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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조성 강사 라라 Oct 22. 2023

안전기지를 확보하고 창조성을 지원하기


돈과 성취욕에 창조성이 죽는다


 우리는 꿈을 꾸고 관심 있는 것을 찾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승점에 해당하는 성공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인정도 받고 돈도 버는 삶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목표는 창조 과정에 가장 큰 위협요인이 된다. 창조성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리면 겁에 질려 얼어붙어 버린다. 마치 재미있게 놀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반드시 이겨! 이겨서 돈을 벌어야 해!’라고 압박하는 것과 같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도 창조성이 자취를 감춰버리면 그 일은 생계를 위해 하는 여느 일과 다르지 않다. 재미도 의미도 없이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고된 일이 되어버린다. 

     

 창조적 결과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결국 창조적 삶 자체가 중단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나는 나의 멋진 예술가 친구들이, 또 좋아하는 일에 용기 있게 도전했던 많은 창조적 동지들이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때로는 창조적 열정에 전념하고 싶어서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두거나 빚을 냈다가 종종 파산으로 고통받기도 했다. 함께 꿈을 나누던 친구들이 좌절과 실망만 안고 하나 둘 돌아서는 걸 지켜보는 것은 몹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렇게 현실로 돌아가고 나면 자신의 작업이 인정받지 못한 분노와 좌절감의 상처로 남아 창조성의 불씨를 다시 되살리기가 어려워진다.


 

안전 기지의 필요성


 영화 유튜버 고몽은 공기업에 다니며 유튜브를 시작했다. 회사 일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영상 편집을 병행하기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에 올인하다가 일상이 위협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3년간 회사일과 유튜브를 병행하다가 유튜브 운영만으로 매월 천만 원 이상의 수익이 확보되었을 때야 퇴사를 결심했다. 나이키를 공동창업한 필 나이트도 창업 이후 5년간 본업인 회계사 일을 계속했다. 작가 스티븐 킹은 첫 작품을 쓰고 나서도 교사, 건물 관리인, 주유소 직원으로 7년 동안 일했다.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 취직해서 돈 걱정에서 벗어났을 때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한 분야에서 안정감을 확보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자유롭게 독창성을 발휘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어설프게 쓴 책을 내거나 조잡하게 만든 예술품을 판다는 중압감이나, 아무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된다.”라고 말한다. 창조적인 삶은 한 발은 현실에, 또 다른 발은 창조할 세계에 두고 사는 삶이다. 현실에서 안정감을 확보해야 다른 쪽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안전 기지가 없어서 너무 두렵고 불안한 상태에서는 창조적인 탐험도 불가능하다.      



창조 과정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후원자가 필요하다 


 창조적 탐험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안전기지가 되어줄 창조적 후원자가 필요하다. 즉, 나의 창조적 결과물이 돈이나 명예를 가져오지 못해도 나의 창조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후원자가 외부에서 오기를 바란다. 나도 예술가 친구들과 종종 ‘르네상스가 일어난 건 부유한 상인들의 지원 덕분’이라며, 예술가에 대한 후원의 필요성을 부르짖곤 했다. 때로는 복권에라도 당첨되길, 때로는 돈 많은 애인이라도 생겨 내가 마음껏 작업할 수 있게 지원해 주길 바라곤 했었다. 그만큼 생계와 창조적인 작업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럴수록 하루빨리 생계에서 벗어나 창조 과정에만 온전히 몰두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생계와 창조를 병행하는 ‘투 트랙’으로 사는 삶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창조적 삶의 방식이었다. 생계 걱정 없이 충분한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나의 창조성이 날개를 단 듯 더 확장되지 않는다. 물론 더 나은 창조적 결과물도 나오지 않는다. 한정된 시간은 오히려 창조에 몰입하는 시간을 더 달콤하게 하고 시간을 내서 더 하고 싶게 안달 나게 한다. 한정된 예산은 현실적 제약을 해결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더 많이 끌어낸다. 마감 기한이 주는 압박이야말로 완벽주의에 빠지지 않고 창조 과정에 몰입하게 하는데 꼭 필요한 스트레스다. 일상의 제약들은 창조과정의 방해물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 제약이 나의 창조의 가능성을 더 많이 깨워내거나, 더 깊은 창조의 기쁨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영화배우 잭 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이 세상 모든 시간, 모든 돈, 팔레트 위엔 모든 색깔, 필요한 건 다 갖고 있다고 쳐보자. 이건 전부 창조성을 죽일 뿐이다.” 생계를 위한 일과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마음껏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나서야 ‘투 트랙’으로 사는 일상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기로 결심했다. ‘언제쯤 생계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제야 조금은 어른스럽게 내가 나의 창조적 후원자가 되기로 의연하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 덕분에 나의 창조 과정은 이전보다 한결 안정적으로 즐거움을 지속해갈 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창조적 결과물로 돈과 명예를 얻을 수도 있다. 시작하자마자 운 좋게 얻을 수도 있고, 오랜 시도 끝에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생 원하는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반 고흐처럼 생을 마감한 이후에 인정받을 수도 있고, 생을 마감한 후에조차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정도 성과도 보장되지 않는 일을 왜 계속해야 할까?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도?     



