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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Aug 10. 2021

영화 싱크홀, 현실이 재난인데

TV에서 영화 <싱크홀> 예고가 나왔다. 서울 한복판에 깊이 500미터의 싱크홀이 발생해 건물이 통째로 그 안으로 떨어졌다는 설정이었다. 영화는 거대한 싱크홀에 갇힌 사람들이 그곳에서 탈출해 나오는 과정을 그린 듯했다. 싱크홀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고 종종 도로나 주택가 한복판이 무너져 내렸다는 뉴스도 접했던 터라 설정이 억지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백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초대형 자연재해나,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우주적 재난을 다룬 영화에 비하면 훨씬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어쩌면 그 현실성 있는 설정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재난 영화 특유의 어둡고 어수선하고 칙칙한 배경, 만신창이가 된 주인공들의 몰골과 안쓰럽고 심각한 표정을 보는 순간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잣말인 듯 아닌 듯한 "재난 영화는 그만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말을 툭 뱉었다. 말을 뱉고 보니 최근에 재난 영화가 있었던가, 내가 본 마지막 재난 영화가 뭐였더라 하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재난 영화는 고사하고 영화 자체를 안 본지가 꽤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이후로는 영화관을 가 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괜히 혼자 머쓱해졌다. 하여튼 오버는.... 사람이 너무 부정적이고 삐딱해. 


이때 아들이 옆에서 한마디 했다. 

"그니까. 현실이 재난인데 무슨"

"그니까"

좀 전의 자책은 어디 가고 난 반갑게 맞장구를 쳤다. 


맞다. 현실이 재난인데 영화까지 재난 영화를 볼 필요가 있을까. 이게 아마도 내 마음속 얘기였을 거다. 영화만큼이나 주변은 어수선하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 또한 당혹스럽고 심난하다. 겉으로 보이는 몰골은 멀쩡할지언정 적어도 속은 만신창이다. 


코로나가 2년째 지속되고 있다. 길게 보면 2년까지라고 했던 말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백신이 나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며 빨리 백신만 나오길 기다렸던 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도 않다. 상황은 더 악화되어 각종 변이는 계속해서 나오고 더 강력해졌다는 얘기뿐인데 그나마 한줄기 빛인 백신도 여러 부작용이 있어 접종이 고민된다. 맞아도 되는 건지... 아무래도 맞긴 맞아야 할 거 같은데... 나는 그렇다 쳐도 곧 있으면 고등학생인 아이도 맞으라는 얘기가 나올 텐데 몹시 불안하다. 부작용 확률이 몇 퍼센트라느니 하면서 독감 예방 접종의 위험성과 비교를 하기도 하지만 확률이 몇 퍼센트이건 그 몇 안 되는 확률 속에 우리 가족이 포함된다면 확률이 다 무슨 소용인가. 결정은 내가 내려야 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결정을 내린 후 무탈하길 간절히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뉴스 기사 보기가 무서워졌다. 무슨 사건 사고가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또 왜 그렇게 하나 같이 끔찍한 일들인지. 기사를 보다 보면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특정 나이 대의 특정 성별이나 특정 인상착의 등을 조심하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지금은 남이면 다 조심하자는 생각이 든다.  공간 역시 집 밖은 언제든 다 위험한 것 같다. 인적이 드문 곳이든 사람 많은 번화가든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회사든 학교든. 아니 요즘은 학교가 가장 위험한 것도 같다. 거기다 싸이버 공간까지 더하면 위험하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시간 또한 그렇다. 대낮에 일어난 사건 사고가 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뿐인가. 환경 문제는 또 어떻고. 아무리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여름이 이렇게까지 더워진 건 다 환경 파괴로 인 한 것이라 하고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디서는 홍수가 나고 어디서는 꺼지지 않는 대형 산불이 나고. 북극 얼음은 30년 안에 다 녹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게 재난이지 재난이 따로 있을까. 아이 말처럼 현실이 재난이다. 내가 본 지도 오래된 재난 영화가 지겨웠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테다. 

요즘은 나오는 뉴스마다 온통 걱정거리라 뉴스를 아예 보지 말자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그게 또 쉽지 않다. 뉴스를 보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면 아이는 왜 자꾸 한숨을 쉬냐며 핀잔을 준다. 그럼 "엄마가 그랬나? 미안"이라며 또 한숨을 쉰다. 아이는 그런 나를 흘겨보고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앞날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살 미래는 지금보다도 더 힘들지 않을까. 지금의 나보다 더 마음이 무겁지는 않을까. 물론 비교 불가능한 각각의 어려움이겠고 옛날이라고 사는 게 지금보다 수월했다는 보장도 없지만 벌써부터 아이가 살 미래에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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