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돈, 명예, 인정이 아니라 오직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만족감’이다. 그들은 과정에서 이미 보상을 누렸기 때문에 좋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바이올린 연주자 스티븐 나흐마노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운동선수는 경기장을 한 바퀴만 더 돌고 싶어 한다. 음악가는 한 곡만 더 연주하고 싶어 한다. 도예가는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도자기를 하나만 더 만들려 한다. 그 후에는 아마 또다시 하나만 더 하려 들 것이다. 음악가와 운동선수, 무용가는 근육이 아프고 숨이 가빠도 연습을 계속한다. 이러한 열정은 청교도적 의무감에서 오는 것도, 죄책감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연습은 내적인 보상을 주는 놀이다. 우리 안의 아이가 5분만 더 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주 잘 돼가고 있을 때 중독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생명을 앗아가는 중독이 아닌 생명을 주는 중독이다.”
왜 고된 연습조차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노벨상을 타러 시상식에 가는 것조차 귀찮게 생각할 만큼 연구에 빠져들 수 있을까? 답은 몰입 경험에 있다.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가 명명한 몰입은 간단하게 ‘물아일체’, ‘무아지경’의 상태다. 몰입에 들어가면 행위에 완전히 집중해서 자신을 잊고 행위와 하나가 되어 버린다.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춤이라는 행위만 남는다. 연주자는 사라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만 존재한다.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고, 반대로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등 시간 감각도 달라진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걱정 근심도, 자의식도 사라지고, 자신감은 더 커진다. 자아가 사라지는 몰입 경험은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더 위대하고 확장된 그 무엇을 경험하게 한다.
몰입 경험 후에 찾아오는 행복감은 하늘을 볼 때 느끼는 일상의 행복감과는 다르다. 일상의 행복감은 외부 상황에 의해 느끼게 되지만, 몰입 후 찾아오는 행복감은 스스로 만들어낸 행복이어서 더 깊고 고양된 만족감을 준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몰입 상태에 더 자주 더 길게 빠져들고 싶어 한다. 놀이가 즐거운 이유도 놀면서 몰입 상태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떤 일을 하든 - 비록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몹시 지루한 일일지라도 - 몰입을 통해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끔찍하게 하기 싫은 일조차 빨리 하고 싶은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면,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몰입 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까?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을 위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분명한 목표가 필요하다. 게임이나 일을 할 때 몰입하기 쉬운 이유는 명확한 목표와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15분동안 방청소하기게임처럼, 1시간 동안 블로그 글쓰기처럼 목표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즉각 행동할 수 있게 명확해야 한다.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목표를 세우는 목적은 흐트러진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로, 과제와 능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팔 굽혀 펴기를 20개 할 수 있는 사람이 갑자기 100개에 도전하면 과도한 압박감과 불안을 느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반대로 하루 5개씩만 하면 금세 지루하고 시시해진다. 몰입의 재미에 빠져들려면 나의 능력 대비 아주 쉽지도 않지만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정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처음 시작할 때는 목표를 아주 거창하게 잡고,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과제를 설정한다. 그러다 보니 과도한 압박감과 불안에 시작조차 못하거나 금세 포기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에 적절한 과제를 설정하면 누구나 어려운 일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
세 번째로, 활동의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뜨개질을 한다면 바늘을 움직일 때마다 내가 원하는 무늬가 만들어졌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노래 연습을 한다면 방금 부른 소절이 악보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도 몸의 변화를 확인할 수 없을 때는 운동에 몰입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제보다 1km 더 달릴 수 있다거나, 운동 코치가 몸의 변화에 대해 알려주면 계속 운동에 몰입할 수 있다.
몰입 상태가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문제는 몰입에 들어가기까지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조깅에 몰입하려면 운동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야 한다. 글쓰기에 몰입하려면 책상 앞에 앉아 흐트러진 집중력을 끌어모아 글쓰기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게다가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면, (또 나처럼 인내심이 없는 편이라면) 몰입 초반의 장벽을 넘어가기 어렵다. 그럴 때 우리는 만족감은 떨어져도 쉽게 집중할 수 있는 영화나 SNS에 빠져들게 된다. 몸이 편해지는 대신 흐리멍텅한 정신과 무의미한 일상에 대한 불만족이 딸려오지만 말이다.
