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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신 May 17. 2023

구성의 법칙

진강 개인전

구성의 법칙

存在方式

The Way of Composing

2023. 5. 7 ~ 13.

artplace A.P. 23


나는 진강이 먹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진강은 광목을 고른다. 그가 고른 광목은 미색에 작은 점이 박힌 옷감이다. 진강은 종이에 간략하게 계획한 후 그린다. 광목 위에 사물을 배치하거나 붓을 휘둘러 큰 틀을 잡고, 화면을 구획해 균형을 잡는다. 광목은 먹물을 곧바로 흡수하지 않고 잠시 머무르게 한다. 옅은 먹은 겹칠수록 짙어지고, 짙은 먹은 끈적해 보이는 얼룩이 되며, 소금 알갱이는 물을 밀어 매번 다른 무늬를 만들어 낸다. 그의 그림은 눈과 손, 광목과 먹, 물과 소금의 합으로 이루어졌다.   


진강이 광목을 쓰는 이유는 크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진강은 두루마리와 족자의 형식을 가져와 공간을 채웠다. 전시장 맞은편의 그림들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족자형이다. 왼편 천장에는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이 있다. 진강은 크게 그리는 까닭을 몰입적인 환경을 구성하고 싶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물질성은 나를 마냥 화면에 몰입하도록 두지 않는다. 걸린 그림은 휘어진다. 다시 말해 그림 속 도형과 레이어도 휘는 것이다. 게다가 먹은 직선을 조금씩 벗어난다. 먹은 천의 올을 따라 번지고, 마스킹 테이프의 구획 너머로 스민다. 먹그림은 아크릴 물감과 에어브러시로 그린 그림과 달리 피막을 형성하지도, 자른 듯한 윤곽으로 마무리되지도 않는다. 그림의 레이어로 깊이감이 느껴지는 공간을 구성하고 천으로 전시장을 덧씌워 몰입적 공간을 만들려는 욕망은 재료의 물질성과 공존한다.


그림에는 재료의 합이 만드는 추상적인 효과, 작가가 구획하여 만든 기하학적인 도형 외에도 여러 형상이 있다. 형상은 다양한 곳으로부터 왔다. 진강은 사물을 사생하며, 고화를 임모하고 사진 이미지를 그린다. 그중에서도 사물의 검은 윤곽은 이번 전시에 자주 보이는 형상이다. 그는 길가와 공원, 문구점과 시장에서 찾은 재료를 광목 위에 두고 먹물을 뿌린다. 사물을 감싼 공기와 그날그날의 분위기를 그리고 나서 사용한 것을 작업실 한편에 둔다. 먹은 사물의 주변을 채운다. 그로써 공백은 다시금 존재가 되고, 다시금 여백이 된다. 고전에서 바위로 물을 암시하고, 검은 먹으로 하얀 달을 그리듯.


그의 형상에서 고정된 뜻을 읽기란 어렵다. 다중의 세계에 흩어진 형상들은 무관하게 존재하는 듯하다. 날개를 편 까마귀와 날 선 가위를 무슨 수로 이을 것인가? 화면에는 계절감이 다른 나비와 단풍이, 솔잎의 흔적 옆에 화보의 필법을 따른 솔잎이 놓인다. 고전과 달리 진강의 도상은 뚜렷한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하나하나의 형상은 진강을 모르는 타인이 엮을 수 있는 상징이 아니다.


이질적 존재와 상반되는 힘은 순리를 거스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조화와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그림을 구성한다. 아래로 흐른 먹물에서 식물의 잔뿌리가 돋고, 손으로 그린 붓질에서 다시금 손이 돋아나는 것. 진강은 서로 얽히고 순환하는 존재 방식을 형상이 뒤섞인 그림으로 은유해 낸다. 전시의 제목인 ‘구성의 법칙’은 진강이 그림을 구성하는 방식이면서, 그가 직접 체험하고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구성 법칙이다.


윤형신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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