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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신 Sep 12. 2022

Incubation Period

2022. 9. 7 – 9. 22. 호랑가시나무 베이스폴리곤

남소연, 이원호, 장재희는 성남시 신흥 공공예술창작소에서 프로젝트팀 ‘타.원’을 결성해 도시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작업과 연결하며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세 작가가 참여한 《Incubation Period》는 성남 문화재단과 광주 호랑가시나무의 교류를 통한 전시다. 공동의 프로젝트를 발표하기에 앞서, 이들은 각자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려 팀이 아닌 개인으로서 진행한 작품을 꺼내어 놓았다. 이원호의 독일 유학 시기의 초기작을 비롯해, 가상 공간과 세계관이 중첩된 남소연의 회화,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룬 장재희의 작업이 전시를 통해 재구성되었다.


다양한 작품들을 잇는 얼개이자 전시의 제목인 《Incubation Period》는 변화의 가능성이 축적된 과도기를 의미한다. ‘Incubation Period’는 잠복기, 배양 기간, 부화 기간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다. ‘잠복기’의 경우 질병이 드러나기 이전의 기간을 뜻하며,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쓰는 오늘날 부정적인 어감을 다소 풍긴다. 한편, ‘배양 기간’과 ‘부화 기간’은 균이나 세포가 특정 조건에서 자라나는 기간이자, 동물의 알이 부화하여 개체가 되기 이전의 단계를 말한다.


전시된 작업들은 작가가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의 단계(이원호)와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기 시작한 시기(남소연), 그리고 밀접한 타인과의 관계성을 명료화하려는 과정(장재희)을 지나며 만들어졌다. 각기 다른 작가들과 인생의 경로를 함께 한 작업에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느낀 심리와 자신의 내면을 안정화하고 감정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반영되어 있다.


남소연의 그림은 작가의 관심사가 3D 프로그램으로 만든 최근작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몇 년간 작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남소연구소’라는 가상의 공간을 설계했다. 남소연구소는 프로그램상에서 제약 없이 변화하고, 전시장과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활성화된다. 이번 전시가 열리고 있는 호랑가시나무 베이스폴리곤은 남소연구소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회화에도 가상 공간에 관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남소연이 3D 프로그램을 다루기 시작한 이후 환영이 그려진 캔버스의 평면은 모니터 화면과 연동되는 가상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가상 공간에 존재할 법한 그림 속 사물에는 〈모유를 보관한 병과 손가락 빨대〉, 〈중심 잡기 의자〉 등의 독특한 이름이 달렸다. 대부분 유기적인 형태인 사물들은 내면의 정서를 관객과 공유하기 위해 작가가 고안해낸 실험 기구다. 


이원호는 사회가 그어 놓은 경계를 고민하고, 일상에서 마주한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는 유학 시절의 작품 2점을 처음으로 국내에서 선보인다. 〈물고기 스프〉는 생선 요리를 맛보기 힘든 독일에서 물고기를 떠올리며 스프를 끓이는 과정에 동료들의 대화를 곁들여 담아낸 영상이다. 유학생 신분으로 장기간 체류하던 그는 독일 사회의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해 냈다. 〈지난 밤〉은 새해 첫날 길거리에 떨어진 폭죽의 탄피를 빵 봉투에 주워 담은 것이다. 새해 맞이 축제에 쓰인 폭죽의 형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총탄을 닮아 다양한 이들 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독일 사회의 면모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최근에 제작된 〈너만 괜찮다면 나는 괜찮아〉는 ‘괜찮습니다’라는 문장을 변주하여 재생한다. 일상에서 안부 인사로 쓰이는 ‘괜찮아요’는 상대의 복잡한 상황을 간단히 확인하고 넘어가거나 다가오는 타인을 거절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전시 공간을 울리는 일방적인 메시지에는 다양한 함의와 배제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장재희의 작업에서는 단순한 범주로 규정할 수 없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다루어진다. 어느날 어머니가 ‘우리는 전생에 부부였나봐’라고 한 말은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문장의 의미는 두 사람의 사회적인 관계로 인해 전통적인 모성과 가부장제의 계약으로부터 비켜나고, 전생이라는 전제와 얽혀 시간을 뛰어 넘는다. 〈하나의 언덕과 두 개의 벽으로 이루어진〉은 어머니가 덮은 이불 둔덕을 찍은 것이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막과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은 좁은 공간에 프로젝터로 비추어진다. 더 나아가 어머니와 공유한 감정은 퍼포먼스에서도 표현되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의 텍스트는 퍼포먼스 〈이름 없는 사랑〉를 위해 썼던 글의 재구성이다. 작가는 어머니와의 애틋함을 연인 사이의 로맨틱함과 여성 간의 우정과 사랑에 빗대고, 생각을 구조화하려 하나 단단히 얽힌 관계와 미묘한 감정은 쉽게 정의되지 않는 중간 지점에 와 있다.


한 가지 단초에는 여러 갈래로 발현될 가능성이 잠재한다. 실상은 공기 중의 물방울이나 집단을 감도는 분위기처럼, 분리 불가한 것이 섞여 긍정과 부정이 명징하게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급변하는 흐름과 사회불안 속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과거의 작품을 공유하고 공동의 경험을 만드는 시도는 남소연, 이원호, 장재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함께 고르는 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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