시작의 어려움을 잘 통과하려면 일단 체력과 심리적 안정감부터 확보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베이스캠프다. 그다음, 몰입에 들어가기 위한 ‘스몰 스텝’ 하나를 설정하면 시작의 어려움을 넘어가기 한결 쉬워진다. 예를 들어 목표가 글쓰기라면 스몰 스텝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것이다. 4시간 동안 글을 쓸 자신은 없지만,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켤 수는 있다. 컴퓨터를 켜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꿈지럭거리며 뭐라도 시작하게 된다.
30대 초반, 나는 우울증을 겪는 내내 아주 작은 일도 거대한 산을 옮기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지곤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까지 가기가 어려워서 우는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편곡 작업을 맡게 됐는데, 마감일이 다가오도록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불안과 압박감에 점점 미쳐가던 그때, 한 선생님이 행동 지령을 내려주셨다. “지금 바로 파일만 만들어놓고 자.” 지령대로 바로 빈 오선지를 열고, 파일 제목을 입력했다. 선생님이 하라고 한 것은 거기까지였지만, 기왕 연 김에 빈 오선지를 편곡용 악보로 세팅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보를 세팅한 것만으로도 일을 시작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다음 날도 선생님의 지령대로 4마디 전주만 작업하기로 했다. 4마디쯤이야 어렵지 않았고, 4마디를 완성하고 나니 아쉬워서 조금 더 하고 싶어졌다. 미칠듯한 부담감에 시달렸던 작업은 고작 2~3일 만에 끝이 났다.
그때의 강렬한 경험으로 이후로도 작은 일을 하고는 격하게 칭찬하고 과도하게 뿌듯해하기 시작했다. 심하게 무기력했던 날에는 10분 산책, 밥 두 끼 먹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이 세 가지를 목표로 했다. 이것을 다 하고는 ‘오늘 하루 계획했던 일을 다 했다!’며 나를 격하게 칭찬하고,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과도하게 뿌듯해했다. 뿌듯함을 느끼는 게 좋아서 매일매일 조금씩 더 많이 움직이다 보니 우울증에서도 점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매일 하찮은 일을 시작하며 격하게 칭찬하고, 해낸 후에는 과도하게 뿌듯해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지속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해낸 일이 별로 없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또 무언가를 해내고도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귀찮음을 무릅쓰고 아침마다 세수를 하는 것도 칭찬받을 일이고, 청소든 산책이든 하루 중 뭐라도 해냈다면 뿌듯해할 일이다. 매일 작은 성취감으로 기뻐하는 사람만이 서툴고 잘하지 못하는 시간의 답답함을 견뎌낼 수 있고, 결국 어떤 큰 일도 해낼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멋진 일은 풀어야 할 ‘숙제’ 같은 부담스러운 일들을 놀이처럼 즐기며 ‘축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창조적인 삶에서 누리는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성을 깨우는 과제 - 몰입 경험하기, 스몰스텝 만들기
1주일 동안 할 일을 몰입경험을 할 수 있게 다듬어보자.
- 목표는 당장 실행할 수 있게 매우 구체적인가? 나의 능력과 목표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이 두 가지를 만족할 수 있게 필요하다면 목표를 수정해 보자.
- 목표에 대해 잘 수행하고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바로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인가?
-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 어떤 스몰 스텝을 설정하면 좋을까?
-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나에게 어떤 칭찬과 축하의 말과 보상을 해줄 것인가?
인용 :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에코의 서재
차용 :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182p “우리의 삶은 숙제이고 축제이다”, 정은혜, 샨티
참고 : <몰입의 즐거움> 칙센트 미하이, 해냄
<창의성의 즐거움> 칙센트 미하이, 북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