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을 걷는 여자 Dec 10. 2020

어린이용 칭찬카드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지 않았을 때인가 보다.

3시간짜리 중국 국내 비행을 배정받았고 동기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 정신없이 비행 전 준비를 했다. 좌석에 물품 세팅을 마치고 담당 존으로 돌아오는데 사무장이 흰 종이를 팔랑이며 내게 다가왔다.


"네 존에 UM 한 명 있을 거야"


"제 존에 um이라고요?"


 신입인 나로서는 비행 인생 처음으로 비동반 성인 아동(UM)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론으로만 공부해봤지 이렇게 빠르게 실습을 하게 될 줄이야. 받아 든 UM 종이에 적힌 인적사항을 간단히 훑었다.  담당 아동의 이름은 小明(샤오밍), 여자아이였다. 미리 적을 수 있는 항목들을 적어두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꼬마친구를 기다렸다.


  탑승 시작 시간이 되었다. 메인 도어 옆에 서서 목을 빼곤 복도 너머를 힐끗거렸다. 이내 브릿지 저 멀리서 지상 직원의 손을 잡은 여자아이가 비행기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낯선 이들 사이에 부모님도 없이 홀로여서인지 아이는 다소 위축되어 있었다.  


"네 담당 존에서 이동할 친구야"


 지상직원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싸인을 마친 사무장이 내게 아이의 손을 쥐어주었다. 탑승 브릿지 너머에서는 탑승을 시작한 손님 무리가 줄을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를 향해 짐짓 침착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언니랑 같이 샤오밍 자리를 찾으러 한 번 가볼까?"


 아이를 좌석에 데려다주고는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간단한 설비 이용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오락 시스템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조명을 어떻게 켤 수 있는지, 언니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어떤 버튼을 누르면 되는지. 그녀는 동그란 눈으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이읔고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을 마쳤다 생각이 든 나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샤오밍, 언니가 한 말 떠올릴 수 있겠어~?"


아이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할 수 있어요"






  이륙 사인을 받은 비행기가 공중으로 힘차게 솟아올랐다. 점프싯(승무원 좌석)에 앉은 나는 힐끔대며 小明을 살폈다. 아이는 만화 영화에 폭 빠져있었다.


 안전 고도에 들어선 후,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틈틈이 아이의 좌석 옆을 지나치며 동태를 살폈고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게 쑥스러운지 수줍은 미소를 띄었다.

 식사시간이 되어 그날의 메뉴였던 소고기 덮밥을 샤오밍에게 먼저 가져다주었다.


"식혀오긴 했는데 트레이는 약간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음료가 더 필요하거든 콜버튼 누르면 언니가 또 올게."


"고마워요, 언니"


 이전보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샤오밍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기꺼이 눈을 맞췄다.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곤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승객들의 식사 트레이를 모두 수거하고 남은 여유 시간을 이용해 샤오밍과 대화를 나눴다. 아이는 조부모님 댁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 부모님께서 해외 출장을 가게 되셔서 부득이하게 할아버지 댁에 머물기로 되었다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도 없이 혼자 비행기를 탄다는 게 두려울 법도 한데 씩씩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그녀가 대견하고도 귀여웠다. 곧장 갤리로 가 담당 승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곤 종이 접기와 조그만 간식을 챙겼다. 샤오밍의 자리로 돌아가 보니 아이는 작은 공책을 꺼내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샤오밍, 심심하지?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이건 샤오밍한테 주는 거!"


"와!"


 아이는 내 손에 들린 종이 접기와 간식을 보곤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양 손으로 물품을 받아 들더니 마냥 행복하단 표정으로 종이접기를 들어 보이며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해도 돼요?"


 이런 심장 폭격.


"당연하지"


 


 


 어느덧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어가 열리고 승객들이 줄지어 하기했다. 나 역시 마지막으로 샤오밍의 짐과 인수인계 서류를 체크한 뒤 아이와 함께 도어로 향했다. 비동반성인 유아 승객을 처음치곤 나름 훌륭하게 케어 해냈다는 뿌듯함에 신나서 도어로 향하는데 앞서 걷던 샤오밍이 우물쭈물 대며 멈춰 섰다.      


"샤오밍, 무슨 일이야?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언니 주려구요"


 부끄러운지 입술을 안으로 말아물던 샤오밍은 품 속에서 토끼 모양 종이접기를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내 표정을 가만히 살피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 앞에 나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을 환히 내보이며 이야기했다.  


"너무 예쁘다, 샤오밍. 너무 고마워. 언니가 어디로 비행 가든 꼭 가지고 다닐게."


  이에 샤오밍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도어를 향해 앞서 걸었다. 팔랑팔랑, 아이의 신나는 발걸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행이 가져다주는 보람이 이런 건가 뿌듯한 미소가 입가에 피어올랐다.    



 그 날 이후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샤오밍이 선물한 토끼 종이접기는 내 크루백 한 켠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그 작은 손으로 직접 접어 선물한 이 토끼 종이 접기야 말로 UM 승객을 성공적으로 인도해냈다는 증표이자 어린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카드가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