도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특징을 보인다'라고 묘사된다. 생활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주어진 일은 그럭저럭 해내고 있지만, 그 외의 시간은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내 상태였다. 하얗고 빵실했던 내가 지나치게 노릇하게 구워졌다니. "내가 번아웃이 벌써 오면 안되지, 온 거면 그냥 멘탈 약한 사람인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부정했던 번아웃은 아니지만 토스트아웃. 그게 나였다.



성장하는 해라고 했던 사주가 틀린 걸까, 아니면 그 사주를 이길 정도의 거대한 게으름이 찾아온 걸까. 무엇이 됐든 이대로 지속할 순 없다. 곧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는데, 이렇게 살 순 없다. 독립된 한 가구로서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엔 이런 내가 존재할 수 없어. 그럼 나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내가 지금 어디에 집중해야하는 걸까. 그 질문을 연말까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당장 할 일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언발란스룩으로 살면 된다는 말이 있다. 올해는 첫 달부터 잘못 꿰어졌으니 멋드러진 언발란스룩이라도 완성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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