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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Oct 30. 2022

이태원 탈출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게 무슨 팅커벨이야!”

채연이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5월 런던에서 사 온 팅커벨 코스튬 드레스 안에 받쳐 입기 위해 고른 초록색 티셔츠를 매장 내 탈의실에서 입어보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팅커벨 같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얀색!”

한사코 초록색이 아닌 하얀색 티셔츠를 입겠다는 채연이의 생떼에 못 이겨 우린 결국 하얀색 티셔츠 금액까지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고른 초록색 티셔츠의 가격표를 이미 떼 버린 후였던 터라, 엉겁결에 두 개의 티셔츠를 구매하게 된 셈이었다.


핼러윈을 앞둔 토요일이었던 2022년 10월 29일, 우리 가족은 핼러윈 주말마다 거의 매년 갔던 이태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일곱 살배기 딸, 채연이가 팅커벨 나시 드레스 안에 받쳐 입을 티셔츠를 깜빡하고 챙겨 오지 않았다는 걸 중간에서야 깨닫고는, 집에서 이태원까지 가는 경로 중간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들른 참이었다.

백화점에서 티셔츠를 산 후 저녁 식사까지 든든하게 마친 우리는 다시 백화점 주차장을 빠져나와 반포대교를 건넜다.

인파가 많이 몰리는 핼러윈 주말에 차를 가지고 이태원로로 진입하는 건 무모한 일 같아, 주차는 용산구청 주차장에다 하기로 했다. 그런데 용산구청 주차장에 주차하기 위해 대기하는 차량 행렬이 수십 미터에 이르렀다. 한참을 기다려 접근에 성공한 주차장 입구 앞에서 비상근무를 서고 있던 구청 직원으로부터 우리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지금 못 들어가세요! 안에 들어갔던 차들도 자리가 없어서 회차해 나오는 데만 한두 시간 걸리고 있어요!”

주차 대기 줄에서만 약 1시간을 허비한 우리는, 끝내 주차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차량 행렬에 떠밀려 이태원로까지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방향에서 몰려든 차량들로 뒤엉켜 거의 정지 상태인 이태원로에서 주차 공간을 찾기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 같았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가서 그냥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깐의 궁리 끝에, 채연이 엄마가 운전석에 옮겨 앉고 채연이와 나만 차에서 내렸다. 채연이 엄마가 차를 끌고 그 주변을 몇 바퀴 돌고 있는 동안, 채연이와 나는 이태원 거리를 잠깐이나마 걸으며 핼러윈 분위기를 느낄 요량이었다.     


용산구청에서 해밀턴 호텔 앞까지 걸어가는 동안, 채연이처럼 핼러윈 분장을 한 젊은이들과 나처럼 그런 코스튬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어깨에 숱하게 부대껴야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채연이는 뭔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내 손을 꼭 붙잡고는 나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연두색 드레스에 고집을 부려서 산 하얀 티셔츠를 받쳐 입고 불빛이 반짝거리는 날개까지 단 팅커벨 분장을 한 채 핼러윈의 이태원 거리에 나선 모습을 예쁘게 사진으로 담아주려고 했지만, 평소엔 그렇게 잘 응해주던 사진 촬영도 거부하고는 자꾸만 나를 덥석 안으려고 했다. 그로부터 불과 2주 전에 있었던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같이 갔을 때만 해도 사람 많은 그곳에서 신나게 잘 즐겼던 채연이었기에, 나는 녀석의 이상 행동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뭔가 달랐던 채연이처럼, 나 역시도 왠지 기분이 나질 않았다. 즐겁고 신나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도 나는 별로 즐겁지도 신나지도 않았다. 내 손을 꼭 붙든 채 찡찡거리는 딸아이를 감당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졌다고 할까?     


이태원 거리의 중심 스팟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밀턴 호텔이 가까워질수록 거리의 인구 밀도는 점점 더 높아졌고, 내 스트레스 지수도 점점 더 상승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으로는, 이태원에 나올 때마다 주로 갔던 해밀턴 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 쪽으로는 아예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곳에 좀 더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이미 틀어져 버린 채연이와 나의 기분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서둘러 채연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자기, 어디야?”

“응, 차가 너무 천천히 가서 아직 얼마 못 갔어. 이제 해밀턴 호텔 근처야.”