 창조적 모험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왜 불확실한 창조적 모험을 계속해야 할까? 그냥 사는 것만도 버거운데 왜 창조성을 지원까지 해가며 지속해야 할까? 나 역시 창조적 생존의 기로에서 위태롭게 버틸 때마다 절박하게 그 답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하는 일을 너무 사랑해서? 뜨거운 열정 때문에? 일상에 지쳐갈 때는 사랑도 열정도 식어버려서 답이 되지 않았다.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서? 내 고유한 재능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어서? 생계에 허덕일 때에는 그런 고귀한 마음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내가 찾은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를 살게 하기 때문에.      


 작가 샥티 거웨인은 “사람은 내부에서 인도하는 대로 따르지 않을 때마다 에너지의 손실과 힘의 손실, 정신적 죽음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창조성을 지원하고 가꾸지 않는다면 나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정신적 죽음을 느낄 것이다. 재미와 즐거움과 몰입을 잃어버린 일상은 생존에 대한 무게감에 짓눌려 버릴 것이다. 몸은 에너지를 잃고 마음은 우울, 무력감, 불안, 공허함 속에서 허우적댈 것이다. 그것들을 견딜 수 없어서 쇼핑이든 일이든 술이든 온갖 중독에 빠져들 것이다. 내 시선은 한껏 부정적으로 변해서 사사건건 불평하고 냉소적인 데다가 피해의식까지 심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나의 창조성을 지원해야 했다.     

 

 또한 나는 내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나의 창조성을 지원해야 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까.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내가 여기 있고 이것이 나라는 것을 표현해야 내 존재를 느낄 수 있으니까. 내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좀 사랑해 달라고 관심을 구걸하게 될 테니까. 또는 과도하게 타인을 돕는 것으로 내 존재 이유를 만들어서 관계를 망쳐버릴 테니까. 창조성이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신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나와 내 삶을 파괴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 위해서 창조성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한다. “사방의 모든 것이 작가의 온전한 정신 집중을 방해한다. 우선 물질적인 상황이 어렵다. 개는 짖어대고 사람들은 간섭한다. 건강상의 문제도 있다. 이런 온갖 어려움을 한층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세상의 냉담함이다. 세상은 시나 소설, 역사 연구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관심 없는 대상에 대해 제대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세상은 나의 창조성을 돕기는커녕 앞으로도 쭉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 또한 그럴 것이다. 정당한 대가나 인정, 좋은 결과는 평생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창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신적 죽음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나를 살아있을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성을 깨우는 과제 - 안전기지 구축하기

현재 내 삶에는 나의 창조성을 후원하기 위한 어떤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나의 창조성을 후원하기 위해 내 삶에 어떤 안전기지를 구축해놓아야 할까?







인용 : <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한국경제신문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중앙북스

<놀이, 마르지 않는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에코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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