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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해 작업의 명상적 태도에 관하여

by 형신

고요한 연루. 김동해 작가가 고심하여 정한 전시의 제목이다. 나는 작가와 함께 스무 가지 이상의 제목을 살펴보며 고민했고 여러 산뜻한 이름들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작가는 자신의 작업과 같이 가장 단순한 제목을 정했다. 내가 받아들인 ‘고요한 연루’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먼저 고요함을 이야기해 보자. 사전적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에게 고요함은 조용함과 다르다. 조용함은 소리와 움직임이 없이 정지해 있는 상태다. 한편 고요함은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는 정도가 미묘해서 소리와 움직임이 매우 적다. 생명력과 생동감이 있지만, 작고 조심스러워서 집중해야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0에 아주 가까우나 없지는 않은 상태다.


또한 고요함은 상태일 뿐만 아니라 작은 변화와 차이를 알아차릴 만큼 타자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열려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대기의 숨소리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숨소리를 알아차릴 만큼, 그리고 그것이 거의 없음에 가까운 정도로 시시각각 차분해짐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고요함의 예로 차를 마시며 하는 차 명상을 들 수 있다. 찻잔에 따르는 물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손으로 맞잡은 차의 온도를 느끼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찻잔에 귀를 가까이 댄다. 그러면 따듯한 차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느낄 수 있고, 작은 찻잔의 옴폭한 부분이 만들어 내는 공명이 들린다. 고요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정적이지만 정지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한편 연루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의 철학에서 비롯된 단어다. ‘연관되다’ 또는 ‘얽히게 되다’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서로 다른 존재 간의 관계성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지 외에 다른 존재와 어찌할 바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연상시킨다. 김동해 작가는 내게 카일 차이카의 '단순한 열망: 미니멀리즘 탐구'를 추천해 주었는데, 차이카는 '단순한 열망'에서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은 자신이 가진 물건을 처분하여 단순한 삶을 만들어 가려는 열망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미니멀리즘의 정신은 비움으로써 단순성과 편리성을 성취하거나, 빈자리에 다른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차이카에 따르면, 미니멀리즘의 정신은 단순함에서 복잡함과 미묘함, 그리고 그에 얽혀있는 존재와 힘들을 발견하는 데 있다. 김동해 작가의 작업 또한 차이카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데, 단순한 조형을 통해 복잡 미묘한 감성을 말하고, 그와 연루된 넓은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동해 작가의 작업실을 보면 작가의 작업이 세계와 연루됨을 확인할 수 있다. 작업실에는 주변의 산책로에서 발견해 수집한 풀과 낙엽이 놓여있다. 풀과 낙엽은 방문객의 발걸음과 숨에 맞추어 흔들린다. 그 옆에는 작가가 만든, 바랭이풀의 이삭을 닮은 금속 조형물이 고요히 함께 움직인다. 모은 것을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의 작업과 더불어 놓아둔다는 점에서, 작가의 태도는 자연으로부터 분절된 표본을 수집하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서 잠시 작가가 추천한 레너드 코렌의 '와비사비'를 살펴보자. 코렌은 “불완전하고 비영속적이며 미완성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낡아 바스러져가는 작업실의 낙엽, 공기에 반응해 서서히 산화되는 작가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코렌은 “녹슬어 광택을 잃은 금속의 색과 질감의 변화. 이런 현상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기저를 이루는 물리적 힘과 질서를 표상한다.”라고 말한다. 김동해 작가는 금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관념과 달리 재료가 구겨지거나 녹이 피는 대로, 무게에 따라 휘는 대로 물질 자체가 말하도록 둔다. 작업은 작가의 손끝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과 끊임없이 반응하며 변화한다. 주변 공기의 흐름은 작업을 일시적으로 완성되게도, 스러져가게도 한다.


김동해 작가는 금속선을 휘고 두들겨 단순한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연결하고 늘어뜨려 전체를 이루도록 한다. 작업실 곳곳에 버드나무와 같이 드리워져 있는 형상들은 식물의 조형성을 감성의 출발점으로 삼은 작업이다. 그러나 작가는 버드나무의 형상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타자를 수용하는 열린 형태와 그를 스치는 바람과 빛에 초점을 두었다. 작가는 풍경(風景)이라는 단어가 바람(風)과 볕(景)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업을 통해 비물질적인 것들이 얽힌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작가의 풍경은 뭉뚱그려진 유기체이거나 인간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타자와 무관한 개체로 존재할 수 없음을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하나에서, 나무로부터 떨어진 낙엽 하나에서 떠올린다. 그리고 물질로부터 시간과 빛, 바람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을 환기한다.


일견 지금의 복잡한 세계와 멀어 보이는 김동해 작가의 작업은 오늘날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코렌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와비사비는 사물 자체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사물과 관련된 존재와 힘으로 지평을 확장해가는 세계 인식의 방식이다. 단지 대상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그와 관계하고 그를 인식하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코렌은“아름다움이란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동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담박한 존재를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큰 역할을 한다.


매우 작은 자연의 요소로부터 그와 연결된 세계를 느끼고자 한다는 점, 내가 여기 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점에서 고요함과 연루는 모두 차 명상이 희구하는 지점과 닿아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나와 세상을 보다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차 명상은 예술 작품의 감상과도 닮았다. 내 앞에 있는 차를 지각하고 나 자신을 자각한다. 차를 마시며 처음에는 어떤 맛과 향이 오는지, 끝에는 어떤 맛과 향이 오는지를 느낀다. 그리고 차가 나와 맞닿는 순간으로부터 차와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순간으로 간다. 이것이 차를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차를 이루는 물이 어떻게 데워졌으며, 차의 맛을 이루는 찻잎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궁금해하는 방법이다. 찻잎이 하나의 차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는 일.


지금 여기로부터, 지금 여기에 관련된 것을 떠올린다면 작은 예술품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고 세계를 연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김동해 작가의 이파리들이 을지로와 작업실을 오가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상해 본다. 드리워진 이파리가 금속선으로 이어져 바위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전시장을 디딘 두 다리를 지각한다. 다리를 받치는 콘크리트 건물과 건물이 자리한 을지로의 풍광을 느낀다. 김동해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지금 여기로부터 출발해 더 넓은 세계를 돌아보는 감수성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다만 감수성과 윤리성은 작품 자체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기에,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윤리를 요청하고 있다.




《고요한 연루》

김동해 개인전

일시: 2025.11.20.-12.19. 화-토 13:00-18:00 (일-월 휴관)

장소: 더 소소 갤러리 (서울 중구 청계천로 172-1, 4층)

기획 협력: 디스위켄드룸

글: 윤형신

포스터: 이지원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이 글은 김동해 작가의 개인전《고요한 연루》(2025. 11. 20. ~ 12. 19.)을 위해 쓰인 작가 소개글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인용 시에는 출처 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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