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와 주름에 관한 단상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기

by 이주리

1

요새 두 가지 버릇이 생겼다. 하나는 거울 앞에만 서면 머리카락을 쓸어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만원 버스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게 되면 앞사람은 흰머리가 없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이 두 버릇 모두 생긴 지 일 년 남짓한 파릇파릇한 버릇으로 나의 세월과도 관련이 있다.


내가 흰머리를 처음 발견한 건 25살이었다. 동료가 흰머리가 있다며 젊은 나인데 어떻게 흰머리가 있는지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그 당시에는 햇빛에 비추어 잘못 본 거라고 지나갔지만 집에 와서 내 머리를 훑어보니 실로 흰머리가 한 가닥 존재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새치 몇 가닥 정도는 다 있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런데 한 2년 전쯤부터였을까 머리를 휘적휘적해야지 겨우 몇 가닥 보였던 흰머리들이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어 흰머리다, 뽑아줄까?’라고 묻는 언니와 친구들의 반응에 ‘그래 있는 즉시 뽑자.’라는 생각으로 힘차게 ‘뽑아줘.’를 외쳤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뽑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머리카락인데 이렇게 희다고 마구잡이로 뽑는 것도 괜히 미안하고, 게다가 막상 뽑으면 한 가닥 전체가 흰머리 일 때는 드물고, 대부분 뿌리 부분만 흰머리이거나 가끔은 중간부분만 흰머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흰머리가 자랐을 시기에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그 사람을 원망하고 싶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괜히 뽑은 게 아까워진다.



2

고등학교 2학년 때 공부는 하기 싫고, 책상에 앉아서 거울을 보는데 내 얼굴 요기조기를 보다가 이마가 눈에 띄었다. 어른들은 이마 주름이 있어서 주름을 없애려고 주사를 맞기도 한다던데 내 이마는 정말 주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래서 거울을 보면서 힘껏 눈썹을 올려봤다. 아무리 힘껏 눈썹을 올려 봐도 주름은 생기지 않았다. 몇 번을 해보다가 어른들은 진짜 이해를 못하겠다며 그만두었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거울을 보면서 살짝 패인 이마의 한 부분을 보며 ‘음 여기 즈음에 주름이 생기겠군.’ 하고 감이 왔다.


그리고 30대 초반인 지금 눈썹을 본격적으로 치켜세우지도 않았는데 이마 주름이 생긴다. 게다가 피부 화장을 했다 하면 눈 밑에 팔자 주름에 파운데이션이 끼기 일쑤다. 점차적이지만 확실한 이 변화에 내가 어찌하리. 몇 년이 지나서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할 것을. 지금부터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김중혁 소설가의 ‘뭐라도 되겠지’에 나온 100세 외할아버지 앞에서는 작가의 말대로 나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 된다.


외가에 갈 때마다 외할아버지 얼굴의 주름을 유심히 본다. 아니, 유심히 본다기보다 볼 수밖에 없다. 얼굴에는 주름뿐이다. 주름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름 사이로 눈과 코와 입술이 겨우 보인다. 주름이 어찌나 깊은지 조각칼로 파놓은 것 같다. 100년 동안의 일들이 그 주름에 새겨져 있다. 100년 동안 웃으면서 생긴 얼굴의 근육과 100년 동안 찡그리고 울면서 생긴 얼굴의 근육이 맞부딪쳐 산맥을 이루고 굳으면서 주름이 되었다.

김중혁「뭐라도 되겠지」중 에서


할아버지 손 이미지.jpg 평생 농부셨던 나의 친할아버지 손 또한 그러했다.