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의 선율을 세상에 탄생시키다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은 바야흐로 작년 가을, 비행으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해로 향하는 인바운드 비행기 안, 내 담당 존에 앉았던 까탈스러운 승객이 잠든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나는 불 꺼진 갤리로 돌아와 선반에 몸을 기대고 섰다. 누적된 피로에 머리는 아찔했고 퉁퉁 부은 다리는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오늘도 참되다, 생각하며 뿌연 갤리 조명을 멍하니 올려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무심하게 눈물을 쓱 닦으며 ‘내가 지금 좀 힘든가 보다’고 생각했다. 밀려드는 허무함에 희미하게 웃음 짓던 그때, 불현듯 노랫말 한 소절이 머리를 스쳤다.
“꺾기 위해 꽃이라 부른다면-”
출처 인스타그램 haley_p0717
그 후로도 나는 비행이 힘들 때면 그날 떠오른 노랫말을 작게 흥얼대곤 했다. 겨우 노래 한두 소절이었지만 그 짧은 노랫말에서 위로를 받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다짐했다. 언젠가 내 감상이 담긴 이 노래를 세상에 내놓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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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지난 2020년 초, 갑작스러운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몸 담고 있던 항공사가 휴직계에 돌입했다. 나는 다하자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머릿속에 맴돌던 노래, 세상에 탄생시키기’ 또한 다하자 리스트에 올랐다.
계획을 세우고는 먼저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다.
“택아, 다름이 아니라 내가 노래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데”
친구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을 해주고 나자 친구는 취지가 좋다며, 노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루트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구는 이미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그만두고 다른 업계 진출을 준비 중이었다. 친구에게 작곡을 부탁하려 했던 기존의 계획을 전폭 수정해야 했다.
퍼블리싱 회사나 앨범 제작 업체를 컨택해볼까도 잠깐 고려해보았다. 하지만 겨우 곡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그만한 시간과 돈을 들인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갖은 고민 끝에 결심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안 된다면 작곡, 어디 그거 내가 직접 배워보자.
작곡 수업을 진행하는 클래스를 검색하여 하나하나 후기를 살폈다. 이내 적당한 강의를 찾을 수 있었고 그 길로 클래스 수강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음악 이론부터 시작해서 미디 프로그램 구동 방법을 배웠다. 컴퓨터 조작과는 거리가 먼 아날로그 형 인간인지라 프로그램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만 해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시간을 들여가며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다. 프로그램이 손에 어느 정도 익은 뒤에는 다양한 작곡 스킬을 배우며 내 곡에는 어떤 악기를 배치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구상해 보았다.
그렇게 한 달 반, 사전 연습으로 데모 곡 하나를 완성시켜본 뒤 본격적으로 메인 곡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머릿속의 악장을 기반으로 곡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구슬픈 노랫말을 살리기 위해 해금 소리를 기반으로 피아노 반주를 얹었고 동양풍 악기를 추가해 넣었다. 곡이 어느 정도 형태를 잡아갈 때 즈음, 승무원 생활을 하며 느꼈던 감상을 담아 가사도 썼다. 흐릿하던 청사진이 눈 앞에서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들이 마냥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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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달 여 간의 시간이 흘렀다. 길고 길었던 후반 마무리 작업을 거쳐 드디어 나의 자작곡이 세상에 첫 발을 내놓았다. 그토록 고대했던 노래를 만들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지난날, 곡을 흥얼대며 스스로를 달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쳤다.
어른이니까 아픈 것도, 외로운 것도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며 곪는 줄도 모르고 무식하게 버텨냈던 하루들. 그 노래는 힘겨웠던 지난 시간들을 고백하는 나의 목소리였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완성된 노래를 들려주었다.
노래를 들은 그들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내 등을 오래도록 토닥여 주었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다하자 리스트를 이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