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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Jul 29. 2021

젠트리피케이션과 일식 요리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던 아이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선생님이 과제를 내줬는데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번 봐달라고 했다. 읽어보니 문제가 참 난해했다. 몇 가지 주제의 영상이 제시되었는데 그걸 보고 그중 하나를 골라 본인의 꿈과 연관 지어 글을 써보라는 거였다. 

주제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거였다. 한옥의 변형과 우리 삶의…, AI 기술의 발전과 미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문제는 아이의 꿈은 일식 요리사라는 거다. 일식 요리와 한옥, 일식 요리와 AI, 일식 요리와 젠트리피케이션, 뭐 하나 연결 지을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하고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일식을 한옥에서 한다고 해야 하나, 요리에 AI 기술을 이용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게를 인기 많고 뜨는 상권이 아닌 숨겨진 골목에 차린다고 해야 하나.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막 얘기했더니 아이가 한숨을 쉰다. 괜히 물어봤다는 표정이다. 내 의견은 참고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잠시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는가 싶었는데 “에이 몰라, 그냥 이렇게 쓸래.”라며 뭔가 써내려 갔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피해 상권 및 주변 상가 등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운영할 가게의 위치를 잘 선정한다.’ 

커다란 공란에 달랑 이 한 문장을 적었다. 그러곤 이럼 되겠지?라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난 대답 대신 아이에게 물었다. “이거 점수에 들어가?” 아니라는 아이의 말에 시원하게 답했다. “그럼 그렇게 써서 내” 

    

만약 내가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서 누군가 이렇게 글을 썼다면 난 분명 한소리를 했을 거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핵심이 뭐냐, 어쩌면 정확한 자기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을지 모른다. 맞다. 아이의 글에는 명확한 생각이 없었다. 역시 생각이 명확하지 않은 글은 모호하고 장황하다. 그렇지만 난 이건 아이의 문제라기보다 문제를 낸 선생님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제를 듣고 좀 어이가 없었다. 아이 꿈이 뭔지 알고 이런 문제를 냈나 싶기도 하고, 선생님은 쓸 수 있는 주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과목이었지만 전에도 한번 이런 비슷한 주제의 과제가 있었다. 가족 형태의 변화와 어쩌고 하는 주제에 맞춰 자기 꿈에 대해 서술하라는 거였다. 그놈의 꿈은 참…. 그래도 그때는 그나마 좀 쓸 말이 있었다. 가족과 음식은 연결 지을 것이 어느 정도 있었으니까. 아, 얼마 전엔 자신이 꿈꾸는 분야와 과학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글을 써보라는 과제도 있었다. 


과제를 받아 들고 아이가 고민할 때마다 난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애들 꿈이 뭔지는 알고 이런 걸 과제로 내주는 거야?” 아이는 대답했다. “당연히 모르지” 하긴 담임선생님도 아니고 과목 선생님이 그 많은 아이들의 꿈을 알 리가 있나. 근데 참 궁금하다. 왜 그렇게 꿈에 연연하는지. 한창 진로 결정이 중요한 때인 것도 알겠고 아이들이 꿈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때라는 것도 알겠다. 어쩌면 입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난해한 과제를 내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유가 뭐가 됐든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꿈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사회에 어떤 다양한 일들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고 막연히 꿈만 꿨지 구체적으로 그 일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마치 지금 당장 꿈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너무 재촉하는 건 아닌지. 또 꿈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꿈이 꼭 하나여야 할 이유도 없는데 너무 꿈에 집착하느라 아이들 생각을 오히려 꿈이란 틀에 가둬 버리는 건 아닌지.


이런 과제를 받아 들고 고민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과제를 내준 선생님에게 똑같은 과제를 내주고 싶단 충동이 인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족 형태의 변화와 연결 지어 글을 써보라고. 젠트리피케이션 아님 AI와 연결 지어 보라고. 그나마 AI는 좀 쓸 말이 있을 것도 같다. AI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까. 어떤 글을 쓸지 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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