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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Aug 26. 2021

엄마가 책임지겠지

고 2 선택과목을 수정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어제 아이는 불안한 듯 저녁을 먹다 말고 내게 물었다. 

"잘 선택한 거겠지?"

 선뜻 답할 수가 없었다. 


5월부터 선택과목 신청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학과가 인문사회계열인지 자연계열인지부터 알아야 하고 대학이나 학과의 특성에 따라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라고 했다. 신청은 6월에 하고 두 번의 수정 기회가 있다 했다. 


아이는 요리 쪽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고든 램지를 좋아하는데 고든 램지처럼 자기 가게도 운영하면서 요리도 직접 하고 꾸준히 메뉴 개발도 하고 싶다고 한다. 난 그러려면 요리만 배우는 것보다는 경영도 같이 배우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아이에게 의견을 물으니 아이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요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조리사로 머물고 싶지 않다며. 찾아보니 대충 거기에 맞는 과가 몇 개 있었다. 아이에게 해당 학과의 이수 과목을 보여주니 재밌을 거 같고 배우고 싶은 과목이라며 흥미를 보였다. 그럼 됐다 싶어 해당 학과에 맞춰 계열과 선택과목을 정하고 신청까지 마쳤다. 일단 정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했다. 목표하는 곳이 생각보다 꽤 점수가 높아 난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아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 공부만 하면 되는 거네"라며 오히려 더 신나 했다. 자신이 있는 건지 감이 잘 오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편히 있다가 과목을 수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다시 마음과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이는 진짜 이게 하고 싶은 건가. 나중에 바뀌면 어떻게 하지. 그럼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건 뭐지. 내가 알아본 정보가 정확한 건가. 내가 생각한 게 맞는 건가....

아이의 '잘 선택한 거겠지?'란 질문에 나는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요리 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안 바뀐 거지?"

"응"

'응'이라고는 하는데 어쩐지 전보다 확신이 없어 보인다. 

"왜? 아니야?"

"지금도 하고 싶은 건 맞는데 나중에 바뀌면 어떻게 하나 해서. 나중엔 바꿀 수가 없잖아."

어떤 마음인지 안다. 나도 같은 마음에서 불안한 거니까.

"요리 쪽 말고 다른 관심 가는 건 없어? 요리를 포기한다면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건 뭐야?"

"생각 안 해봤어."

"그럼 혹시 IT 쪽이나 우주, 환경, 아님 기계나 건축 이런 쪽은?"

인상까지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일단 계열은 맞게 선택한 것 같다. 지금까지 보인 아이 성향으로 봐도 아이는 인문사회 계열이 맞긴 하다. 국어 시간에 배운 문학 작품에도 관심을 보이고 사회나 역사 쪽 공부는 재밌게 하는 반면 과학이나 수학은 매번 이걸 왜 배우는 모르겠다며 과목 자체에 흥미가 없다.

"그럼 일단 계열은 맞으니까... 자연계열 가서 하기 싫은 수학, 과학 계속 공부하는 것보단 낫잖아."

"응, 그건 그래."

"근데 선택과목에서 세계사 선택한 애들이 별로 없나 봐. 정치와 법을 훨씬 더 많이 선택했대."

"그래?"

"응, 몇 명 안 되나 봐. 엄마 이거 맞는 거지? 잘 알아본 거지?"

내가 알아본 바로는 아이가 선택한 과에서는 세계사를 선택하는 것이 좀 더 유리했고 굳이 유불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아이는 정치와 법보다는 세계사를 더 재밌게 배울 것 같았다. 당연히 아이 의사도 물었다. 충분히 알아보고 생각해서 결정한 과목이었다. 근데 인기가 없는 건지 점수 따기 어려워서 피하는 건지, 세계사를 선택한 친구들이 별로 없다 하니 아이 마음이 심란한가 보다. 그 마음은 알겠는데 마치 확인이라도 하는 듯한 아이의 말과 말투가 거슬렸다.

"Y야, 이게 애초에 엄마가 정할 일이야? 엄마가 알아보고 엄마가 정하고 엄마가 책임질 일이야? 네 일이고 네 인생 아냐?"

아이는 맞다며 고개를 숙인다. 

"엄마도 나름 알아보고 너한테 말해준 거지만 네가 더 많이 알아보고 네가 결정할 일이지."

"맞아요"

아이는 아까보다 더 기가 죽었다. 갑자기 존댓말도 쓴다. 아이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아이도 알아보고 싶겠지만 뭐부터 알아봐야 할지 모를 만큼 지금 제도가 좀 복잡하긴 하다. 나도 아직 정확히 잘 모르겠다. 수시, 정시까진 대충 알겠는데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논술전형에 학교마다 뭐가 이렇게 참고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지. 읽어도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알아볼수록 입시 컨설턴트가 왜 있는지 알 것 같다. 이건 뭐 거의 입시 전략이 대입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이런 상황에 아이에게 결정하라는 것도 무리는 무리다. 

"엄마도 다시 알아볼 테니까 너도 한번 잘 알아봐."

무리인 줄은 알면서도 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인생이라는 건 정확히 알아야 하니까.


아이는 저녁을 먹고 요리학원에 갔다. 난 다시 대학별로 사이트를 방문하고 학과 입시 정보를 확인하고 요리 쪽 입시 요령 및 취업 정보를 찾아봤다. 다시 봐도 원래 선택이 맞는 거는 같은데 왠지 뭔가 불안하고 영 찜찜하다. 내가 미처 생각 못하고 있는 건 없는지. 내가 모르고 지나간 건 없는지.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그 사이 아이는 학원에서 돌아왔다. 난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에게 물었다. 

"학원 같이 다니는 친구는 선택과목 뭘로 정했대?"

"걘 자연계열 간대."

"그래? 왜? 걘 조리 쪽에만 관심이 있나? 아님 영양학 쪽으로 간대?"

"그건 모르겠고, 그냥 엄마가 그쪽으로 가는 게 낫다고 했대."

"그걸 왜 엄마가 정해줘? 그리고 엄마가 가라면 가는 거야?"

"애들 다 엄마가 정해줘."

"잘못 정한 거면?"

"엄마가 책임지겠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더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엄마가 정한 거 아니야. 엄마는 분명히 너한테 정보만 준 거야. 결정은 네가 하는 거고."

"응, 알아. 근데 엄마가 잘 알아봤겠지."

그래도 나름 생각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름 계획이란 것이 있고 주관도 있다 여겼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 생각했다. 어떤 면이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너무 큰 착각을 했던 건가. 그동안 너무 아이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봤나.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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