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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an 26. 2020

미리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들

 Suna와 이야기하면 Suna에게 본받을 점들이 많다. Suna는 절대 자기의 패를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 만약 Suna가 자신의 패를 혹은 생각을 나에게 먼저 보여주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2007년 초에 Suna와 결혼하기로 서로 마음먹고,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독립심이 강해서인지 결혼하면서 부모님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사회생활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내가 모은 돈이 얼마나 있겠냐? 더구나 결혼전에는 어머니가 내 월급통장을 관리하고, 난 용돈을 타서 쓰고 있었고, 어머니가 따로 돈을 모으지 않았다. Suna와 결혼 예산을 짜 보니 Suna가 준비할 수 있는 돈이 4천만원 있다고 했다. 내가 조달할 수 있는 돈도 4천만원이 전부였다. 


 전세를 알아보니 Suna가 최소한으로 양보하는 집이 7천만원이었다. 그 집을 계약하기로 했고, 난 은행에 가서 3천만원 한도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고, 그 돈을 다 찾아와서 집 계약을 했다. 돈이 너무 없어서, 나는 예물도 하지 말고, 혼수도 하지 말자고 했다. 결혼 반지만 내가 준비했다. 혼수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내가 준비하기로 한 4천 만원 중에 3천만원이 은행 대출이었고, 나머지 천만원이 카드 한도였다. 혼수를 둘이 다니면서 내 카드로 다 긁었다. 예식장 예약부터, 결혼에 필요한 온갖 것들을 내 신용카드로 긁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우리 어머니와 Suna와의 트러블이 있어서, 그리고 그것도 매우 심각해서, 결혼을 1달 정도 앞두고 Suna가 파혼을 한다고 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마음속에서 제일 걱정은 Suna 배속에 있는 아이였다. 아이는 Suna가 낳아서 키운다고 했다. 나보고는 신경쓰지 말라고 했고, 장인, 장모님도 Suna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아이를 볼모로 나를 협박하는 것 같았고, Suna 아이기도 하지만 내 아이기도 해서, 절대로 아이에게 불행한 어린시절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 Suna를 설득했다. 설득이 되지 않았다. 나도 정말 속으로 ‘그래!!, 끝내자, 니 맘대로 해라’하고 하고 싶었는데, 또 다른 걱정이 있어서 다시 참고 Suna를 달랬다. Suna가 4천만원이나 보태서 집을 얻었는데, 파혼을 하면 그 돈을 물어줄 돈이 나에게 없었다. 정말 그 때 4천만원만 더 있었으면 나도 파혼을 했을 텐데. 나중에 Suna에게 파혼하면 그 전세금을 어떻게 할려고 했는지 물어보니, 급한 것도 아니라서 당장 받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진작에 그 이야기를 했더라면, 지금 내 옆에 Suna가 있었을까? 장담 못하겠다. 


 텍사스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이제 더 이상 직장생활은 없다고 생각했다. 난 영어강사를 하고 싶었다. 대치동에 있는 어느 영어학원에 취업을 해서 강의를 했다. 강의하니, 학원강사가 나랑 잘 맞았다. 학부모와 면담도 하고, 아이들 가르치고, 영어교재 만들고, 낮시간에는 놀고, 정말 좋았다.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방학때는 수입이 꽤 많았는데, 개학을 하니 수강생이 줄어서 수입이 줄었고, 학원이 영세하다 보니, 월급 날에 바로 월급이 입금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내가 송금할 돈만 기다리는 Suna를 생각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송금을 못해서 월세를 못내고, Suna가 쫓겨나면 난감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원을 그만 두고 다시 회사에 취직했다. 나중에 Suna랑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니가 돈 안 보내줘도 괜찮았어.’라고 말을 했다. 진작에 그 이야기를 하지. 난 정말 월세 못 내서, 길가에 나 앉을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만약 계속 강사생활 했으면, 지금 고등학생들은 내 강의 들으면서 수능준비 할 텐데. 


 미리 상대방의 마음을 알았다면, 나는 분명히 다른 행동을 했을 텐데, 때로는 책임감이 너무 많은 것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최근에 Suna와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한 것들이 많았고, 지나간 일이지만 내가 그 당시에 그 것들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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