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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근 Apr 02. 2021

두부밥상

그리운 밤에

새우젓 간에 굵은 고춧가루가 듬성듬성 뿌려진 보글보글 끓어대던 두부찌개, 노릇노릇 고소하고 담백한 두부 전, 자주 젓가락을 가져가면 눈치가 보이던 단짠단짠 두부조림, 밥에 말아 후루룩 마셔먹던 고소한 순두부 국 등 두부요리로 한 상을 가득 채웠던 유년 시절 그 밥상이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 마을에서 읍내로 넘어가는 길목 산 중턱에는 제법 큰 목장이 하나 있었다. 읍내를 오갈 때 길가에 있는 목장 주인집 창문에서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곤 했었다. 피아노를 치던 사람이 누구인지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 당시 쉽게 들을 수 없던 악기였고 그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우리들의 삶과는 매우 다른 삶을 살 꺼라고, 그래서 TV 속에 나오는 배우처럼 상당히 예쁜 여자일 거라고 상상하곤 했었다.


겨울 어느 날 목장 공터 한 귀퉁이에 평소 보이지 않던 작은 산이 하루 사이에 생겨났다. 알고 보니 그 산은 두부 공장에서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한곳에 모아 둔 비지 더미였다. 목장은 소먹이로 사료를 주는 편인데, 사룟값을 아끼려고 사료와 꼴 또는 사료와 비지 등의 일정 비율로 밥을 멕이는 편이다. 목장 주인은 그런 셈산으로 두부공장에서 비지더미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비지 더미엔 비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비지 사이사이에 모두부, 순두부 봉지들도 꽤 많이 보였다. 아버지는 그 두부들을 발견 후, 겨울이고 포장도 돼 있으니 충분히 먹을 수 있다면서 지나치기 아깝다며 집에 가지고 가자 했다. 우리는 목장 주인을 찾아가 사정을 구하고, 비지 산더미 구석구석 얼어붙은 비지 덩어리들을 깨고 헤쳐가며 유통기한이 한창 지난 두부들을 수레에 주워 담았다.


그날 저녁부터 밥상엔 가져온 두부들로 반찬과 찌개가 차려졌다. 처음엔 이 음식을 어찌 먹나싶어 머뭇머뭇하다가 아버지에게 여러 대 맞기도 했다.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평상시 보던 두부의 모양새와 많이 달랐기 때문인데 색은 누랬고, 바람든 무우처럼,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있듯이 그 두부의 모양새도 비슷했다. 그렇게 그 이후로 매일매일 두부밥상이 차려졌다. 우리 일곱식구는 작은 두부 밥상 앞에 옹기종기 앉아 그해 겨울을 보냈다. 아니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두부를 가져오던 그날 목장 주인의 손가락질에 그렇게 얼굴 빨개지고, 창피 했었는데 말이다.


그리운 밤이다.

그 두부 밥상이 그립고, 옹기종기 앉아 반찬 싸움하며 먹던 그 시절이, 창피함을 잊게 한 어머니의 맛난 음식이,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던 내 모습을 창피해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어렸을 적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의 변덕과 얇은 귀 마저도 너무너무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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