채연이 엄마가 운전하는 우리 차가 바로 우리가 있는 지점 근처에 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나는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대로변에서 기다린 지 1~2분 만에 우리 차가 보였고, 채연이와 나는 재빨리 뒷좌석에 탑승했다.

“다시는 핼러윈 주말에 이태원 오지 말자!”

차에 오르자마자 그 한마디로 황폐해진 기분을 털어버린 나는 좌석 등받이에 털썩 기대어 눈을 감아버렸다.

소란스럽고 복잡한 이태원로를 완전히 빠져나오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우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후에 무심코 열어본 트위터에서 내 시선을 확 낚아채는 해시태그가 있었다.

‘#압사사고’

오후 11시를 갓 넘긴 그 시각에 ‘대한민국에서 트렌드 중’인 실시간 해시태그는 바로 ‘#압사사고’였던 것이다. 그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첫 번째 트윗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동시에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그 영상 속 배경 장소가 바로 채연이와 내가 조금 전 떠나왔던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나는 얼어붙듯 깊은 충격에 빠지고 만다. 찬찬히 내용을 살펴보니, 채연이와 내가 해밀턴 호텔 앞 건널목을 건너 차에 올랐던 그 시각에, 바로 인근 지점에서 수많은 사람이 압사를 당하는 끔찍한 대참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혹자로부터 나는 일곱 살배기 딸아이를 그런 위험천만한 장소에 데려간 몰상식한 아빠라고 힐난을 당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아직 작고 연약한 채연이 손을 잡고 죽음의 현장 바로 인근까지 접근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아직도 오금이 저려온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그런 비난을 신경 쓸 마음속 공간은 없다. 그저 채연이와 내가 불과 몇 미터 차이로 죽음의 현장을 지나쳐 무사히 이태원 거리를 빠져나온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런 안도하는 마음마저도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겐 죄스러운 기분이 드는, 딱 그 정도의 상태일 뿐이다.

만약 팅커벨 코스튬 안에 받쳐 입을 티셔츠를 집에서 미리 챙겨 와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일찌감치 이태원에 도착해 무사히 주차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늘 가던 세계음식문화거리 쪽으로 들어섰더라면, 채연이가 떼를 쓰지 않고 나를 잘 따라주어서 항상 가던 것처럼 해밀턴 호텔 옆 골목으로 들어섰더라면…. 만약 그랬었다면, 나와 채연이는 40대 최고령 희생자와 7세 최연소 희생자로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가 생각 없이 갈겨놓은 기사 댓글 속에서 ‘남의 나라 명절을 무분별하게 쫓아 무질서하게 즐기는 무지성 젊은이들’로 표현되는 희생자들은 그저 나와 채연이처럼 특별한 주말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던, 그저 노는 데 진심인 선량하고 무해한 청춘들일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뇌 없는 것들’이라 비난받는 그들은, 어떤 부모님들에겐 각 병원 영안실과 체육관 등지를 순회하며 애타게 찾아 헤매는 소중한 아들딸들이었고, 승진의 기쁨에 취해있던 건실한 직장인이었으며, 더 나이 들기 전에 청춘의 마지막을 불태워보자며 같이 나선 죽마고우들이었다.

이 나라 전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과 슬픔을 전파한 대참사를 두고도 거친 말로 희생자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이때다 싶어 정치적 이슈로 선동하려는 세력들을 보면, 정말이지 내 인류애가 휘발되는 기분이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밝히고 다시는 그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바로잡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가슴 아픈 대참사로 인해 발생한 직간접적 피해와 충격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일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몇 주 전부터 해외 직구를 통해 준비한 코스튬을 차려입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이태원을 향했던 여대생이, 남친의 입대를 앞두고 마지막 데이트를 즐기러 나왔던 연인들이, 이태원의 핼러윈 한 번 즐겨보겠다고 작정하고 지방에서 상경한 청년들이, 우리의 조카, 내 딸, 내 아들들이,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아비규환 속에 끼어서 신음하다가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끔찍한 재난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 시각에 사고 현장 바로 몇 미터 근방을, 딸아이의 손을 잡은 채 서성이다가 운 좋게 이태원을 탈출해온 나에게 있어, 끝내 그곳을 탈출하지 못한 꽃다운 청춘들의 그 참혹한 죽음은 내 마음속 선명한 외상성 흉터로 남게 될 것 같다.


지금의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걸 말해보라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직간접적으로 상처 입은 서로를 사랑으로 보듬고 감싸 안는 공감과 위안, 그거면 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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