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했다. 전화기, 음악 재생기, 소형 PC의 기능이 담긴 아이폰은 이전에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형태였다. 매스컴은 ‘마법에 가까운 선구적 제품’이라 환호했고, 아이폰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아이폰은 터치스크린 기능이 있는 카시오의 손목시계, 휴대전화에 여러 앱이 깔린 IBM의 사이먼, 개인용 디지털 보조장치인 데이터 로버 840이 하나로 합쳐진 작품이다. 아이팟 역시 출시하기 22년 전에 케인 크레이머가 만든 휴대용 음악 재생기 아이디어를 다듬어 탄생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은 그저 이것저것을 연결하는 일이다. 창의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걸 했냐고 물으면 그들은 자신이 실제로 그것을 한 것이 아니라서 약간의 죄의식 같은 걸 느낀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봤을 뿐이다.”
모든 창조에는 아이폰처럼 ‘가계도’가 존재한다. 뛰어난 예술작품, 혁신적인 발명품은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번뜩이며 나타나는 영감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해 아래 새것은 없다. 늘 새로움을 추구했던 화가 피카소도 ‘예술은 도둑질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무엇을 창조할 것인지는 ‘무엇을 따라 할지’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문화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하나를 알려면 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만의 고유함을 발견하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타인이 필요하다. 누구도 자신이 무엇을 창조할지 알고 태어나지 않는다. 타인의 것을 수없이 베끼고 익히고 가지고 놀면서 합쳐진 그 무언가가 바로 나의 고유함이다.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자신의 초보 작가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진짜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나는 한동안 헤밍웨이를 따라 하는 시기를 겪었다. 또 꽤 심각한 수준으로 닥친 애니 프루 시기도 있었고, 이제 와서 보면 좀 창피하기도 한 코맥 매카시 시기를 거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게 바로 시작 단계에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창적이라는 찬사를 받는 엘리자베스 길버트도 처음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인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시작 단계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따라 해야 할지 롤모델이 필요하다. 나에게 영감을 주고 내가 사랑하고 워너비가 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따라 하고 싶은가?
크리에이터 오스틴 클레온은 이렇게 말한다. “영웅들 한 명에서만 훔치지 말고, 영웅들 모두에게서 훔치는 것이 더 좋다. 영감을 받은 사람이 딱 한 사람뿐이라면 세상은 당신을 제2의 누구누구라고 칭할 것이다. 하지만 수백 명을 베낀다면 세상은 당신을 ‘오리지널’로 떠받들 것이다!” 롤모델을 단 한 사람만 정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따라 하고 싶은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나는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보며 그냥 나로 존재하는 자연스러움이 주는 아름다움과 유쾌함을 따라 한다. 김미경 학장님이 MKYU를 운영하는 것을 보며 더 많은 사람이 꿈꿀 수 있게 돕는 시스템을 베껴온다. 오프라 윈프리를 보며 공감이라는 재능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이런 나의 롤모델의 조각들이 합쳐진 것이 나다. 각 사람의 고유함은 수많은 롤모델의 조각들이 새로운 조합으로 합쳐진 결과다.
또한 오스틴 클레온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겐 참 멋진 약점이 있다. 완전히 똑같은 카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존경하는 나의 영웅들과 완벽하게 똑같아질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만의 색깔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진화하는 것이다.” 토크쇼 사회자 코넌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신체 조건상 롤모델의 동작들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동작들을 자신의 몸에 맞게 변형시켜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코넌 오브라이언은 “내가 늘 꿈꿔온 롤모델처럼 되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우리는 존재감과 독창성을 갖게 된다”라고 말한다. 롤모델을 똑같이 따라 하는 과정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나와 롤모델은 다른 존재기 때문이다. 그러니 롤모델과 같아질 수 없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따라 하다가 실패하는 지점마다 나만의 고유한 존재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스틴 클레온은 ‘나만의 도둑질 파일을 만들어라. 당신이 어떤 것을 훔쳤는지 그 궤적을 알 수 있는 파일이다.... 뭔가 훔칠 만한 것을 발견했는가? 도둑질 파일 안에 넣어라. 뭔가 영감이 필요한가? 도둑질 파일을 열어봐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도둑질 파일이 여러 개 있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훔치고 싶은 리듬, 코드 패턴, 편곡 아이디어를 메모해 놓고 작곡할 때마다 열어보는 ‘음악 파일’이 있다. 또 마음에 드는 집을 볼 때마다 내가 짓고 싶은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모해 놓은 ‘건축 파일’도 있다. ‘내가 부자라면? 시간이 엄청 많다면? 이미 성공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온갖 허황된 꿈을 메모해 둔 ‘꿈 파일’도 있다.
신호등에 서있다가 지나가는 멋진 컬러의 차에 눈길이 갔다면 그 차를 도둑질 파일에 넣자. 카페에서 만난 예쁜 소품, 누군가의 상냥한 말버릇, 질투 나는 상황, 닮고 싶은 롤모델... 훔치고 싶은 것이 발견될 때마다 도둑질 파일에 넣자. 현실적 제약 없이 마음껏 상상하며 무엇이든 도둑질 파일에 모아보자. 나의 하루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려주는 온갖 창조의 재료들이 널려 있다. 그것들이 증발되지 않게 도둑질 파일에 차곡차곡 모아보자. 내가 창조하고 싶은 재료들이 쌓여갈수록 점점 더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선명해질 것이다.
창조성을 깨우는 과제 - 나만의 도둑질 파일 만들기
노트를 한 권 준비한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놀러 가고 싶은 여행지, 도전하고 싶은 모험, 로또에 당첨된다면? 등등 내가 원하는 것을 적을 폴더를 만들어보자.
한 주간 훔치고 싶은 것이 발견될 때마다 무엇이든 노트에 메모해 본다.
(이 노트는 오래 쌓아갈수록 효과가 강력해지니, 앞으로도 계속 써나가길 바란다.)
인용 :
<창조하는 뇌> 데이비드 이글먼, 앤서니 브란트, 쌤앤파커스
<빅매직> 엘리자베스 길버트, 민음사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중앙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