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되짚어 보기기
아주 오랜 기간 사귄 남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하고 서로 연락 없이 일주일이 지났다. 이번 주 내내 울컥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상태지만 매일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서운하고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은 삶을 공유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쏟은 상대가 알고 보니 알맹이가 아니라 빈털터리 쭉정이였기 때문에 후~ 불어버린 바람에 이토록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것이다. 저 쭉정이를 위한 나의 아름답고 애잔한 마음의 시간이 내 인생의 1/3을 차지하였기에 이토록 쓸쓸하고 괴로운 것일까? 쭉정이와 헤어짐으로 인해 느껴지는 이 허무함은 앞으로 두고두고 아린 상처로 남을 것이다.
지난주에 쭉정이의 "여자 친구"가 나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맞냐고 수십 통의 소셜미디어 메신저들로 물어보는 대화 내용을 확인했을 때 '무슨 이런 고약한 장난질로 문자를 하는 사람이 있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을 정도로 쭉정이와 내가 정신적으로 깊이 연결되어있다고 믿었었다. 우리의 특수한 상황(수년간의 국제연애)에 코로나 시국까지 겹쳐졌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가올, 실제로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며 때로는 장난 가득한 대화와 문자를 매일 주고받았었기 때문에 지난 월요일 새벽에 받은 제삼자의 문자 내용만으로는 도대체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여자 친구"는 나에게 실존인물이 맞냐는 것, 그리고 그 쭉정이의 다이어리에 꽂힌 나의 사진과 편지 내용을 통해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며 본인도 충격에 휩싸여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분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다음날이 되었고 새벽 내내 대화를 신청하는 여러 메시지가 추가로 접수되어 있었고 그 내용이 점점 진지하고 구체적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에 응하였다. 질문의 요지는 내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나와 쭉정이의 관계가 어떠 관계였는지 묻기 시작하는데 이 분은 내가 물어보고 싶은 내용을 오히려 나에게 물어보는 것 아닌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날 저녁 쭉정이랑 대화를 통해 나( 쭉정이에 따르면... I'm miss nobody..)와의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하고 대화가 종료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점점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면서도 믿고 싶지 않은 상황에 난감해졌다.
활활 타오르는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꾸준한 애정을 주고받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수년간의 지속된 국제적 연애 기간 중에서 종종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가끔은 섭섭한 정도? 내가 필요할 때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뭐 바쁘니까 그런가 보다, 나도 바쁘니까.'로 가볍게 넘기게 되는 것들이 어쩌면 가장 큰 시그널 중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몇 가지 정. 뚝. 떨 상황을 알려주신 저 여자분의 증빙자료를 확인해보니, 약 3년간 동안 이뤄진 행태는 이러하다. 나와 함께 여행 간 장소들, 나의 친구들의 사진이 모두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었고, 동시에 나의 존재는 그냥 한국에 있는 친구 중 1명이고 나머지 친구들도 언젠가 이 여자 친구에게 소개해 주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걸 공교롭다고 표편해야 할지, 나의 생일과 저 두 사람의 사귄 기념일이 비슷했는데 같은 수작업 카드를 만들어서는 이름만 바꾸고 내용도 약간만 수정, 그러나 거의 똑같은 디자인의 카드를 보낸 점 (도대체 몇 년이나 그런 거지..?....) 그리고 정확하게 나와 쭉정이의 미래의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던 그 시점에 “여자 친구"에게는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 등.....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즐거웠던 그 시간 동안 저런 행태가 국적불문 여러 여자들에게 있었다는 증빙자료까지 받으니 정말 말 그대로 정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괘씸하기 짝이 없어서 나는 쭉정이에게 해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와 쭉정이를 동시에 알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미안하다고 했다더라. 심지어 그 친구들까지 나는 믿을 수가 없어졌다.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잇지 않았을까? 어디까지가 진실인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한 편의 애잔한 마음은 함께 지낸 세월에 대한 ‘정’, 긴 시간 동안 서로의 베스트 프랜드로 (최소한 나에게는) 존재하며 가슴의 자리 잡은 공간의 무너짐과 그리고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쭉정이가 다른 여자(들)과 연애가 아닌 그저 외로움을 잊기 위한 만남을 가져왔다면 내가 이토록 허무하고 배신감을 느꼈을까? N명의 "여자 친구"들이 나와 있을 때 받았을 문자들, 똑같이 만들어진 편지가 도대체 몇 통이나 되는 것일까, 결국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쭉정이에게서 온 회신은 정말 흔해 빠진 대답이었다. “미안한다. 사랑한다. 저 여자와는 다시는 말도 안 할 것이다. 너와 헤어질 생각은 아니다.” 쭉정이의 말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던 것은 이번"여자 친구"도 이런 내용의 문자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수면 위로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여자 친구에게서 우리가 헤어진 이후 다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한 부분을 깊이 차지했더 사람의 자리였는데 이 부분들 도려냈으니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차라리 다른 사람과 새로운 연인관계를 시작하기위해 당시 존재했던 우리 관계를 종료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거쳤다면 나의 아픔이 더 작았을까? 이 이별이 지금보다는 덜 허무하고 그저 애잔함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이토록 예의 없는 양다리를 거의 3년간 걸쳐온 쭉정이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 준 저 "여자 친구"분에게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들다니. 이제부턴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갈 것, 그래야 대학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이별을 통해 지금까지의 나보다 더 성숙한 내가 되어 언젠가 다음에 누군가와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 진국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이 생겼기를. 시간이라는 아주 값비싼 비용을 지불했다. 먼 훗날 쭉정이가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이 문득 떠오르면서 죄책감과 자기 연민 등등을 깨닫거나 말거나를 궁금해 하는 내가 참 정이 깊은 사람이 었구나.
두고두고 회상될 이번 연애는 이렇게 끝났다.
Good bye
PS. 정말 도움이 된 채널들.....
- Do You Have Post Betrayal Syndrome? | Debi Silber
- How to fix a broken heart | Guy Wi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